얼마 전에 순찰을 돌다 군화 끈이 풀려 다시 묶던 중 알게 된 사실이다.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나와 동고동락하며 나의 발을 보호해주고 나의 삶을 지탱해주던 군화에 자그마한 구멍이 뚫려있었다. 처음에는 고생 많이 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다가 ‘참 오래, 그리고 열심히 군생활 했구나.’란 생각이 들며 감회에 빠져들게 되었다.
군화를 처음 지급받은 건 훈련소에서였다. 불편할 거라며 깔창 필요할 거라는 옛날 얘기들이 무색하게 푹신한 밑바닥의 편안함과 적절하게 발을 조이는 그 착용감이 아주 맘에 들었다. 그저 검은색은 마치 군대의 개성 없음을 표현하는 듯 했지만, 검은색을 좋아하는 우중충한 취향 탓에 그것마저도 맘에 들었다. 크기마저도 265, 내 발에 딱 간만에 딱 맞는 사이즈가 존재해서 집에 있는 여느 운동화보다 편했다.
이렇게 받은 군화는 어느 훈련이든 나를 따라다녔다. 화생방이든, 사격이든, 행군이든. 내가 가는 곳엔 항상 그 군화가 존재했다. 행정학교에서 야외 훈련을 받을 때도, 실내에서 강의를 들을 때도 함께했다. 인천항까지 가고 부대에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군화는 함께였다. 부대에 와서 초소에서 별을 바라볼 때도, 밤에 바다에 비친 발을 바라볼 때도, 변으로 더러워진 견사를 청소할 때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순찰을 돌 때도 군화는 나와 늘 함께였다.
이렇게 갖은 훈련과 근무를 거듭하다보니 군화는 많이 낡아져 버렸다. 윗부분에 자그마한 구멍을 따라 길게 이어진 주름과 더불어 신발의 앞코는 이것저것에 쓸려 너덜너덜해졌다. 멀쩡해 보이는 목 부분과 옆 부분에도 수많은 상처들이 자리하고 있으며, 밑바닥은 원래 있던 미끄럼 방지 무늬들이 다 갈려 없어지고 군화의 뒤축은 평평한 벽면이 되어 마치 처음부터 밑바닥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는 걸 연기하는 것 같다. 이런 세월의 공격에도 그 튼튼함은 변치 않는 특성이 되어 형태만은 굳건히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렇게 굳건히 내 발을 지켜온 덕에 군화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진주에서 군인의 기본을 배우기 위해 흘린 수많은 땀방울. 수료하고 나서 집으로 가는 동안의 기쁨. 자대로 배치될 때의 설렘. 처음 부대에 들어왔을 때의 어색함. 주간 근무를 뛸 때의 힘듦과 야간 근무를 뛸 때의 피곤함. 첫 휴가를 나갈 때의 행복함. 동반근무자와 즐거운 얘기를 할 때의 웃음. 근무에서 실수를 했을 때의 당황함. 검열이 끝났을 때의 안도감. 상병을 처음 달았을 때의 신남. 전역자를 보낼 때의 아쉬움과 신병이 들어올 때의 호기심과 반가움. 이 모든 감정들을 담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거의 남쪽 끝 진주에서 내리는 3월 말의 눈이 내리는 비현실적인 풍경. 맑은 날에 벚꽃이 가득 핀 진주 언덕길의 아름다움, 봄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훈련소의 모습. 안개가 가득 껴 신비로움이 느껴지던 인천항과 용기포항. 안개가 내려앉은 왠지 모르게 삭막해보였던 부대의 첫인상. 안개가 내려 앉아 한치 앞도 보이지 않던 부대의 여름. 능선을 따라 섬 이곳저곳을 물들이던 단풍의 화려함이 인상적이었던 부대의 가을. 눈이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버렸던 겨울을 지나 흰색의 화사한 꽃들이 연두빛 배경의 산을 장식하던 봄까지 이 모든 풍경들을 담고 있다.
이렇게 많은 것을 담고도 모자라 기억하는 또 다른 것들이 있다. 처음 병사 식당에서 숟가락과 포크를 합친 것을 밥을 먹던 것. 진짜 총기를 만졌던 첫 순간. 큰 총소리에 놀라며 실탄을 처음 발사해본 순간. 4시간 동안 배를 타고 백령도의 땅을 밟던 첫 순간. 근무에 들어가던 첫 순간, 첫 후임을 받던 순간. 군견을 만지며 개에게 밥을 주던 첫 순간. 첫 순찰을 돌며 부대의 이곳저곳을 볼 수 있었던 순간. 처음으로 분대장을 달던 순간. 그 수많은 내 인생의 경험과 그 첫 순간마저 담고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매 순간순간마다 내 신체와 같았던 군화는 이렇게 많은 것들을 원하든 안 원하든 나와 많은 것들을 공유하게 되었다. 이렇게 공유하는 과정에서 사람이 늙어가듯이 신발도 그 세월의 흔적을 피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런 흔적들이 남고 남아 원래의 무늬를 잃고, 너덜너덜해지고, 구멍마저 뚫리게 되었다. 나보다 부쩍 늙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불변의 형태는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할 수 있음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나는 이런 주장에 설득당해 이 떨어트릴 수 없는 신체와도 같은 것에 또 손을 갖다 대고 발에 신긴다. 설득당해 마지못해 신으면서 보는 군화의 상처에서는 나의 과거가, 나를 우뚝 서게 만드는 튼튼함에는 나의 현재가,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역할에는 나의 미래가, 그리고 그 존재에는 나의 전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