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선임 중 한 명이 전역할 때가 되어 미리 군견병으로 한 명을 받았다. 나 휴가 갈 때쯤 군견병으로 올라와서인지 업무능력도 좋고 성격도 사근사근해서 괜찮은 후임이 들어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다보니 그 후임과 근무를 한 일주일 정도 붙게 되었다. 기수차이가 꽤 많이 나서 내가 어려운지 잘 말도 못 붙이고 조용히 있어 근무가 어색해지는 느낌이어서 이것저것 말을 붙여 봤지만 어떤 것이 취미이고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모르겠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순찰을 돌다 부대 높은 곳 언덕으로 올라왔을 때 말을 한 마디 했는데 되게 놀라웠다. “밤하늘이 참 예쁘다.”
사실 누구나 이 말을 할 정도로 백령도의 밤하늘은 예쁘고 아름다우며 인상적이다. 높은 지대는 아니어서 강원도 산골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도시의 빛 공해 속에서 살던 평범한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기엔 충분하다. 다만 내가 놀랐던 이유는 그 어떤 후임도 힘든 새벽 1시의 야간 순찰 중 밤하늘을 쳐다보려 고개를 치켜든 후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편하게 해도 어쨌든 불편할 수밖에 없는 선임과의 순찰 속에서 하늘을 볼 여유 따위는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거기서 여유를 가지고 밤하늘을 바라봤던 그 신병에게서 나는 긍정적인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사실 나도 일부러 노을이 지는 하늘이나 밤하늘을 보려고 밖에 나가 한두 시간쯤 서있는 일을 신병 때부터 반복해 왔기에 놀랍지는 않았다. 그때마다 본 은하수, 별들, 그리고 청명한 파란빛 위에 덮어지는 은은한 붉은 빛의 하늘은 내 군생활에 있어서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는 소재였다. 하지만 몇 분을 넘어서 몇 시간씩 서서 하늘만 바라보는 것은 육체적으로 썩 좋은 행동은 아니었기에 다들 신기하게 쳐다보곤 했고, 그래서 나중에는 근무시간이 아니라 저녁 휴식 시간에 조용히 나가 보고 오곤 했다. 그렇게 소확행을 채우는 사람을 보기는 정말 힘들었는데 이번 신병이 그런 사람 같아 왠지 모를 동질감과 함께 반갑기도 했다.
이런 반가움을 숨긴 채로 나도 그 자리에 서서 그저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높은 지대는 아닌지라 은하수는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다양하게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은 잠시나마 여기가 군대라는 것을 잊게 해주었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어 순찰을 다시 재개했을 때는 아쉬움이 아주 남았다. 그리고 후임 또한 밤하늘을 보는 걸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것 같아 순찰을 조금 빨리 돌고 헬리패드로 올라가 별을 잠시 관찰하자고 권유했고 후임은 기다렸다는 듯 흔쾌히 동의했다. 아마 그 근무시간 중 후임이 가장 밝은 목소리를 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밤하늘을 볼 거라는 기대 속에 신속하고 기분 좋게 순찰을 다 돌고 어둠이 내린 헬리패드로 천천히 올라갔다. 손전등의 가녀린 빛에 의지하여 올라간 헬리패드에는 손전등 빛을 제외하고는 별빛만이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손전등을 끄고 고개를 꺾어 하늘을 보자 방금 보았던 별들보다도 많은 별들이 하늘에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꺾어 보는 게 힘들 때쯤 옛날에 초소에서 근무하다 새벽 2시에 눈치 봐가며 누워서 별들을 바라보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리고 귀에 들리는 소심한 혼잣말. “누워서 보고 싶다…….” 사람 생각하는 건 다 비슷한가보다. 피식 웃으며 후임에게 누워서 보자고 했다.
달마저 잠들어버린 새까만 밤에 알알이 박혀있는 별들은 빛나는 유일무이한 존재들이었다. 새까만 배경을 뒤로 하고 내게로 다가오는 빛들은 수 천 수 만 년 이상을 날아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별들은 그 빛을 잃지 않고 이 먼 지구에 닿아 우리의 감성을 불러일으켜 자그마한 행복을 전달하고 있었다. 간만에 별들이 가득한 아름다운 밤하늘에 감성이 충만해질 때쯤 후임의 혼잣말. “별이 쏟아지네.” 나야 이 부대에서 수십 번을 그 별이 쏟아지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후임에게는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 처음 본 밤하늘이 군생활에서 아주 인상 깊게 남기를 바라던 차에 어디선가 모기가 나타나 얼굴을 물어뜯어 후임의 감성을 더는 지켜주지는 못했다. 어둠 속에 후임의 아쉬움이 보이는 듯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모기의 앵앵거리는 소리는 아름다운 꾀꼬리 소리가 아니니까. 그렇게 피곤한 야간 순찰의 자그마한 휴식은 끝나버렸다.
그 다음날 맑고 아름다운 하늘을 보며 후임이 한 이야기는 나를 또 한 번 웃음 짓게 만들었다. “피크닉 가고 싶습니다. 이런 날씨에 친구들이랑 돗자리 깔고 놀면 정말 좋을 것 같습니다.” 아, 삭막한 군대에서 이런 희망찬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을 얼마나 오랜만에 보는지 모르겠다. 말을 하는 그 표정에는 웃음기가 가득했고 정말 행복이 느껴지는 억양이 이 친구의 순수함과 긍정적임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어떤가?’라는 생각이 불현듯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일 년 넘는 긴 시간 동안 군대에 있으면서 이런 자그마한 행복들을 잊어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여전히 밤하늘을 보고 노을을 보면서 소확행을 얻고 있지만 과연 전만큼의 행복인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들었다. 이미 반복되는 군생활 속에 감정이 너무 메말라가는 게 아닌가 싶었다. 만사가 짜증으로 가득해지고 부정적인 생각이 너무 반복되는 느낌이었다.
잠시 어제 TV를 돌리다 <멜로가 체질>이라는 드라마의 한 부분이 나왔다.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주인공이 일상의 행복함을 여주인공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늦잠 자다 따사로운 햇살에 일어나는 게 좋고, 그 햇살에 뽀송뽀송해진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게 좋고, 다시 낮잠을 자려 할 때쯤 세탁기에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송어>가 좋아.……”로 이어지면 일상을 설명하고 있었다. 군대 일상을 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지만 결국 좋게 받아들이는 것은 내 맘에 달린 일이라는 것을 마음 깊이 깨닫게 되었다. 부정적이기 싫어 점점 무관심으로 대응하고 있는 군생활 일과 하나하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봐야겠다. 만약 그게 힘들다면 적어도 그 중간 중간에 숨어있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들을 찾아나가며 남은 군생활을 좋은 기억으로 마무리하려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