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과목을 통해 본 산업분석
생각해보면 심사 업무 때문에 부산에 참 많이 갔던 것 같네요.
시간에 쫓겨서 해운대 해수욕장 한번 걸어다닌적 없지만, 그래도 부산 출장은 늘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참고로 송정 해수욕장은 걸어봤음)
무엇보다 KTX 타기도 좋고 비행기 편도 많아서 부담없이 갔던 것 같아요.
또 의외로 맛집도 많고 경치도 좋아서 돌아오는 길이 항상 좋았습니다.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는데 저 고향 전라도입니다. ㅎㅎ)
오늘은 좋아하는 부산 출장 중 만난 한 중소기업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민감한 내용이라 기업 이름은 지웠음)
이곳은 신발 부수 제품 OEM 업체로, 동남아시아 일대에 메인 공장을 두고 신발 관련 제품을 제조하여 나이키 및 아디다스, 뉴발란스에 판매하는 것을 주력으로 하는 곳이었죠.
참고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나이키와 아디다스 같은 글로벌 브랜드들은 이제 신발을 직접 제조하지 않습니다.
거의 디자인 회사로 불러도 될만큼 밑그림과 브랜드 전략만 짜고 나머지 제작은 다 외주를 주는 구조이죠.
제가 심사했던 이 기업은 나이카와 아디다스의 2차 밴더였습니다.
이말은 그만큼 제품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위에 낀 회사가 많았다는 의미.
재밌는 것은 재무제표에 보이는 판매관리비였습니다.
계정과목 중 하나뿐인데 계속 신경이 쓰이더군요.
아무리 봐도 이 기업의 광고는 TV, 라디오에서도 본 적이 없는데, 광고선전비가 매출원가만큼 지출되고 있었다는 점이 특이한 점이었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핵심은 아무리 OEM 업체라고 해도 위에서 이야기 한 높은 광고선전비 때문에 영업이익률이 1%도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처음에는 '대표이사의 법인카드 사용 비용을 이렇게 처리한 것'이라고 의심했죠.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금액이 너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실사 자리에서 까놓고 여쭤 봤습니다.
"다른 것보다 다른 업체 심사도 많이 했는데 이해되지 않는 게 있습니다. 영업이익률이 터무니없이 낮다는 건데, 기본 원인이 광고선전비가 너무 높은데에서 나오더라구요. 사유를 말씀해주시겠어요?"
처음에는 주저하며 이 핑계 저 핑계만 대던 대표님.
'뭔가 있는데' 경계해서 이야기 하지 않는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이럴때는 소프트 스킬이 최고.
잠시 인터뷰를 쉬고 공장 실사를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 순간 공장 마당에 있는 강아지가 눈에 띄더군요.
달려갔습니다.
강아지와 막 재미나게 놀고 다시 사무실에 들어와서 이야기 했습니다.
"강아지가 엄청 순해서 공장도 못 지키겠어요. 사장님. 그런데 생각좀 해보셨어요? 광고선전비를 잘 알려주셔야 일이 수월해집니다. 지금 일을 메이드하려고 온 것이지, 회사의 잘못을 캐내려고 온 회계법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속 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당시 대답을 듣고 꽤 충격을 받았는데 이 후 비슷한 구조의 다른 중소기업을 심사하면서도 동일한 이야기를 들어서 '사실이구나'라는 생각이 굳어지게 된 것 같습니다.
참고로 다른 기업은 양말 생산 기업임.
사장님을 통해 들은 높은 판관비의 주요 원인을 요약하자면 이 광고선전비는 1차 밴더 '상납'과 관계가 있었습니다.
재무제표에 기재된 높은 판관비가 사실은 거래상대방 업체와 관련된 일종의 '뇌물 비용'이었던 것.
물론 상납의 대상은 상위 기업에만 국한되지는 않습니다.
해외 공장의 경우 허가 등을 받기 위해서 금전적인 혜택을 고나련 지자체에도 '아낌없이' 제공해 준다고 하더군요.
물론 시대가 변해서 이제는 직접 돈으로 주는 건 없다고 합니다.
다만 그만큼 더 교활해져서 회계처리 하기도 쉽지 않다고 합니다.
흔히 말하는 '마케팅 비용'으로 탈바꿈 되어 회계 장부에 들어가는 것이죠.
물론 접대비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에는 '손금산입 한도'라는 것이 있어서 광고선전비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중소기업의 애로사항이 그대로 느껴지는 순간.
삼성, 현대차 같은 대기업의 경우 이런 일들이 없겠지만, (혹시 모르나?) 그 밑에 있는 기업들의 경우 아직도 이런 깜깜이 입찰이 많다는 걸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죠.
더 재밌는 것은 이런 업체들의 경우 판관비가 많이 지출된 다음 해에 거의 예외없이 매출이 성장했다는 겁니다.
계정과목의 효과가 그대로 드러나죠?
아직도 이런 관행이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왔지만, "굶어 죽을 수는 없지 않느냐!" 고 이야기 하던 사장님의 마지막 멘트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네요.
판매관리비의 광고선전비라는 계정 과목 하나가 증가한 것을 보고 '왜 이렇게 비용이 과다하게 증가했지?'에서 시작된 궁금증이 한없이 퍼져나간, 그런 심사로 기억에 남았습니다.
그러고보면 단순히 수치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하나의 숫자를 보더라도 거기에 숨겨진 의미를 고민 해보는 것.
이게 진짜 중요하다라는 걸 다시금 느끼게 해줬던 사례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