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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 완주기-무덤

by baekja

죽음은 무엇일까요? 누군가는 초월적 이상향으로 넘어가기 위한 한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그저 영혼이 여행하는 한 단계라고 말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전혀 알 수 없는 미지의 무언가라고 말합니다. 사실 죽음이 무엇이라 명확하게 정의내릴 수 없으니 이런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 거겠죠. 이런 다양한 죽음의 정의만큼이나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갖는 태도는 무척 다릅니다. 신앙에 기대어 절망적이라 생각하는 죽음에 구원을 바라기도 하고, 조용히 수용하거나 알 수 없는 죽음 이전에 확실히 인지할 수 있는 삶을 힘차게 살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지구에 사는 사람 수만큼이나 죽음에 대해 갖는 태도가 많고 다양하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죽음은 썩 긍정적인 말로 들리지는 않습니다.


삶의 마지막 이후에 찾아오는 죽음. 죽음에 대해 밝혀진 것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저 내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삶의 끝에 기다리고 있다는 것 말고는 말이죠. 어느 것도 알 수 없는 죽음이 무조건 찾아온다는 것은 사람에게 거대한 공포를 불러옵니다. 또한, 이 미지의 단계로 내가 아는 누군가를 보내야 한다는 상실감에서 오는 깊은 슬픔과 우울감도 죽음을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하나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느낄 수 있는 공포, 슬픔, 우울감은 모두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자연히 죽음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생기고 더 나아가 죽음과 관련된 무덤에 대해서도 썩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는 없습니다.


올레길을 걷다보면 무덤이 곳곳에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름의 양지바른 곳에 묻혀 있는 경우도 있지만, 마을의 평범한 집 뒤에 있거나 밭 옆에 있는 등의 경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죠. 무덤이 모여 있는 것도 아니고 띄엄띄엄 있는 경우도 자주 볼 수 있죠. 무덤과 흙더미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대개 무릎 높이까지 오는 돌담뿐입니다. 보통 무덤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무덤 옆에서는 안 좋은 기운이 나온다든가 귀신이 나타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많은데도 사람들의 생활권 가까이에 무덤을 둔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무덤의 역할이 하나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사라집니다. 영혼을 믿는다고 해도 일단 육신은 영혼을 떠나간 상태이고 육신 또한 가만 놔두면 썩어 없어지죠. 이렇게 유한한 사람은 언젠가 사라지기 마련이고 늘 사람은 이때에 상실감과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이제 이 세상에서 한 사람을 더 이상 보지 못한다는 상실감과 안타까움은 사람을 기억 속에 붙잡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을 존경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 무형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유형의 형태로 붙잡아두려고 하죠. 이 유형의 형태가 보통 무덤입니다. 즉, 삶이 남은 사람들이 이미 죽고 떠나간 사람들을 확실히 기억 속에 붙잡아두기 위한 역할로 무덤이 사용된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지금이야 현대 과학의 발달로 제주도에서 그리 생활이 불편하거나 험하지 않지만, 예전에 제주에서 사는 것은 무척 힘들었습니다. 농업이 잘 안 되니 굶주림은 늘 가까이 있었고 살기 위해 나간 어업에서는 날씨의 변덕으로 인해 사망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관리들의 수탈로 인해 무리한 작업을 하다 죽어 간 해녀들도 부지기수였습니다. 사망률이 높다보니 제주민들은 평범한 사람들보다 죽음에 더 가까웠습니다. 죽음에 가깝다는 것은 죽음이 일상에 자리 잡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죽음으로 인한 슬픔이야 당연히 느껴지겠지만, 오히려 죽음이 많아지다 보니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는 많이 사라졌을 겁니다. 오히려 많은 시간을 같이 지내지 못하고 떠나보낸 이들을 기억하기 위해 무덤을 자신들의 삶과 가까이 두고자 했던 것이죠. 무덤마다 쌓여 있는 돌담은 제주민들이 이 무덤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증거라 할 수 있겠습니다.


낮은 현무암 돌담으로 쌓인 무덤은 제주만의 특징입니다. 여기에 더해 어디에서나 무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것도 제주만의 특징이죠. 죽음을 상징하는 하나의 매개체인 무덤이 사람들의 삶속에 녹아 있는 것은 무척 색달랐습니다. 길고 긴 시간을 육지에서 자라온 저에게는 기이함마저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여러 생각을 통해 제주의 고단한 삶에서 이러한 문화가 비롯되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었습니다. 혹시 나중에 제주의 마을에서 무덤을 보게 된다면 당황하지 말고 죽음과 맞닿아 있던 과거 제주민들의 삶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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