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이사와 동시에 리모델링 공사를 한 적이 있다. 공사기간이 3주쯤 되어가니 내가 연장을 들고 직접 손을 보는 게 아닌데도 지치고 힘이 들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 매일 같이 드는 생각은 어서 끝나기만 해라, 끝나면 좋은 호텔이 있는 여행지로 놀러 가서 푹 좀 쉬다와야지.
여행지에서 어떤 호텔을 만나느냐는 여행의 질을 크게 좌우한다. 꼭 비싼 메이저 호텔이 다 좋은 건 아니다. 나에게 맞춤 맞은 '쉴만한 곳'이어야 한다. 호텔 직원의 첫인상은 중요하다. 짧게 체크인을 하는 동안 직원의 태도에서 내가 환대받고 있는 손님인지, 잠시 동안 내 집이 될 이 호텔에서 내가 정서적인 안정감을 가질 수 있을지를 판단하게 된다. 늦은 밤에 도착해 체크인을 할 경우는 호텔에 대한 이런 기대치가 더욱 커진다.
키를 받고 호텔방의 문을 여는 순간의 기대야 말로 생일 초를 후 불어 끈 후의 선물을 받기 전 설렘과 같다. 각 잡힌 침대 위 흰 시트, 계절에 따라 착실히 냉기와 열기를 뿜고 있는 팬, 친절한 웰컴 스낵과 세련된 커피머신, 홈바를 채우고 있는 음료들과, 깨끗하고 조명이 밝은 거울, 침실보다 더 중요한 욕실이 넓을 때 쾌감, 그리고 다양한 어메니티들을 바라보는 소소한 즐거움.
내 구미대로 리모델링을 마친 새집을 보면서도 왜 호텔방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집은 책임이 수반된다. 깨끗하고 편안한 집을 위해서는 집주인의 부단한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호텔은 가볍다. 책임 없이 즐길일만 있다. 나의 손이 거치지 않아도 저절로 깨끗함이 리셋되며, 나는 그것을 누리기만 하면 된다. 물론 그곳에 나의 소유는 하나도 없다. 타인의 소유를 즐길 권리만 돈을 지불하고 샀으므로, 사실은 내가 조심히 다뤄야 할 물건들이 전부이지만 내 집처럼 내가 책임을 지기 위해 조심하는 것과 내가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것은 벌써 그 마음가짐이 다르다.
그리고 오래 기억에 남는 호텔 하나. 자그마한 부띠끄 호텔이어서 그저 구색을 갖춘 것만으로 대견하고 예쁘다했다. 지하 1층 조식당. 적은 가짓수의 따뜻하고 낯선 음식들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식사를 하는데 갑자기 턱시도를 잘 갖춰 입은 남자가 바이올린 연주를 하며 식사하는 사람들 사이로 걸어 나온다. 생각지도 않은 뜻밖의 선물이다.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이 미안할 만큼 연주가 근사하다.
그릇이 딸그락 부딪히고, 식사 집기들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바이올린 소리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룬다. 대단한 공연을 본 것보다 더한 감동이 밀려왔다.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덧 모두가 같은 표정이다.
그날 난 조금 이기적이기로 했다. 식사 접시를 세 번 네 번, 디저트 접시를 두 번 세 번 비우며 한참을 즐겼다. 맛있는 아침식사와 바이올린 연주를 대접받는 동안 기억에 잊고 있었던 지난 내 삶에 행복한 순간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난 조용히 감사를 고백했다. 아직도 잘 대접받은 식사가 언제였는지 누군가가 물으면 망설이지 않고 그날의 아침식사를 얘기한다. 그 추억을 말할 때 한 번도 흥분하지 않은 적이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