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부대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경계등을 모두 led로 바꾸었다.(경계등은 사실상 부대 울타리를 따라 있는 가로등과 다를 바 없으므로 이후엔 가로등이라 부르겠다.) 자꾸 전봇대에 있는 무언가를 교체하기에 뭔가 했더니 가로등의 전구였던가 보다. 사실 무엇을 교체하는지도 몰랐지만, 야간 순찰을 할 때 느껴지는 이질감 때문에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밝기가 더 밝아졌을 뿐만 아니라 주광색의 따뜻한 느낌을 주던 빛이 차디 찬 푸른빛을 띤 하얀색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를 안타까워하면서 내가 언제부터 가로등을 이렇게까지 신경 썼는지 궁금해졌다.
처음 가로등의 존재를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이제는 비행기 말고는 아무것도 피아노로 연주하지 못하는 나는 대략 한 5년 동안 피아노 학원을 다녔었다. 신은 나에게 모차르트의 재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다른 한 가지 이유로도 피아노 학원을 싫어했다. 가끔 수업을 야간까지 하고 나면 집에 가는 어두운 길이 무서운 심신미약의 초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귀신을 한창 무서워하던 때라 정말 풀숲 하나하나에도 귀신이 튀어나오는 것을 조심하며 집으로 돌아왔었다. 고작 3분정도의 거리에서도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어두운 곳을 피하려 가로등이 있는 곳만을 찾아다녔었는데 그 때 처음으로 가로등을 발명한 사람에게 큰 고마움을 느꼈던 것 같다.
어둠을 무서워하던 초등학생은 이제 나이가 먹어 어둠을 좀 덜 무서워하는 중학생이 되었다. 귀신이 나온다는 것은 이제 어지간한 농담으로 치부할 수 있게 된 나는 가로등이 별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가로등의 존재를 조금씩 잊어가던 사춘기의 나는 어느 명절 때 외가에서 돌아오는 길에 가로등을 재발견 하게 되었다. 외가에서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아주 늦은 밤이라 서울에서 오산으로 오는 경부고속도로는 아우토반이 따로 없었다. 그런 경부고속도로에서 속도를 가장 잘 체감시켜주는 일정한 속도로 서있는 가로등이었다. 가로등은 자동차에 속도에 맞추어 알아서 뒤로 가는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차창 너머의 가로등을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빛을 내는 긴 막대기가 계속 뒤로 사라지고 앞으로는 계속 나타나는 것이 반복되는 것은 아주 신기한 경험이어서 계속 바라보게 되었다. 그렇게 바라만 보다가 나는 이 가로등이 어디까지 이어져있는지를 고민해보고는 했다.
중학교 때 공부를 꽤 열심히 했던 덕에 무난하게 원했던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여기가 얼마나 대단한 곳이냐면 비가 오면 인터넷이고 공중전화고 먹통이 되는 그런 산골이었다. 운동장에서는 고라니와 함께 축구를 하는 것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그랬던 곳이라 가로등은 학교를 벗어나면 말 그대로 켜지든 안 켜지든 지 맘이라 안 켜지면 달빛에 의존해 걸어야만 했다. 그 덕에 달빛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게 되었지만, 반대로 가로등의 소중함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렇게 달빛에 취해 그 정취를 즐기기 이전에 암흑을 몰아내고 싶어 늘 가로등이 켜져 있기만을 바라던 3년이 지나 그렇게 원하던 인공의 빛이 잔뜩 모인 곳으로 대학을 가게 된다.
