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은 지루하고 삭막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것들을 보고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그리고 여행객들은 그런 새로운 체험에서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한 즐거움을 얻지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되는 일상을 도피하고자 여행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주올레 완주도 일상을 도피하고 싶었던 맘이 아예 없었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하지만, 제주올레 완주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저만 해도 무릎을 다치기도 하고 해물 칼국수를 먹었다 배탈이 나는 등 여러 불행한 사고들이 있었죠. 그래도 지나고 나면 이런 일들은 추억이 됩니다. 그러나 추억조차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여행이 일상이 될 때죠.
제주올레 완주는 말만 들으면 힘들지만 무척 낭만적이고 즐거울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저도 여행 중에 대체로 그랬지만, 딱 한 번 어느 때엔가 지루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제주올레 완주는 무척 규칙적입니다. 아침 7시나 8시 사이에 일어나 8시나 9시 사이에 출발해서 오후 2시나 3시쯤 목적지에 도착하는 무척 단순한 여행입니다. 가끔 코스의 거리가 짧거나 불의의 사고가 있으면 여행에 걸리는 시간이 적어지거나 많아지기도 하지만,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런 반복되는 일정의 여행에서 보는 것마저 어제와 크게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면? 지루함이 느껴질 겁니다.
아무것도 없는 중산간올레를 걷다보면 무척 힘듭니다. 무거운 등짐과 오르막길 때문에 육체적으로 힘들고 귤밭과 돌담, 알 수 없는 식물들만 끝없이 이어지는 풍경을 보고 있느라 정신적으로도 지칩니다. 조금씩은 달라지지만, 늘 보고 있는 것을 또 보고 있는 느낌이죠. 분명 어제와는 다른 코스를 걷고 있는데도 오늘도 같은 코스를 걷는 듯한 기시감까지 느낍니다. 이런 상황이면 분명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될 겁니다. 이럴 거면 집에서 쉬지 왜 여행을 왔냐고.
앞에서 일상은 지루하고 여행은 즐겁다고 말했습니다만, 일상이 마냥 지루하지만도 않습니다. 하루하루 똑같아 보이지만, 매일 하는 일이 전부 똑같을 수는 없으니까요. 여행도 마찬가지입니다. 매 순간 즐거울 수는 없습니다. 가끔은 여행하는 것도 반복되어 지루함이 느껴질 수도 있죠. 매번 새롭기를 바라는 것이 오히려 욕심입니다. 그렇다고 여행에서 지루함을 느끼고 싶을 사람은 없을 겁니다. 반복되는 여행에서 지루함보다 즐거움을 느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저는 일상에서 조그마한 즐거움을 찾는 것처럼 여행에서도 조그마한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물론 새로움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런 노력은 아니었습니다. 걸을 때 여유를 가지려고 노력했죠. 반복되는 일상에서 색다른 것들을 찾는 방법은 매우 단순합니다. 목표만 보고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돌아보는 겁니다. 주변을 돌아보면 오늘은 어제와 다르고 내일은 오늘과 다르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게 될 겁니다. 어제는 살짝 구름 낀 하늘에 내리는 노을이 아름다웠다면 오늘은 창문을 뚫고도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이 매력적일지도 모를 일이죠.
완주라는 목표를 잠시 내려두고 길의 사소한 부분들을 살펴보자 길의 분위기와 색감이 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돌담의 높이나 바다의 색깔, 구름의 모양과 흘러가는 속도까지 하나하나 바라보면서 걷자 어제와 오늘의 올레가 달라지고 내일의 올레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올레 완주라는 목표에 삼켜져 어쩌면 보지 않았을 것들을 하나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이는 제가 여행을 일상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보지 못했을 것이라 여행 중에 지루함을 느꼈던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인생을 여행에 비유합니다. 지루한 일상을 계속할지도 모르는 긴 여행 속에서 잊기 쉬운 사소한 특별함을 놓치지 않기를 바라며 이런 비유를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행에서 일상을 느낄 수 있듯이 일상에서도 여행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찾아온 여행의 일상에서 여유를 가지고 지루함을 떨쳐냈듯이 여유를 가진다면 일상에서 모르고 지나가는 일상 속 여행의 특별함과 새로움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