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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무릎

by baekja

제 무릎은 썩 좋지 않습니다. 무릎에 처음 이상을 느낀 것은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이었습니다. 동아리 활동으로 익히던 상모돌리기를 과격하게 한 것이 그 이유였습니다. 별 문제없이 하루 이틀이면 나을 줄 알았던 무릎은 갈수록 악화되었고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고 나간 야간 상하차 알바 이후 무릎의 통증은 고질병이 되어버렸습니다. 비만 오면 미친 듯이 쑤셔오는 무릎 때문에 한동안은 정형외과 신세를 지기도 했지요. 그래도 큰 부상 없이 무난하게 관리를 하며 몇 달 후부터는 일상생활에 전혀 지장이 없게 되었습니다.

위의 시기로부터 몇 년 후인 제주올레 여행에서 저는 다시 무릎을 다치게 됩니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3-A코스 통오름을 내려오다가 미끄러졌고 그 과정에서 착지를 잘못해 왼쪽 무릎이 크게 삡니다. 다칠 때 더 심하게 다친 왼쪽 무릎이라 꽤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칠 당시에는 큰 통증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갈수록 통증이 커져 다음날 4코스를 걷기 시작할 때는 계속 절뚝거리며 걸어야했습니다.


4코스와 그 뒤의 5코스는 대부분이 평지라 일단은 참고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이틀 다 날씨가 다 괜찮았고 험한 평지 코스도 아니어서 어떻게든 완주는 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거운 짐을 들고 오랜 시간 절뚝이면서 걷다보니 무릎의 통증은 갈수록 심해졌고 무릎이 무게를 버텨주지 못하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양쪽 발목 또한 급격하게 나빠졌습니다. 5코스 종점인 쇠소깍에 도착해서는 제주올레 완주를 포기해야할 지경에 이르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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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에 도착해서는 발목과 무릎 보호대, 파스 등을 살 수 있었기에 일단은 6코스를 넘어가는 것이 무척 중요했습니다. 6코스에서 다른 곳들보다 크게 문제가 된 곳은 제지기오름이었습니다. 그리 높지 않은 오름이었음에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지날 때 무릎이 받는 부담이 엄청나 생각 외로 매우 강한 통증을 받았습니다. 통증 때문에 속도도 무척 느려져 6코스 완주 예상 시간 보다 약 한 시간 정도가 더 걸렸습니다. 완주 후 숙소에 짐을 풀고 파스와 보호대를 샀지만, 여전히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했습니다.


결국 저는 하루 쉬기로 했습니다. 친구가 7-1코스를 갔다 오는 동안 저는 가방을 풀고 서귀포 시내를 가볍게 돌아다니기로 했습니다. 돌아다니는 동안 뛰려고 시도했는데 뛰기는커녕 빠르게 걷는 것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짐을 싸고 집으로 돌아갔을 겁니다. 그래도 저는 걸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같이 걸어갈 수 있는 친구가 있고 당장 하루 쉬고 나서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요. 다행히 하루 휴식과 파스, 보호대 덕분인지 무릎 상태는 갈수록 좋아져서 일주일 후인 12코스를 걸을 때는 무거운 짐을 들고 조금 뛸 수 있을 정도까지 회복되었습니다.


지금이니까 실없이 말하는 거지만, 하루 쉬던 날 무릎 상태는 꽤 절망적이었습니다. 정말 올라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하루 내내 몇 백번을 고민했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걷고 싶었던, 걸어야 했던 이유가 있었을까요? 여러 감정들이 섞여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어떤 하나의 이유 때문에 걸었다.’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래도 그때의 저를 돌아보면 통증과 고통에도 걸었던 여러 이유들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제주올레 완주 여행은 제 인생에 있어 제주올레를 완주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계속될 취직 준비와 직장 생활을 생각하면 한 달이라는 긴 기간을 여행에 쓸 수 있는 때는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공부를 하고 큰 기대를 갖고 준비한 제주도의 면면을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가 무릎의 통증 하나로 날아가는 것이 무척 싫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금 포기하면 이 순간이 너무 후회될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제 인생을 큰 후회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열심히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처럼 전력으로 살아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늘 마음속에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죠. 적어도 약간의 아쉬움이 이 여행에서 만큼은 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 여행에서 제가 제 자신에게 실망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죠. 앞으로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이지만 확실하게 자리 잡는다면 무엇이든 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했던 것은 같이 걷는 친구의 존재였습니다. 언제든 힘들면 돌아가도 된다면서도 계속 걷는 저를 응원해주고 천천히 걸어야만 했던 저를 늘 기다려주었습니다. 제 무릎 상태를 염려해주고 같이 코스 상황을 걱정해주기도 했지요. 아무리 제 내면적인 여러 감정들이 걸으라 했다고 하더라고 무릎에서 계속 통증이 느껴지는 상황에서 옆에서 끝없이 힘을 주는 친구가 없었다면 저는 진작 포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냥 한 번 있는 여행, 언젠가는 분명 다시 올 수 있는 여행에서 부상까지 참아가면서 뭘 그리 애를 써서 완주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의 이야기의 내용들로도 설득이 안 되었다면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제주도 걸어서 한 바퀴, 여행 좋아하고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꿈이자 로망 중 하나 아닌가요? 저는 그 꿈을 안고 제주올레길 위에 섰기에 정말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하지만, 꿈을 이뤄냈고 이제 평생 행복한 기억 하나를 갖고 살아갑니다. 부상이라는 고난을 이겨 낸 제주올레 완주의 기억은 제게 평생 인생을 나아갈 힘을 주는 하나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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