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축구

by baekja

군대 이야기를 할 때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로 꼽히는 게 ‘군대 가서 축구한 이야기.’라는 건 너무나 유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근무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제일 많이 한 활동이기에 이 이야기를 빼놓고 군생활을 논하기엔 또 어려운 사실이라 전역이 얼마 안 남은 지금 이 이야기를 쓰지 않고서 군생활을 마무리하기에는 아쉬워 이 글을 쓴다.


처음 부대에 들어왔을 때 들은 말 중 한 가지는 절대 ‘축구 한다.’라고 말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매일 끌려다닐 것이라고. 자기 계발 및 근무 외의 시간에는 휴식 시간을 가지고 싶었던 나는 당연히 축구 별로 선임들에게 안 좋아한다고 말했고 자연히 축구에서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축구나 야구, 탁구 등의 구기 종목을 제외하고는 운동 한 번 제대로 해본 적 없는 나는 당연히 체련(체육활동)시간에 할 게 없어 지루함에 지쳐갔다. 특히 수요일 날 있는 전투 체련이라는 이름의 4시간짜리 체육활동 시간에는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여기 저기 떠돌며 시간을 날려먹기만 하고 있었다. 결국 부대에 들어온 지 대략 일주일 만에 고양이가 생선가게 그냥 못 지나가듯이 축구를 하게 되었다.


남는 건 체력뿐이었던 나는 신병의 마음으로 정말 열심히 뛰었고 첫 축구 만에 바로 축구하는 사람으로 낙점되었다. 그리고 일주일에 많은 시간을 축구하는 데 보내게 되었다. 병장이 축구하자는데 안 나가고 배길 일병이 아무도 없을 때였으니 아무리 귀찮아도 일단은 뛰어나가 축구를 해야 했다. 근무 투입되기 전까지는 썩 나쁘지 않았지만 근무에 투입되고 나서는 얼마 남지도 않는 시간을 축구에 써야 해서 고통이 가중되었다. 나중 가서는 축구 뛰는 당연한 사람이 되었다. 독서토론 동아리에 들어가서 조용히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으며 동아리 시간을 때우려했던 내 계획은 그 누구보다도 빨리 내 이름을 축구 동아리에 적어 놓은 선임에 의해 무산되었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축구를 계속 하다 보니 어느새 상병이 되었다. 상병이 되니 선택지가 좀 생겼다. 축구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었다. 축구라는 운동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어서 자주 나가는 편이기는 했지만 귀찮고 피곤한 날은 그저 침대에서 쉴 수 있었다. 특히 주말에 축구를 안 해도 되는 것은 나에게 큰 이득이었다. 거기에 새로운 신병 중에 축구하는 사람이 갈수록 없어져 축구는 정말 하는 사람만 하는 운동이 되었고 하는 사람은 갈수록 줄어 하고 싶어도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그렇게 축구를 어영부영 하다 보니 병장이 되었다. 축구하는 사람 중에 나보다 높은 사람도 없었고 이제는 정말 하고 싶을 때에만 축구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현 군대에서 선임보다 무서운 건 가까운 후임이었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 후임이 씩 웃으며 “남희억 병장님, 근무표 확인 다 해놨습니다.”라고 말하면 마치 저승사자가 지옥으로 가자며 날 끌고 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뺀질거리며 축구 뺄 생각을 하던 동기는 어느새 축구를 하자며 설득하는 가장 큰 적이 되었다. 한 번은 생활관 문을 막아보기도 했지만 덩치 큰 동기와 후임들에게 굴복해야만 했다. 170의 설움이란. 자는 척도 해보았는데 그 때도 걸려서 끌려 나갔다. 군대가 거꾸로 돌아가는 것이 틀림없다. 하하하. 어느 날은 진짜 피곤해서 잤는데 축구 안 하려고 자는 척 하는 줄 알고 두 번씩이나 들어와서 확인하고 갔단다.


하도 당하다보니 저번 주에는 약이 오를 대로 올라 겨울비가 내리는 추운 일요일 날 동기와 합심해서 축구하기 싫다는 후임들을 다 끌고 나갔다. 처음으로 끌고 나가는 게 이렇게 재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기가 이런 맛에 축구를 모으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 날도 축구 나가기 싫다고 말하는 후임들에게 “겨우 그 정도 밖에 안 되는 거야?”라며 후임들을 끌고 나가는 내 동기는 악마가 따로 없었긴 했지만.


너무 끌려가는 얘기만 한 것 같은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는 축구를 하는 것을 싫어한다기보다는 좋아하는 쪽에 가깝다. 그 이유는 체육 대회를 할 때마다 쉽게 알 수 있는 것 같다. 맨날 축구를 하던 사람들이 아닌 각기 다른 다양한 사람들과 힘을 합쳐서 상대 팀을 이길 때의 그 쾌감이란. 상병쯤에는 리그로 하는 부대 축구 경기가 그렇게 재밌을 수 없었고 병장이 되어서는 얼마 전 병사의 날에 한 축구 경기가 가장 재밌었다. 둘 다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경기였는데 예상외의 사람들이 활약을 해주어서 어렵지만 이길 수 있었다. 합심해서 어려움을 극복해내고 승리를 쟁취하는 그 쾌감이란. 언제 느껴도 좋다.


사회에 나가서는 이제 축구를 슬슬 접을 생각이다. 축구를 한다고 해서 내 공부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썩 미련이 남지도 않는다. 하지만 사회에서는 쉽게 맛 볼 수 없는 승리를 간접적으로나마 쉽게 알려주는 이 스포츠 경기를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20대의 74%가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는 사회라고 생각했다는 통계 결과를 얼마 전 뉴스를 통해 보았다. 하지만 당장 우리가 하는 동네 축구는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또 지더라도 쉽게 ‘졌(지만)잘싸(웠다.)’라는 말을 붙일 수 있지 않은가. 그래서 꿈과도 같았던 내 군생활의 축구를 잊지는 않고 마음에 담아 갈 생각이다. 그리고 군생활이 끝나기 전까지는 나에게 조그만 행복을 주는 축구에 조금 더 끌려가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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