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카금융서비스와 심사보고서
"타짜"란 어떤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노름 타짜, 야구 타짜, 연예 타짜 등 많은 타짜들이 있는데, 오늘은 그동안 제가 만났던 심사 타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생각보다 이 분야 타짜들의 경우 CPA 같은 라이선스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또 우리가 흔히 말하는 대형 하우스 출신도 저한테는 그닥이었던 것 같아요. (겉멋만 들었다는 느낌이랄까?)
오히려 반대의 케이스, 그러니까 CPA 라이선스가 없거나 좋은 대학 출신이 아니었던 사람,
혹은 작은 조직에서 열심히 근무하는 분들이 (과거의 저처럼) 제 기준에서는 더 '선수'같았습니다.
이런 것들을 공식화 할 수는 없지만 한가지 추정을 해보면, '기댈 곳이 없었기 때문에 더 노력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어쩔수 없는 듯 합니다.
물론 모두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과거에는 쓸만한 심사역이었는데 승진하고 윗사람들 많이 만나다 보니 '정치인'으로 변절한 제 주변 친구들도 많아요.
그러니 성급하게 일반화 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봅니다.
먼저 같이 일했던 직원들 중에 이제까지 '타짜'는 두 번 정도 만났던 것 같아요.
오늘은 그 중 한 친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타짜'라고 표현하니 오래된 시니어 직원을 생각하실 수 있는데, 오히려 제 후배입니다.
은행에서 같이 근무했던 이 친구는 영업이나 심사쪽에서 커리어를 쌓아온 친구는 아니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엄청 버벅거리더군요.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저 때문에 3번 정도 울었다고 함....저 나쁜 사람 아닌데 -.-;;;)
재밌는 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이야기 한 것들을 흡수하는 정도가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
돌이켜보니 그것은 아마 자기 일에 대한 열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전날 무언가 숙제를 주거나 하면 다음날 정답이 아니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본인만의 답'을 찾아왔습니다.
제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점입니다.
바로 이 친구가 '자신만의 무언가'를 만들려고 했다는 것.
또 오랜기간 해왔던 회계, 결산 업무와 연계해서 심사를 하기 시작하더군요.
예를들어 '이 투자 결정이 우리 결산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했다는 것이죠.
실은 이게 더 놀라운 점이었습니다.
(사실 그쪽 파트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승승장구 했을텐데, 중간에 심사쪽으로 커리어 방향을 틀면서 커리어가 꼬인 케이스. 하지만 미래를 위해서는 더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함)
그러다보니 일에 대한 이해도가 엄청나게 높았고 질문의 수준 역시 나날이 달라지더군요.
옆에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니, '선배인데 부끄럽지 않도록 뒤지지 말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이 계속 커졌습니다. (긍정적인 긴장감)
글을 쓰다보니 정말 놀랐던 일화 하나가 떠오릅니다.
같이 근무한지 2년 정도 지난 시점에 법인보험대리점 중 상장사인 '인카금융서비스' 심사 인터뷰를 갔던 날.
https://www.etnews.com/20240528000177
지금은 저의 판단 미스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시 '인카금융서비스'에 대한 인식은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일명 '돈 놓고 돈 먹기' 게임 같은 느낌이랄까.
성장세는 눈에 보였지만 '과연 이 성장세가 계속 지속될 수 있을까'라는 의견으로 부결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만 지금도 인상적인 것은 그때 준비했던 후배 심사역의 인터뷰 자료였죠.
그건 잘 준비된 한편의 심사의견서 완결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같은 업종에 있는 다른 기업 분석을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그때는 관련업 정보 파악이 원활하지 않았던 시기) 놀라울 정도로 잘 해놨더군요.
그때 제가 그 리포터를 보면서 들었던 의문 한가지는 '업계가 다 이렇게 굴러가는건가? 그렇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부정적인 View는 업계를 모르고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실은 킬포라고 생각하는데, '심사역의 준비가 심사 대상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놓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그 후배 심사역의 노력으로 '인카금융서비스'의 승인률은 0%에서 49%로 증가하게 된 것.
물론 부결이 되었지만 저는 이런 것들이 모여서 부서의 'legacy'가 된다고 봅니다.
아쉬운 것은 여러가지 이유로 (승진 누락, 탑다운 방식의 의사결정, 못난 선배들의 시기 질투 등) 그 후배가 심사역 커리어를 그만두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같이 근무하기 어렵게 됐지만 그때의 좋은 기억은 저한테도 아래와 같은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1) 경험 역시 중요하지만 일의 농도가 짙으면 시간의 차이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것,
(2) 결국 한 분야에서 발군의 실력자가 된다는 것은 '일에 대한 열정'에 달려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죠.
...
비록 후배이지만, 그리고 심사 경력은 그다지 길지 않지만 제 기준 '심사 타짜'로 인정할만한 친구가 떠오르는 오늘입니다.
최근 옅어진 일에 대한 저의 농도와 열정을 반성하는 의미에서 써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