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진짜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부대 내 내무반에 있다는 침상을 보고서는 되게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때는 군대에 간다는 실감이 별로 없어서 내가 저기서 자야 한다는 생각은 일도 들지 않았다. 그리고 때가 되어 작년 3월 진주에 있는 훈련소로 들어와 방을 배정받고 침상과 그 위에 있는 관물함을 확인하고 나서야 내가 군대에 왔음을 알았다. 집에서 나를 반기며 홀로 내 방을 지키던 푹신한 침대의 촉감과 학교 3년 생활 동안 나의 지친 심신을 위로하던 2층 침대의 삐걱대는 소리를 벗어나 완전히 새로운 경험과 맞닥뜨리는 순간이었다.
한 줄에 8명 쯤 잤던 그 침상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딱딱했지만 결코 푹신하지는 않았고 자고 나면 등이 배길 것이라는 예감은 지울 수가 없었다. 다행히 관물함 밑에 있는 매트릭스를 깔고 자는 것이었고 매트릭스를 깔고 나니 생각보다 푹신해서 개고생할 것 같아 걱정만 하고 있던 나의 마음을 잠시나마 안정시켜주었다. 그리고 그 걱정은 현실이 되었으며, 훈련은 고되었고 몸은 피로했다. 하루의 마지막에 나를 쉬게 하던 매트릭스는 천국이 따로 없었으며 차갑기만 하고 딱딱하던 군생활에 동기들과 나누던 대화와 더불어 몇 안 되는 따뜻한 위로였다.
가끔 자다가 중간에 깨서 한 시간 정도 서야 하던 불침번은 너무 아쉽고 슬펐다. 잠시나마 군대에서 벗어나 있는 꿈속의 나를 현실로 불러들이는 그 순간이란. 침대가 붙들고 놔주지 않는 걸 마치 억지로 떼어 내는 그 느낌이 정말 이별의 슬픔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듯했다. 그래도 단 하루 훈련소를 나가는 날은 정말 기분 좋게 그 이별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었다. 아쉬움이 남을 거라 생각했지만 미운 정도 없는지 정말 홀가분하게 그 공간을 빠져나왔던 것 같다. 하지만 훈련소는 군생활의 끝이 아니었고 그 다음에 나를 기다리는 특기학교는 자대 전 마지막으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장소였다.
다른 특기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행정학교에서 만난 이층침대는 정말 푹신했다. 사실 매트릭스는 똑같았지만 느낌이 그랬던 것 같다. 똑같은 매트릭스임에도 불구하고 행정학교의 자유로운 분위기는 나를 행복하게 했다. 그리고 침상에서 침대로 바뀐 것도 한 몫 한 것 같았다. 뭔가 사회에 한 발 더 가까워진 기분 같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부터 여기까지 어떻게 버텨왔나 싶지만. 쨌든 일과 시간에만 학과 수업을 받고 저녁 자유 시간에는 바보상자를 보는 그 시간들은 나에겐 너무나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주말에는 아침부터 밤까지 내내 자유 시간이었으니 말 다했다. 그런 행복을 뒷받침하던 침대와 짧은 2주의 쉬는 기간을 넘기고 나는 인천행 버스에 몸을 맡겼다.
도착한 인천 부대는 훈련소와 같은 침상이었지만 그 부대를 관리하는 병사는 정말 하는 일 하나 없어 보이기도 했고 사실이기도 해서 그 침상에서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런 운은 나에게 있을 리가 없었고 백령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나를 위해 선임들이 이불 빨래를 해 놓은 침대를 잡아 놓은 상태였다. 군대에서 처음 보는 일층 침대는 나에게는 여태껏 경험해온 어느 군생활보다도 이곳이 좋은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듯했다. 하지만 자대에서 가장 낮은 사람에게 군생활은 편할 수가 없었다. 매일 사역에 불려나가고 일하고 청소하는 나에게 가장 행복한 순간은 바로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자는 시간이었다. 이상한 동기가 사고 쳐서 같이 혼날 일 없고 어처구니없는 꼰대 짓을 당할 일도 없었다. 그저 오로지 나만 생각하다 편히 쉴 수 있는 시간 그게 자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그런 시간을 영유할 수 있는 공간인 침대는 부대에서 가장 낮은 내가 차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침대와 친밀감을 쌓아왔지만 사람은 편해지면 더 편한 것을 찾듯이 훈련소 때부터 변하지 않는 매트릭스에 대한 불만감은 불현듯 찾아왔다. 라텍스 같은 매트릭스가 부대에 한 대여섯 개 정도 전설처럼 내려오는 것을 알게 된 날이었다. 아니 알고는 있었지만 그 침대에 처음 누워본 날이라고 해야겠다. 사회의 침대의 매트릭스의 느낌을 주었던 그 매트릭스는 내가 부대에 있지 말아야할 이유를 추가해주었다. 하지만 매트릭스가 훨씬 딱딱하다고 잠을 못잘 나는 아니었다. 야간 근무를 하루도 뛰지 않는 날이 없으며 개들과 놀아주는 피로한 생활이 계속되는 삶은 땅바닥에 누워 잠을 자라 그래도 잘 수 있었으니까. 더 좋은 매트릭스가 있음을 알아도 여전히 내 침대는 군생활에서 휴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침대도 나의 휴식일 수는 없었다. 잠을 잘 자지 못하던 한 때, 침대에 눕는 건 휴식이지 않았다.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눈은 빛은 잃어 총명함을 발하지 못하되 감을 수가 없었으며 감는다고 하더라도 한 시간에 한 번씩 깨서 제대로 잠을 잤는지조차 의심하게 만들었다. 계속해서 나는 침대를 벗어났고 나는 침대가 아닌 내 공간을 한 번이라도 만들려 연등시간에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거나 사지방(PC방)에서 글을 썼고 새벽 내내 혼자 휴게실에서 바보상자에 빠져 뜨는 해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방황할 때도 침대는 언젠가 내가 편히 휴식을 취할 날을 기다리며 늘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집에 가고 싶은 이유는 편히 쉬고 싶어서, 그 쉼을 통해서 차갑고 힘든 사회의 어딘가로 부터 벗어나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군생활에서 생활관의 침대도 그런 장소다. 근무에 치여 스트레스 받을 때, 마치 벽에 막힌 느낌으로 인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가끔은 침대를 찾지 않게 될 때도 있다. 너무 피폐한 정신이 자꾸 부정적인 생각들만을 몰고 올 때면 아무것도 하지 않게 만드는 침대는 그런 생각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이 끝나고 몸도 마음도 지쳐 잠만 자고 다 잊고 싶을 때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침대는 나를 따뜻하게 맞아준다. 잠은 피곤하다면 운동장에서도 버스 의자에서도 지하철 손잡이에 기대어 서서도 잘 수 있다. 하지만 침대는 그런 곳들과는 달리 잠을 자는 것을 넘어서 잠을 자는 그 공간이 내 공간임을 인식시켜주고 공간의 소유에 딸려오는 안정감을 통해 고단한 삶에 휴식을 준다. 그를 통해 난 다시 세상으로 나아갈 동력을 얻는다. 군생활의 침대 또한 다를 바 없다. 내 차갑고 지루한 회색빛의 군생활에서 잠시 벗어나 유채색의 빛을 발하며 나에게 온기를 더하는 곳, 그곳이 내 침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