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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Jun 25. 2022

짝사랑

나는 폭삭 늙어서 꺼지는 느낌인데 남들은 나보고 요즘 예쁘다고 하는 것.


행복과 슬픔이 정확히 반반으로 섞여 지내는 모양.


열 가지만 보였던 세상이 백가지 사소한 게 다 보이는 것.


그 사람 하품조차도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 것.


말도 안 되는 확률에 기대어 거리를 한없이 배회하는 것.


캐면 캘수록 금광 같은 그 사람 이야기를

본인한테서는 한마디도 못 듣고, 타인을 통해서만 듣게 되는 것.


어찌 알게 된 신발 사이즈만 수첩에 적어둬도 일급 기밀정보를 갖은 듯 뿌듯한 것.


그 사람 지인들에게 무조건 친절해지는 것.


괜히 친구만 잡는 것.


그 사람 앞에서 걸음만 걸어도 부끄러운 것.


세상에서 제일 큰 화산처럼 질투가 나도 절대 티 내면 안 되는 것.

그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분출하는 활화산에 대한 이유를 해명할 길이 없는 것.


3달 만에 산에서 바다로 바뀐 프사를 보고 하루 종일 헤벌레 하는 것.


저절로 살이 쪽쪽 빠지는 것.


보이지 않는 마음의 위치를 정확히  알게 되는 것.


춥지도 않은데 떨고, 달리지도 않았는데 가슴 뛰고,

감기도 아닌데 열나고, 조와 울을 넘나 들다 결국 울면서 잠드는 것.


왜 고백하지 못하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는 것.


지구가 작아지는 것.


이 모든 상황에도 아침마다 눈뜨면 살맛 나는 것.



짝사랑이기도 했고 첫사랑 이기도 했던 그의 소식을 20년 만에 다시 들었다.

소식을 들은 후 난 고장 난 타임머신에 탑승해버렸다.

그때의 일들이 수천만 광년 떨어진 다른 행성, 혹은 수 세대를 거슬러 오르고 올라 전혀 알 수 없는 어느 시대를  살아가는 타인들의 이야기처럼 아주 멀게 느껴지다가도 곧 내 눈앞에 20년 전의 풍경이 어제 일처럼  아무렇지 않게 펼쳐진다.


그땐 어려서 마음껏 사랑하지 못했다. 둘이 한 사랑보다 혼자 마음으로 한 사랑이 더 컸었다.

만나고 사랑하다 헤어지고. 그렇게 분명했어야 했는데 그 무엇도 분명한 게 없었다.

20년쯤 또 지나서 다시금 그의 소식이 내게 들려오길... 지금은 무엇을 빌어줘야  할지 알 수 없지만

그땐 서로 편안히 늙고 있길 빌어주겠다고 마음으로 그에게 안부를 전한다.


공기에 바람이 있는 날씨가 더 좋고, 하늘에는 구름이 있어야 더 좋다.

바람도 구름도 많은 날.

하루 종일 손끝이 살짝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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