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일상-빨래

by baekja

군대에서는 내 물건들을 내가 관리해야하고 모든 것들을 내 자신의 힘으로 해야 하다 보니 여러 가지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이 한 것을 꼽으라면 빨래를 꼽겠다. 똥 묻은 개를 옆에 끼고 사는 업무의 특성상 빨래는 거의 매일 해야 하며 더운 여름에 훈련으로 전투복이 땀에 흠뻑 젖기라도 하면 하루에 두 번도 열심히 빨래를 해야 한다. 물론 세탁기가 전부 구비되어 있어 불편하다고는 말 못하겠지만 귀찮은 것은 사실이다.


집에서 따로 빨래를 해 본 적은 없다. 다 마른 빨래를 개켜 본 적은 다수 있지만 세탁기를 직접 돌려 본 적은 없다. 그래서 세탁기는 나에게 완전히 미지의 세계였다. 처음으로 집에서 떨어져 긴 기간을 살았던 고등학교 기숙사에서는 외주 업체가 들어와 빨래를 해주었기에 세탁기를 잡을 일은 부끄럽게도 더더욱 없었다. 그리고 더 자라 신촌의 고시원으로 들어가게 되자 나는 세탁기를 돌려야만 하는 때가 왔다. 그리고 세탁기를 돌리는 게 매우 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세탁기를 돌리는 것은 기숙사에 들어가는 것까지 이어져 귀찮은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그때는 3일에 한 번 돌려도 됐었기에 아주 행복한 나날이었다.


그리고 집에서 잠시 쉬다 처음 훈련소에 들어가자 세탁기 사용이 금지되었고 많지 않은 시간 안에 손빨래를 2주 동안 매일 해야 했다. 세탁기의 편리함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짧은 2주가 지나자 세탁기 사용이 허용되었고 육체의 고됨은 점점 줄어들었다. 그때만큼 세탁기를 돌리는 것이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을까? 아니, 앞으로도 있을지도 의문이다. 뭐 쨌든 그렇게 짧은 시간이 지나고 부대에 들어왔다. 부대에도 당연히 세탁기는 비치되어 있었고 편하게 세탁할 수 있어 행복했다. 하지만 귀찮음은 여전했고 군 전역이 얼마 안 남은 지금도 여전히 귀찮다.


이런 나와는 달리 김홍도의 <빨래터>에 나온 빨래하는 아낙네들은 놀랍게도 웃으며 빨래를 두들기고 있다. 그들은 귀찮지 않았을까? 그 당시에는 세탁기는 상상도 할 수 없었고 빨래를 도와주는 도구라고는 다듬잇돌과 다듬이 방망이 뿐이었다. 너무나 고된 빨래가 눈으로 보지 않아도 예상된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그림 속에서 웃고 있다. 그저 김홍도가 서민들의 생활을 긍정적이고 익살스럽게 묘사하려고 했다고 말하기에는 김홍도는 사실적인 화가였다. 당장 <서당>만 봐도 익살스럽긴 하지만 맞아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가감 없이 잘 표현해냈다. 그럼 어떻게 그림 속의 아낙네들은 계속 웃고 있을 수 있었을까?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두 명 이상이 늘 같이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그들은 함께하며 그 힘듦을 나누었으며 일상을 말을 통해 풀어내며 그리고 삶을 익살스럽게 묘사하며 고된 빨래를 해나갔던 것이다. 이는 현재 세탁기를 돌리는 우리와 큰 차이가 있다. 더 편해졌음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기계를 만지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다듬이 방망이를 두드리며 웃으며 수다를 떠는 아낙네들의 모습들 중 무엇이 더 정감 가는가?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세탁기는 빨래라는 단순노동의 시간을 줄여 사람들의 산업화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빨래터라는 소통의 장을 막아버리면서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라는 소통의 부재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거기에 건조기까지 개발이 되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집 안에서 편히 빨래를 할 수 있게 되며 빨래를 널다 옆집 사람과 만나 친해진다는 그런 진부한 옛날 드라마들의 이야기 전개는 이제는 그다지 공감을 얻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세탁기의 발명으로 인해 빨래의 시간이 줄어들며 생긴 유의미한 것들도 분명히 있다. 집안일이 어머니들의 것으로 인식되던 시대, 어머니들이 집안일에 쏟는 시간을 대폭 줄이는데 성공했고 그렇게 간신히 만들어낸 시간으로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는데 기여 남녀 평등을 진전시키는데 기여한 세탁기의 공로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을 봤을 때 분명 세탁기의 발명만을 탓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힘들었던 빨래를 도와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이렇게 해서 남는 시간으로 컴퓨터나 핸드폰을 만지느라 가족과의 소통도 줄어들고 있다. 사실 억지로 그 남는 시간에 대화를 하라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모든 빨래를 기계가 해주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수작업으로 해야 하는 것이 있다. 빨래를 개켜 정리하는 작업은 여전히 수작업을 벗어나지 못했다. 가족과의 소통마저 단절되어 같이 밥이라도 먹어 소통을 지속하려는 요즘 가끔은 다 같이 모여 빨래를 개켜 가족과의 대화를 열어가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군대에서 마저도 가끔은 핸드폰에 의해 단절된 소통을 이어보기 위해 핸드폰을 끄고 생활관의 사람들과 빨래를 개키며 되지 않는 농담을 하고 웃으며 다시 오지 않을 이십 대 군생활에 추억을 쌓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당장 나조차도 실행할지 의심되지만 생각 정도 해보는 건 충분히 괜찮지 않은가? 소통을 늘려 좀 더 많은 사람들을 알아가는 게 굳이 나쁜 일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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