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가수 악동뮤지션을 되게 좋아한다. 그 중 <라면인건가>라는 노래를 들으면서 집에서 라면을 끓여먹었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여전히 라면을 끓여먹을 때마다 그 노래를 흥얼거리고는 한다. 이 노래에서 라면은 백수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반복되는 삶만을 사는 사람의 식량으로 그 사람의 심정과 정체성을 대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라면은 싼 대체식품으로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나는 라면을 그 오묘한 인공 조미료의 짠맛 때문에 찾아 먹는다. 끊을 수 없는 그 중독성. 그리고 먹는 라면의 양은 부대에서 들어와서 훨씬 늘어버렸다.
부대에서 사실 라면을 끓여먹을 방법은 없다. 내가 급양병(취사병)도 아닐뿐더러 가스 요리 기구를 사용할 수도 없는데 어떻게 봉지 라면을 끓여먹겠는가. 당연히 컵라면이 가장 큰 대책이다. 사실 난 컵라면을 싫어했다. 정말 싫어했다. 불닭볶음면을 제외하고 인생에서 먹은 컵라면이 손에서 꼽을 정도였다. 대학교 따닐 때도 돈이 없으면 삼각김밥을 사먹었지 컵라면을 사 먹지는 않았다. 하지만 환경은 사람을 바꾼다. 얼마든지 돈만 조금 있으면 미각에 강렬한 자극을 선사할 수 있었던 사회와는 달리 군대에서 먹는 것들은 미각에 강렬한 자극을 주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병 때는 그런 자극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았다. 일단 새로운 식단이 매일 주어지고 있었으며 매일 주어지는 불고기 등의 새로운 식단은 나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이렇게 세 끼만 꼬박꼬박 챙겨먹어도 충분히 배가 찼으며 굳이 강렬한 자극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다. 식단은 바뀌질 않아 한 달에도 몇 번씩 똑같은 식단을 먹어야 했으며 급양병은 요리를 전문으로 하던 사람들이 아니다 보니 음식을 태우는 경우도 없지 않았고, 가끔은 ‘전투식량’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식단이 나와 우리를 괴롭혔다. 또한, 헌병의 근무는 일정한 일과 및 주간 근무가 아니어서 늦은 밤이나 새벽에 근무가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고 근무가 끝나면 밀려오는 배고픔은 정해진 시간에 내주는 밥이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위에서 말했듯이 집에서 배고픔을 달래려 가끔 해먹었던 끓인 라면은 만들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컵라면에 손을 대고야 말았다. 한 번 하는 것이 어렵지 두 번은 쉽고 그 다음은 더 쉬웠다. 상병 쯤 되자 컵라면은 나의 희망이자 믿음 그리고 구원이자 신앙 그 자체가 되었다. 내 군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무언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에 가장 좋아했던 라면은 불닭볶음면과 팔도비빔면이었다. 원래부터 매운 것을 좋아했기에 달짝지근하면서도 혀를 데우는 매운 맛의 절묘한 조화를 이룬 불닭볶음면을 좋아하게 된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매운 맛을 계속 먹기 힘들 때 새콤달콤한 맛이 강한 팔도비빔면을 한 젓가락 먹으면 입 안에서는 매운 맛이 전체를 감싸면서도 그 주변에 단맛이 오묘하게 스며들은 중간에 새콤달콤한 맛이 불쑥불쑥 튀어나와 맛 전체가 조화를 이루었다. 근무 끝나고 먹는 불닭볶음면과 팔도비빔면은 정말 내 군생활에 몇 없는 낙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라면을 먹기 시작하며 시간을 보내자 추운 겨울이 찾아왔다. 개인적으로 포장마차에서 파는 어묵을 정말 좋아하는데 어묵도 맛있을 뿐만 아니라 종이컵에 담아 먹는 짭짤한 어묵육수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군대에 그런 게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데 헌병의 근무는 외부에서 경계를 서는 것이 주 임무기 때문에 추운 밖에 있다가 따뜻한 생활관으로 들어오면 몸이 녹으면서 따뜻한 국물이 매우 고파진다. 그래서 비빔면으로 끝내자던 나의 다짐은 여지 없이 무너지고 국물이 들어간 컵라면을 끓여 국물을 먹기 시작했다. 그 망할 나트륨 덩어리가 가득한 빨간 국물이 얼마나 맛있던지. 결국 나는 끊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중에서도 진라면 매운 맛은 가격도 엄청 쌀 뿐만 아니라 내 입맛을 저격해버려서 내 최애 컵라면이 되버렸다.
