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 코끼리를 직접 대면할 생각에 마음이 상당히 들떴었다.난 코끼리가 너무 귀여워서 마음에서 안 떠나면 어쩌지 걱정했던 것 같다.
줄을 서서 앞선 사람들을 태우고 걷는 코끼리를 보는 동안 그랬던 마음이 가라앉았다.기대하던 풍경과 거리가 많이 멀었다.안전조차 의심됐는데 직원들이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ok제스처를 취한다.
난 바보였다. 이야기책처럼 코끼리가 나와 우정 어린 교감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줄 알았단 말인가.
그곳에서 만난 코끼리는 야생성이 있는 것 같지도, 그렇다고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처럼 문명에 길들여 있는 것 같지도 않은 인상을 줬다. 그저 찌들고 더러운 로봇 같았다.
사람으로 치면 넋이 나가 있어 아무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상태라고 할까.
그런데 코끼리를 모는 아저씨들의 모습도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간혹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한테 V를 그리며 웃어주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동자도 코끼리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초점이 모호한 그 눈빛들, 한낮의 뙤약볕, 같은 그 길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오가며 살아 움직이는 건지, 죽어 움직이는 건지 알 수 없는 코끼리들을 타고 있던 사람들.
트래킹 코스가 끝나는 곳에 풀로 뒤덮여 짐승 우리 같은 곳이 있었다. 그곳이 코끼리를 모는 아저씨들이 휴식하는 장소라고 했다.
트래킹 코스는 다행히도(?) 짧게 끝났다. 코끼리의 움직이는 등은 불편했고, 생각보다 꽤 높아서 두려웠고, 코끼리 아저씨가 건넨 찢어진 우산은 한낮의 태양을 가리기엔 귀찮기만 했으며, 고작해야 1, 2 천 원 되는 팁을 가지고 한 사람 몫을 더 내라, 그것도 아깝다, 실랑이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코끼리 트래킹 후 우리 일행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여행 후 코끼리의 파잔 의식이 크게 이슈 되었다. 코끼리의 눈빛이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인간의 잔인성을 욕하며 파잔 의식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했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또 다른 잔상이 자꾸 머리에 떠오른다.
그토록 잔인한 파잔을 행하며 그 코끼리 등에 올라타 관광객을 태우고 사는 코끼리 아저씨들.
코끼리에게 차마 할 수 없는 짓을 해서 번 돈으로 그 사람들이 배를 두드리며 잘 산다면 많이 미웠을까 내가 본 그들은 코끼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그들이 태어나 보니 그 땅에는 코끼리가 있었다. 그들은 코끼리를 이용해 생계수단을 삼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자연환경을 삶에 이용한 것이다.
코끼리가 없는 나라에서 태어난 나는 그 생경한 광경을 보러 그곳을 찾아갔다.
그리고 그들이 코끼리를 이용하여 살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대만 타이베이 여행을 할 때 내가 꼭 다시 찾곤 하는 곳은 단수이와 워런마터우이다. 워런마터우는 노을로 나를 부른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신기하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노을이다. 노을은 어느 한 국가가 지닌 천혜자원이 아니라 지구 전체의 공동소유 일진대 여행지마다 노을이 주는 느낌은 다르다. 워런마터우의 노을은 남달랐다.
지금은 아닌 듯 하지만 처음 그곳에 갔을 때는 사람의 발길이 많지 않은 곳이었다.
그곳은 쓸쓸하다. 피하고 싶은 쓸쓸함이 아니라 머물고 싶은 쓸쓸함이다. 그날은 옅은 노을과 함께 가랑비까지 왔는데도 난 그냥 방파제에 서서 계속 빗속에 머물고만 싶었다.
워런마터우의 노을이 사무치게 그리운 어느 날이 오면 난 또 그 노을을 보러 대만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 것 같다.
단수이 역에서 워런마터우로 가는 길에 한국인에게 너무나도 유명한 홍마오청이 있다. 워런마터우에 갔던 날 홍마오청 역에 도착한 버스기사가 한국말로 홍마오청 역임을 알려주고는 "한국인 없어요?"라고 다시 물었다. 나의 목적지는 그곳이 아니라 그냥 모른 척 있었지만 그 후로 대만 말로 승객들에게 몇 마디 하니 승객들이 모두 웃었다. 한국인들은 홍마오청에 무조건 간다, 혹은 여기 가는 사람들은 다 한국인이다 이 정도의 농담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봤다.
이렇게 어떤 여행지는 장소에 의미를 담아 여행객들을 부르기도 한다. 실제로 가보면 과대 포장된 곳이 많긴 하지만 그런 곳은 그런곳대로 방문에 의의가 있다. 그들은 또 놓치지 않고 유명한 영화의 촬영지가 되었던 그곳을 이용해 사람들을 부른다.
