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올레길을 걷다보면 가끔 이 길을 만든 사람이 한없이 미워질 때가 있습니다. 그냥 직진으로 가면 무척 빠를 길을 한참을 돌아가게 만들 때죠. 특히 코스의 말미 이미 지칠 대로 지쳐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묵직한 가방의 무게가 쇳덩어리 같은 느낌을 줄 때는 길을 돌아가게 하면 짜증마저 납니다. 돌아가는 길이 계속되자 16코스 즈음 같이 걷던 친구는 이런 농담을 했습니다. “길을 악의적으로 만든 것 같다. 이렇게 길을 만드는 것을 사단법인 제주올레의 나쁜 습관이다.” 사단법인 제주올레에서 당연히 이 길을 가지고 ‘너희들 고생 좀 해봐라.’는 생각을 만들었을 리는 없겠죠. 그럼 왜 제주올레길은 가끔은 쓸 데 없어 보일 정도로 돌아가게 만들었을까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는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의 선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 가능하겠지만, 여기서는 인간이 만들어내는 인공물에서 보이는 선은 직선이고 신이 만들어내는 자연에서 보이는 선은 곡선이라는 의미로 해석해보겠습니다. 공장에서 기계적으로 찍어내는 데 편리하고 효율적인 것은 직선입니다. 당연히 인간은 근대 이후 거의 모든 산업에서 직선을 선호해왔습니다. 하지만, 원래 자연에 직선은 없습니다. 매우 곧아 보이는 나무의 줄기마저도 약간 휘어있는 경우가 많죠. 효율적이고 단순한 직선을 만들어내며 열광하던 인간들은 결국 곡선이 가득한 자연이 도시에 사라진 것을 깨닫고 자연의 곡선을 모방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해왔습니다. 획기적인 디자인이라는 아이폰의 네 모서리가 둥근 것도 아마 그런 이유겠지요. 하지만, 인간들은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공원을 만들고 나아가서는 도시를 빠져나가 다른 곳에서 곡선 가득한 자연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저 또한 올레길을 방문한 이유가 자연의 곡선을 찾는데 있었습니다.
올레길은 흔히 우리가 다니는 등굣길, 출근길과는 다른 길입니다. 자연을 느끼고 제주의 많은 내용들을 차분히 보기 위한 길이죠. 일직선의 보도블럭과 횡단보도 또는 차도를 따라가는 등굣길과 출근길은 빠르고 신속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올레길은 신속하고 정확하게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가 아닙니다. 흔히 말하는 힐링,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많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목적이죠. 올레길을 가다 지치면 쉬어 가고 너무 힘들다면 하루 안에 꼭 한 코스를 다 돌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이 출발하고 멈추는 곳까지가 한 코스이지요. 그래서 올레길은 구불거리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목적지를 향해 곧장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온몸에 담으며 쉬엄쉬엄 걸어가라는 것이겠지요.
저 또한 올레길을 걸으며 모든 것을 느끼고 제 머리와 가슴속에 다 담아내려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제주올레 완주가 몇 번 없는 기회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어서인지 이러한 노력이 곧 강박으로 변했죠. 하루에 한 코스, 코스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담아보자는 생각에 오히려 시야가 좁아졌던 것 같습니다. 괜찮아 보이는 풍경 앞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가방을 풀고 해안가에 앉아 파도소리를 즐기는 여유 있는 행위들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저 좋다고만 느끼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무수한 순간들이 지금은 조금 아쉽습니다.
제주올레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가로막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제주올레길을 다시 걷게 된다면 굽이치는 끝없이 이어진 길 위에서 이 길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느끼기를 바랐을 여유로운 자연의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걸어볼 생각입니다. 마음에 드는 장소가 있다면 어디든 멈춰서 한껏 음미하고 가끔은 올레 코스에서 벗어나 주변의 가고 싶은 곳들을 방문하며 자유로이 올레길을 즐길 겁니다. 도시의 효율적이고 목적지향적인 직선에서 벗어나 자연의 곡선이 주는 여유와 아름다움에 기대어 올레길을 만끽하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