환경이 사람을 만든다. 하지만 주어진 환경에서 더 나은 삶을 추구하기 위해 사람은 노력한다. 매일 컵라면만 먹다보면 질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모두들 B.X. 구석에 놓여 있는 봉지라면에 주목했고 환경호르몬 때문에 주저하고 있던 뽀글이를 끓여먹기 시작했다. 확실히 맛은 차원이 달랐지만 만드는 과정이 너무 고되었고 환경호르몬에 대한 걱정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그리고 누가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들 보급으로 나오는 쌀국수 비빔면에 주목했고 그 이후에는 전자레인지의 능력을 재발견했다. 그 맛없는 쌀국수 비빔면의 내용물을 모두 버리면 꽤 큰 종이 용기 하나만 남는데 여기에 뜨거운 물을 넣고 라면스프와 면을 넣은 후 전자레인지에 끓여먹으면 끓인 라면 맛이 났다. 혁명이었다. 우리에게 머나먼 프랑스에서 1789년에 벌어진 대혁명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충격을 부대 병사들의 혀에 가져다주었고 중간에는 쌀국수 비빔면 용기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
그리고 사람은 더 나은 삶을 추구하여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종이용기는 일회성이었고 보급은 한 달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했으므로 우리는 컵라면 또는 뽀글이에 만족해야만 하는 나날들이 많았다. 이에 생각을 한 번 더 발전시킨 누군가가 아예 유리로 된 내열 용기를 가져오면서 혁명은 완성된다.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종이용기와 달리 퐁퐁만 있다면 몇 번 이고 재사용이 가능했으며 큰 용기를 가져온다면 한 번에 두 개 이상도 끓일 수 있어 그저 혁명 그 자체였다. 나는 이것마저 사오면 나 자신을 제어하지 못해 컵라면에 푹 빠질 것 같아 사오지는 않고 하나의 레시피를 따로 개발했다.
라면 두 개를 한 용기에 섞어먹는데 하나는 컵라면(불닭볶음면)으로 하나는 봉지(짜파게티)로 산다. 컵라면에 물을 부어 데우고 봉지라면은 한 1분정도만 뽀글이를 해 면을 살짝만 익힌다. 그리고 1분정도 지나면 컵라면은 물을 반만 버리고 뽀글이는 물을 다 버린 상태로 라면스프를 넣고 전자레인지에 5분 정도를 돌린다. 그리고 그 위에 소스를 뿌리고 잘 섞어주면 맛있는 불닭짜파게티(?)가 완성된다. 짜파게티의 단맛 그리고 풍미유의 향과 불닭의 매운 맛이 적절히 어우러져 별미가 따로 없다. 이 외에 전자레인지로 물을 졸여 진라면을 비빔면으로 만드는 것도 국물 있는 진라면과는 완전히 다른 풍미를 느낄 수 있어 아주 좋아한다.
결국 각종 방법까지 개발하면서 라면을 찾아 먹다보니 라면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고 일주일에 컵라면을 한 5개씩은 꼬박꼬박 먹고 있는 것 같다. 어마무시한 나트륨에 망가질 몸이 걱정되지만 운동으로 흘리는 땀에 그 나트륨이 다 나올 것이라고 생각하며 나를 위로하고 있다. 맞후임은 나에게 라면 그렇게 먹어도 괜찮냐는 걱정을 해주고 있지만 이미 자극적인 라면의 짠맛에 길들여진 나는 아마 전역할 때까지 이 맛을 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기에 아마 갖가지 음식들을 사회에서 맛보게 된다면 컵라면은 군생활 한 편의 추억으로만 남을 것이라고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