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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바람

by baekja

바람은 제주를 상징하는 것들 중 하나입니다. 삼다도(三多島) 제주에서 가장 많은 세 가지도 바람, 여자, 돌이지요. 제주를 상징할 정도로 많이 분다지만, 사실 제주도민들에게 바람은 마냥 좋은 것은 아닙니다. 소금기를 머금고 불어오는 강한 해풍은 제주도에 농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이며 자신들의 생업인 어업에 큰 지장을 줍니다. 바람이 시도 때도 없이 불다보니 주거에도 영향을 미쳐 제주도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이면 어렵지 않게 돌담을 찾아볼 수 있고 전통 가옥의 지붕은 새끼줄로 묶어 고정하기도 했습니다.


여행객에겐 바람은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겨울에도 날씨 좋으면 어렵지 않게 섭씨 15도 이상을 기록하는 제주에서 바람은 무척 반갑습니다. 바다를 통해 불어오는 바람이 꾸준하게 불지 않는다면 무더운 제주의 날씨를 식혀줄 것은 없으니까요. 더운 제주의 날씨를 이겨내고 걸어야하는 여행객에게 제주의 바람은 마치 사막에서 만난 오아시스처럼 반갑습니다. 물론 너무 강한 바람이 불면 비행기나 배가 다니지 못해 제주도에 들어오기 힘들어지고 야외활동도 힘들어지긴 합니다.


대부분의 바람은 비나 눈과 함께 오지만, 제주도는 아주 맑은 날에도 바람이 세게 불기도 합니다. 10코스 제주현대사의 비극을 품고 있는 알뜨르 비행장이 있는 곳입니다. 제주에서 보기 힘든 평평하고 넓은 평지가 있는 곳으로 알뜨르의 의미는 ‘아래 벌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가로 막는 것이 하나 없는 이곳엔 밭과 일제 강점기 당시 비행장이었던 흔적만 찾아볼 수 있는 다 스러져가는 시설 몇 개만 있을 뿐입니다. 그러다보니 바람이 어느 때나 무척 강한 곳이기도 하죠.


하모해수욕장에 도달하기 전까지 이 벌판을 지나가야 하는데 바람이 무척 세서 눈을 뜨기조차 힘듭니다. 확실히 사람이 살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비행장이 지어지기 전에도 민가가 지어진 주거 지역이 아닌 농사를 짓던 곳이라고 하더군요. 당시에는 무엇을 수확했을지 알 수 없지만, 제가 들판을 지날 때는 강한 바람을 이겨내고 잘 여문 비트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소금기 가득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커다란 뿌리를 길러내는 비트의 생명력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알뜨르에서 바람은 제주도민에게나 이곳을 지나는 여행객에게나 썩 좋은 것으로 인식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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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하다는 것이 마냥 안 좋지만은 않습니다. 사람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강한 바람을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요. 19코스 복촌 포구를 지나 김녕리 남흘동까지 이어지는 곶자왈올레에서는 동복·북촌 풍력발전단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올레길 곳곳에 풍력발전기들이 있고 풍력발전기들이 모여 있는 아름다운 광경들도 볼 수 있지만, 풍력발전단지 바로 밑을 지나는 것은 이 코스 뿐입니다.


풍력발전기가 돌아가는 모습을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니 아름다움을 느끼거나 감동을 받기 보다는 그냥 크다는 느낌만 받았습니다. ‘거인 아래에 있는 소인이 이런 느낌일까?’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저 거대한 프로펠러가 지지대에서 떨어지면 어떻게 피해야 하지?’라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더 기억에 남는 건 커다란 모습보다 소음이었습니다. 자동차나 비행기의 엔진과 같은 부아앙하는 소리는 아니었지만, 프로펠러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나는 우웅 소리가 무척 거슬렸습니다. 어렸을 적 배운 풍력발전기의 가장 큰 단점이라던 소음을 직접 체험하니 신기했습니다. 다만, 이 소음이 거주 지역과는 떨어져 있어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곶자왈의 생물들에게는 꽤 스트레스가 될 것 같긴 했습니다. 분명 석유나 석탄 발전보다 환경에 덜 영향을 주기는 하겠지만, 인간이 발전을 하면 할수록 환경을 괴롭히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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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자연의 일부입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마냥 좋은 것만을 주지는 않지만, 자연의 강력한 힘을 버텨내고 살아갈 자원을 인간에게 제공해줍니다. 제주에서는 바람의 강력한 힘을 버텨내기 위해 자연에서 주는 자원인 돌로 막아내는 것이 전통이 되었지요. 농업에서는 바람을 피해 땅속에서 자라나는 식물들을 자연에서 얻어 자라게 하고 있으며 이제는 아예 강한 바람을 막지 않고 이용해서 풍력발전을 하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을 꾸준히 보고 있으면 사실 여행객에게 제주에서 바람의 의미는 더위를 식혀주거나 야외 활동을 힘들게 한다는 의미보다는 강한 바람이 부는 제주라는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경관들을 제공하는 진정한 제주의 상징이라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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