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채색 고요'와 만나는 순간

마카오 척반비치에서

by 피카타임

호텔 예약 사이트들을 보면 호텔마다 이용객들 평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일 앞에 늘 수더분히 모든 게 괜찮은 사람이 있는 반면 매사 불만인 사람도 있기 마련일 테니.
적당한 별의 개수를 받은 호텔을 필터링한 후 고객 평을 들여다보고는 극단적인 불만과 극단적인 칭찬은 일단 빼버리고 전반적인 만족도를 가늠한다.
그다음은 반드시 위치를 고려해야 한다고 큰 다짐을 하지만 결국 그 모든 이성적 판단보다 앞선 건 사진에서 보여지는 느낌과 그 호텔만의 특색이다.
그 바람에 늘 이동시간이 두배로 걸리고, 차비는 세배로 들기도 하지만 처음 마음에 들어온 그 호텔에서 마음을 거두기는 쉽지가 않다. 일상에 돌아와 살면서 두고두고 미련이 남는 것만큼 또 더한 괴로움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역시나 웹사이트의 사진은 현실을 다 보여주지 않는 법이다.

마카오 여행 때는 돌담을 차곡차곡 웅장히 쌓아 만든 포르투갈 양식의 호텔 외관에 반해서 번화가와 택시로 40ㅡ50분 떨어진 곳에 호텔을 잡았었는데 귀소 전까지 놀던 마카오 거리와 풍경이 얼마나 다른지 괴리감에 휘청거리며 반지하 감옥에 매일 밤 제 발로 갇히러 들어가는 기분을 느꼈었다.
하지만 그곳의 찬란한 아침이란.
잠옷 위에 외투만 하나 걸치고 걷는 그곳의 바다는 무심하고 투박했으나 내 마음속 소리까지 들릴 듯이 고요했다.


여행지에서 가끔 만나는 '고요함'이 있다.
난 포털사이트에서 소개하는 메인 여행지에서 약간 벗어난 곳을 주 찾아다닌다. 그 때문인지 때때로 어떤 장소, 어떤 시간대가 주는 '고요함'과 마주하게 된다.
난 이 고요함이 여행지가 내게 주는 무형의 선물 같다.
그렇다고 물속에 잠긴듯한 고요함은 아니다. 그 고요함 속에는 그곳에 있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일상이 담긴 소리를 내고 있다.
난 그 고요 속에서 사방을 둘러 일상의 소리를 하나하나 분리 해내 본다.


손등 주름 가득한 할머니의 달그락 거리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 작은 길카페에서 틀어둔 라디오 소리, 저 멀리 버스가 지나는 소리, 어딘가에서 자전거 페달 소리도 들리고, 어디 있는 것일까 위치를 가늠할 수 없는 새소리도 들린다.
사람들은 이를 '백색소음'이라고 이름 지었단다. 가끔 잠이 안 올 때 일부러 백색소음을 찾아 틀어두곤 한다. 그런데 이건 백색소음이라 하기엔 뭔가 부족한 느낌이다.
오히려 백색소음의 반대말이 뭘까 하다가 '유채색 고요'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그 고요함 속에 있으면 난 타국의 여행객도 아니고, 내 나라에 거주자도 아니고, 그저 누군가의 기억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시간이 시냇물처럼 날 스쳐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면서도 흐르는 시냇물 속에 아랑곳하지 않고 서있는 바위처럼, 그곳의 시간들은 어느덧 날 비켜가고 있다.
나 혼자 그 모든 이의 일상 속에 멈춰져 있는 것이다.
그저 '아... 좋다 '하는 말을 입 밖으로 간간히 내뱉으며 그 장소에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머문다.
그러니 늘 내 계획은 차질이 생긴다.
어느 순간부터는 출발 전 계획표 맨 아래에 '이 계획은 차질이 생길 수도 있음'이라고 크게 명시하며 미리 나의 아쉬움을 달래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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