나에게 단수이하면 가정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대왕 오징어 튀김이다. 단수이 야시장 골목골목 대왕 오징어튀김을 파는 가게가 즐비하게 많다.
이상하게도 다 비슷한듯 하면서도 집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다.
구경을 하면서 걷는 내게 누군가 시식을 권한다. 한국말을 얼마나 유창하게 하던지 난 오죽하면 한국인 호객꾼을 만난 게 신기하여 저절로 그 가게로 발걸음이 향했다. "한국인이세요?" 묻는 내게 "나 일본어도 잘해요" 하더니 일본말을 한참 꽤나 했다. 지나가던 대만 여학생들도 신기하여 다른 말도 해보라며 둘러싸니 이번엔 영어가 줄줄이다.
난 특히 외국어를 배우는데 약하다. 지금껏 배워온 영어도 신통치 않고, 몇 해 전 시작만 한 중국어도 겨우 화장실 어딨냐 묻는 것에서 멈춰있고 더 오래전에 배운 일본어는 히라가나도 쓰지 못한다.
그런데 최소 3개국을 하는 오징어튀김 호객꾼이라니... 나에겐 그저 놀랄 일이다.
동남아 여행을 하다 보면 마사지 가게 앞에 한, 중, 일 3개 국어로 호객을 하는 사람들을 신기하게 봤었는데 오징어 튀김집 여자는 단순히 호객을 하는 정도의 실력이 아니었다.
나와도 한국말로 일상적인 대화를 꽤 나눴는데 억양도 거의 완벽했다.
난 대왕 오징어 튀김을 팔기위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또 그곳에서 보았다.
어린 시절 우리 집 근처에 유명한 5일장이 있었다. (물론 그곳의 5일장은 지금도 유명하다)
어렸던 나는 인파에 둘러싸여 뭐하나 보려면 고개를 늘 사람 몸 사이로 내밀어야 했다.
그곳에 살아있는 고양이와 토끼를 좌판에 펼쳐놓고 그 고기를 파는 장사들이 있었다. 사람들이 돈을 주고 고양이를 고르면 즉석에서 잡아 가죽을 벗겨주기까지 채 1분이 안 걸렸던 것 같다. 요즘 세상에 있을 수 없는 장면이 그 옛날 5일장에서는 성황리에 이루어졌다. 난 그 아저씨의 몰골을 보면서 사극 드라마에 나오는 망나니를 떠올렸다.
시작이 무엇이었든 간에 그 아저씨는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이용해 고양이와 토끼고기를 팔기 시작했고, 5일장에는 또 그 고기를 찾는 사람들이 그것을 사기 위해 발걸음을 했다.
여행을 하다 보면 그곳의 환경이 제공하는 삶의 모습들이 있다. 그것을 유심히 지켜보는 일은 즐거움 이상의 감정으로 다가온다. 나의 일상을 떠나 타인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면서 또다시 그들이 일상을 사는 모습을 바라 본다.
그리고 주어진 환경에 의해서 사는 모습이 달라짐도 유심히 바라본다.
때론 그 모습들이 인류 보편의 도덕적 가치관에 어긋나 마음을 많이 불편하게도 하지만 저마다 주어진 환경을 이용해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보편적 잣대만을 들이대기도 참 모호하다.
푸켓에서 코끼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차도에서 어마어마하게 큰 코끼리를 만났다. 저 코끼리의 역할은 누군가의 교통수단이었을까. 도로를 따라 제법 빠른 속도로 뛰는 듯 걷는다. 몸도 건강히 까맣고 활력이 있어 보였다. 그 코끼리를 보자 푸켓에 오기 전 내 마음속에 만나고 싶어 했던 코끼리를 본 듯 마음이 조금 풀어진다.
푸켓 숙소의 아침 풍경. 아침에 눈을 떠 커튼을 열면 풀 뜯는 소들이 있다. 그곳이 소들의 아침식사 장소인지 아침만 되면 풀을 뜯고 사라진다.
어느 날은 9마리, 어느 날은 11마리. 그 모습은 내게 굿모닝 인사였다. 소가 몇 마리인지 세는 일로 푸켓의 아침은 매일 기분 좋게 시작되었다.
저마다 다르다. 환경도 다르고 그러니 삶도 다르다. 그것을 보려 여행객들은 또 다른 곳들로 이동을 한다.
하지만 주어진 것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은 그 어느 곳을 가도 동일한 것 같다. 일상이 지칠 때쯤 떠난 여행에서 결국 내가 보고 오는 것은 열심히 삶을 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