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과도 없고 할 일도 크게 없어 저녁에 시간이 남아 핸드폰을 꺼내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친구와 하는 수다는 늘 그렇듯 즐거웠지만 백령도와 멀리 떨어진 곳이라 그런지 통화 음질이 썩 좋지는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생활관에서 떠들다 밖에 나가 바람을 쐬며 통화하고 싶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한참을 떠들던 수다를 멈추고 그 친구가 한 가지 말을 했는데 그게 좀 충격이었던 것 같다. “와 밖에서 들리는 소리 새소리야? 진짜 듣기 좋다.”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던 그 소리는 내가 다시 귀를 기울이자 높은 고음의 듣기 좋은 명랑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 얘기를 듣고 나는 그저 군대라서 저런 소리도 별로라는 우스갯소리로 넘겼지만 약간 당황했다. 너무 주변에 무관심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에서였다.
새소리 하나 못 들은 것 가지고 뭘 그리 유난을 떨고 있냐고 물을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그 이유는 작년 8월 나와 열아홉 기수가 차이나는 전역 일주일도 안 남은 선임의 근무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혀 일면식도 없고 대화 한 번 해본 적 없었지만 5시간 동안 초소에서 할 일이 없었던 우리는 조금씩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이제 막 첫 휴가를 갔다 온 신병과 전역 직전의 병장의 근무 중 기억나는 것은 그리 많지 않았다. 노을 진 하늘 아래 처음으로 전투헬기가 사격하는 장면을 본 기억과 더불어 아직까지도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은 것은 그 병장이 전역직전에 자신의 군생활을 돌아보며 해준 말이었다.
“사실 나는 공군 좀 꿀도 빨고 공부하려고 왔어. 수학 문제집을 막 사다가 풀기도 하고 공부도 꽤 열심히 했던 것 같아. 하지만, 여기서 길게 할 건 못되더라. 그렇게 막 시간이 지나다 보니까 어느새 전역이야. 근데 그 와중에 군대 안에서의 의미를 찾게 됐어.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에서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고 다시는 해 볼 수 없는 경험들을 한 것. 그니까 내 인생을 좀 더 다채롭게 만들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을 했던 것 그것이 군생활에서 얻은 것이라고 생각해.”
사실 이 말을 듣고 나는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사실 무슨 이게 말이 되는 얘기인가 싶었다. 막내일로 치이고 근무로 치여 자유 시간조차 없는 내게 이런 것은 사치라고 느꼈으니까. 하지만 끝나지 않을 것 같던 막내일이 끝나고 상병이 되어가면서 나에게 자유시간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늘 생각해왔던 대로 책을 가져와 읽기 시작하고 운동 시간을 조금씩 늘려나갔다. 그리고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부대의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노을이 져가는 아름다운 하늘, 일출 전의 고요함이 가득한 하늘, 번개가 내리치는 밤하늘, 별들이 수놓아져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밤하늘, 봄에 피는 꽃, 여름에 나타나는 신기한 벌레들, 가을을 장식하는 울긋불긋한 단풍, 그리고 새하얀 눈이 뒤덮여 소리가 아닌 외관마저 사라져 버린 부대의 풍경을 눈에 담아가며 부대에서 나만의 새로운 경험을 쌓아갔다.
이렇게 어렵사리 부대에서의 일 년을 넘기고 병장이 되자 여러 가지 것들이 익숙해지고 작년에 봤던 풍경들을 또 보기 시작하면서 나는 점점 부대에 대해 무감각해졌다. 그리고 부대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들만 쌓아가며 전역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휴가만 생각하며 그저 휴가 때 무얼 할지 고민하는 시간만 늘어났다. 늘 하던 독서와 운동은 계속했지만 지금 현재 내가 있는 공간에서 쌓아가는 시간에서 지금만 느낄 수 있는 경험들을 무시해왔다. 그리고 그것을 깨닫게 한 계기를 준 것이 어제 한 통화였다. 사실 저녁에 들리는 새들의 소프라노와 풀벌레들의 테너로 이루어진 합창은 절대 사회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닌데도 그걸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휴가 나가고 싶다는 미래만 생각하며 익숙해진 현재의 새로움을 알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너무나 컸다.
자유가 너무나 통제되고 딱딱하고 각박하기만 이 군대에서 사실 전역을 간절히 바라고 휴가만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군대라는 2년은 다시 오지 않으며 피할 수 없는 일 이상 즐겨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군대에서 있는 시간이 솔직히 기분 좋을 수 없지 만은 적어도 기억 한 편에 풀벌레와 새들의 노래를 담을 수 있게 익숙함에 젖어들어 무감각해지는 것만은 피해야할 것 같다. 이따 있을 새벽 근무 때는 조금 더 긍정적인 마음으로 익숙해졌다는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나에게 소소하지만 새롭고 반짝이는 경험을 담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