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말고, 함께 하는 여행

나의 찰떡같은 여행 메이트

by 피카타임

그날부터 인 것 같다. 마음이 집중이 안되고 열정을 쏟아야 될 무언가 앞에서 갑자기 김이 푹 빠지는 느낌.
그러면서 종잡을 수 없이 이것저것 건드려보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몇 날을 흘려보냈다.


현을 만난 그날 내가 어떤 책을 읽어보라 쥐어줬다.
책이 좋아서가 아니다. 그런 글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어서였다. 짤막한 한 에피소드를 읽게 오분 정도 현에게 시간을 주고는 난 "어때?"물었다.
현은 눈가가 촉촉해지더니 "너무 감각 있다" 고 했다.
어라?! 내가 기대한 대답은 "개소리"였는데!
"진짜야?" 나의 반문에 현은 그렇다고 하며 왜 그리 느끼는지 자기 생각을 한참을 들려줬다. 눈가가 촉촉한 채로.
난 다시 읽어봤다. 그러할수록 "개소리"가 분명했다.

현과 나는 같은 것을 보고 거의 같은 것을 느끼며 살아왔다.
어떤 날은 하나의 맘을 담은 몸이 둘로 갈라져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나의 모든 여행의 메이트는 현이다.


난 혼자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앞으로의 모든 여행도 혼자 할 거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심지어 내 직업이 여행가가 된다 해도 누군가와 동반 여행가가 될 일이지 혼자 여행은 꿈꿔본 적이 없다. (말이 누군가지 현일 테지)

그렇다면 먼 훗날 진짜 여행가가 되어보자는 건 나의 꿈일 뿐 난 될 수가 없는 거다.
과연 그런가...

혼자 여행을 하고 싶은데도 겁이 나서 안 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 있어 여행이란 그 장소를 찾아가는 일이 전부가 아니고 누군가와 뼛속까지 그 느낌을 함께 느끼고 나누는 데 있다.
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 일을 누군가와 같이 겪었다고 하여 슬픔의 정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슬픈 그 일을 사랑하는 상대도 겪었다 생각하니 슬픔이 배가 되었다.
하지만 기쁨은 다르다.
안으로 자꾸 숨겨두고 싶은 슬픔과 다르게 기쁨은 밖으로 내지르고 싶다.
나의 기쁨이 타인에게는 자랑거리로 비치고 질투를 불러일으킨다 해도 그것을 분출하고 싶게 한다. 더구나
기쁨을 분출할 때 같은 순간 같은 일에 똑같이 기쁨을 느끼는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때의 기쁨의 크기와 깊이는 혼자 겪었을 때와는 규모가 달라진다.

때론 그 사실 자체로 기쁨 위에 감동이 더해져 눈물이 저절로 흘러도 그 순간에 눈물을 이상히 여겨 왜 그러냐 묻는 이 가 없다.

또한 내 성격 때문이기도 하겠지. 난 좋은 것 앞에 말이 많아진다. 끝없이 뭔가를 표현해댄다. 좋은 감정이 주체가 안되어 말로 쏟고 쏟아내다 결국에는 마음에 어떤 둑이 터지고 감정이 줄줄줄 흘러내릴 때 입이 다물어진다.

그때 사랑하는 이가 옆에 있어 내가 입을 열어 온갖 것을 겨우 표현하지 않아도 그 역시 같은 것을 보고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다.


시절마다 수많은 인연들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그런 의미에서도 여행에 메이트가 있다는 건 분명 감동적인 일이다.

상대와 내가 시간이 맞아야 하고, 상황이 맞아야 하고, 마음이 맞아야 한다.
즉 우린 서로 '인생의 때'가 맞는 시기를 살아간단 뜻이다.

때론 우린 사진첩에 많은 것을 의지한다.
내가 거기 있었던 증거, 내가 바라봤던 것들, 그때의 마음을 담은 내 표정. 그것을 사진첩이 고스란히 간직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 메이트는 그보다 더 고차원의 저장소이다.
내가 행복했던 순간에, 내가 잠시 다른 일상을 살고 있었던 순간에, 그곳에 함께 있었던 누군가.
그 사람의 존재가 그 사람의 생을 사는 내내 내게 그때를 기억하게 해 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의 모든 여행에 현이 없었더라면... 물론 다른 이와 간 여행도 간혹 있지만... 나의 기억 속에 그곳들은 지금과는 분명 다른 색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상상해볼수록 난 지금의 색깔이 가장 맘에 든다. 아쉬운 점이 하나도 없는 색깔이다.

필리핀 여행 마지막 날 늦은 아침식사를 마치고 수영장을 바라보며 썬베드에 잠시 앉아 있기로 했다.
마지막 날이라니... 또 마음이 우울해진다.
어른들의 눈물은 특별하고, 어마어마한 큰 슬픔 앞에서만 흐르는 거라 생각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멍하게 풀장을 바라보다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 어떤 심오한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정말 집으로 돌아가기가 싫고, 여행이 더 길었으면 좋겠고, 이곳이 너무 좋아서 떼가 났다. 그러면서 문득 옆을 보니 현도 붉은 눈으로 코를 훌쩍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눈을 마주치는 순간 우린 종종 그렇듯 슬퍼 눈물이 뚝뚝 떨어지면서도 배를 잡고 웃었다.
이러니 얘와 여행을 다니고 싶을 수밖에.


그런 현이 나와 저 책에 대해 다른 평을 내놓았으니 내입장에서는 며칠씩 심난한 게 당연하다.
나와 생각이 달라서가 아니고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들은 내가 느꼈던 저런 "개소리"와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다.
내 글을 읽으며 현이 저렇게 눈이 촉촉해질 일은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다.

그러고 며칠 뒤 다른 책을 완독 하고는 인터넷에 독자들의 평을 찾아봤다. 나에게 그 책은 반만 좋았다.
반은 화가 났고 반은 공감이 됐다.
한 독자의 평을 보니 내가 공감했던 그 부분이 자긴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며 이런저런 이유를 붙여뒀다.
평을 읽고 난 또 속으로 외쳤다. '아니지, 그 부분은 그런 느낌이 아니란 말이야.'

문득 다름과 같음의 끝없는 교차점을 두고 우린 살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었다.
살면서 거저 얻는 행운들처럼 사랑하는 이와 내가 같음의 교차점이 많다면 그저 감사할 일이다.
그 교차점 위에는 늘 행복한 감정이 서리기 때문이다.
또 난 현과 떠날 것이고 우린 또 같음의 교차점 위에서 무엇 때문에 마주 보며 눈물을 흘릴지 기대가 되어 때론 상상만으로도 벌써 좋아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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