사실 대학에 와서는 가로등이 안 켜진 것을 보기 더 힘들었기에 그에 대한 생각은 하지 않게 되었다. 없을 때의 간절함은 다 잊은 채로 당연한 편리함에 빠져 가로등의 존재에 대해 하나씩 잊어갔다. 그러다 군대 가기 직전 일본 여행에서 가로등의 필요성을 다시 한 번 체감하게 된다. 일본 여행 첫째 날 아라시야마의 도게츠교(渡月橋, 달이 건너는 다리)를 밤에 보기 위해 나왔을 때였다. 달이 비추는 아라시야마의 도게츠교의 풍경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나에게 선사해주었다. 그에 버금가게 나에게 정취를 주었던 장면은 가로등 하나 켜져 있고 모든 불이 꺼져 있는 일본의 자그마한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였다. 가로등은 분명히 불을 키고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지만, 주변의 어둠에 묻혀 오히려 그 빛은 쓸쓸함을 흩뿌리고 있었다. 마치 세계 마지막의 가로등 같은 느낌을 주었던 그 장면은 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이제 내 짧은 인생에서의 가로등들을 거쳐 내가 가장 최근에 보았고 얼마간은 계속 보게 될 가로등으로 돌아왔다. 이제 가로등은 귀신을 물리치는 빛을 뿜는 것, 고속도로에 서있는 커다란 설치미술, 어두운 길을 밝혀주는 고마운 존재를 넘어서 나에게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까지 발전했다. 내가 부대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로등은 생활관에서 구 흡연장 쪽으로 내려가는 계단의 위에 있는 가로등이다. 디자인은 깔끔하고 수려한 곡선도 아니고, 모더니즘에서 흔히 보이는 직각의 기능주의적인 그것도 아니다. 그냥 낡아서 쓰러질지도 모른다고 생각되는 회색의 기둥에 밑면이 넓은 거대한 원뿔을 거꾸로 걸어 놓은 그런 옛날 가로등과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그 옛날의 것과는 디자인이 모두 딱딱하게만 돌아가는 군대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아날로그틱한 감성을 주어 마음에 알 수 없는 따뜻한 무언가를 불어넣어주었다. 그리고 전구에서 나오는 빛은 아주 따뜻한 주광색의 빛이어서 바라만 보고 있어도 평화로워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주광색의 빛은 위의 전구 교체로 인해 밝기는 훨씬 세졌지만, 이런 분위기는 모두 잃어버렸다. 모습은 그대로 이지만, 차가운 느낌의 흰 빛은 그 배경마저 모두 바꿔버려 예전에 내가 알던 그 가로등이 아니었다. 주광색의 은은한 빛으로 밤의 어둠과 조화를 이루었던 주변의 공간은 독재적인 흰 빛이 어둠을 모두 밀어내어 조화를 모두 깨버리고 얼어붙은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빛으로 주변을 밝힌다는 목적에는 더 부합한 조치였지만, 그 전에도 계단은 잘 보여 이동에는 불편함이 없었기 때문에 안타까움만 늘었다. 이런 조치는 모든 가로등에 이루어져 별이 보이는 밤하늘과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부대의 밤풍경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 그럼에도 다시 전구를 바꿀 수는 없는 나는 가로등 밑을 지날 때마다 안타까움을 속으로 집어 삼켜야만 했다.
이제 나는 이제 겨울에 부대에 쌓인 흰 눈에 쏟아지던 주광색 불빛의 따뜻함이 아닌 푸른빛이 가득 맴도는 흰빛의 차가움을 느껴야 한다. 따뜻함을 물방울에 가득 안고 쏟아지는 비가 아닌 차가움을 가득 안고 쏟아지는 비를 맞아야 한다. 주광색으로 해무를 물들이며 나에게 오는 따뜻한 빛을 받지 못하고 해무를 밀어붙이며 나에게 닿으려 하는 차가운 빛을 피해 도망 다녀야 한다. 그리고 효율과 성과를 중시하는 차디 찬 이곳에서 마음을 줄 수 있던 중요한 안식처 중 하나를 잃어버렸다. 이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크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대대장이 아닌 일개 병사에 불과한걸. 그냥 전역 날이 빨리 다가오기만을 바라는 이유가 하나 늘었다는 것에 슬퍼하는 방법밖에 없다. 정말 전역만이 기다려지는, 가로등이 비추는 오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