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의 투자 이유
"투자 대상이 인프라 자산이기 때문에 보험사의 수요가 높다"라는 말을 미팅자리에서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런가?'하고 넘어가려는 순간, 딜의 세부 구조를 보고 실소를 금할 수 밖에 없었는데,
이유는 만기가 고작 5년에 불과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고작'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보험회사의 자금조달 구조와 관계가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은행과는 다르게 자금을 조달하는 기간이 매우 긴 생명보험회사 같은 경우, 5년 정도의 만기는 이들 입장에서는 별다른 매력이 없습니다.
물론 포트폴리오 다변화 관점에서 인프라 자산도 보험회사의 투자대상이 될수는 있겠죠.
그런데 보험회사에서는 적정 투자대상으로 인프라 자산을 선택할 때는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Duration Matching'.
이걸 모르고 IM 자료를 보거나, 주관사랑 미팅하면서 고객 끄덕이면 그냥 개그콘서트가 되어버리는 것.

보험회사에서 근무한 경험을 토대로 말씀드리면,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자산과 부채의 듀레이션 매칭, 즉 ALM입니다.
듀레이션 갭을 줄이는데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는 금리변동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장기 투자자산에 항상 목 말라 있습니다.
이걸 은행에서만 근무한 은행원 관점에서는 처음에 이해하기 힘들었는데, 이유는 조달구성이 완전히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
시중은행은 보통 3년이나 5년짜리 은행채, 혹은 기업들로부터 받는 1년짜리 정기예금으로 자금을 조달하죠.
그래서 부채 듀레이션이 일반적으로 매우 짧습니다.
그런데 자산운용은 최소 3년 이상입니다.
(중소기업이나 개인사업자 담보대출의 경우 기본 만기가 이렇다는 말)
그러다보니 [자산 듀레이션 > 부채 듀레이션]의 공식이 성립되죠.
그래서 이들은 이 둘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장기로 자금을 조달하거나, 투자자산의 만기를 짧게 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보험회사는 정반대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명보험에 가입하면 최소 10년 이상 납입하는걸 떠올려보세요.
그러다보니 보험사는 [자산 듀레이션 < 부채 듀레이션]이 일반적입니다.
특히 국내의 경우 이 갭의 차이가 더욱 벌어지는 것이, 국내에는 해외에 비해 상대적으로 만기가 긴 투자대상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채권이라고 해봐야 길어야 5년이고, 신종자본증권도 어차피 콜옵션 감안하면 5년짜리에 불과합니다.
(해외채권은 7년이나 10년짜리가 많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할수 있습니다. 옳은 지적입니다. 그래서 장기채권의 경우 해외채권을 사기도 하지만 다만 이 경우 환헤지 코스트를 반드시 감안해야 합니다. 이게 쉬운 게 절대 아님)
그런데 고속도로를 건설하거나, 지하철을 개통한다거나, 혹은 최근에 기사가 나오는 해상풍력발전 개발사업 같은 경우는 보통 최소 만기가 7년에서 10년을 넘어가게 되죠.
이때 대주단 구성을 잘보시면 보험사가 껴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유는 바로 장기투자자산으로써 매칭이 되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회사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투자나 심사전략이 바뀌기도 하는데,
극단적인 경우에는 금리보다 만기가 투자대상, 특히 인프라 자산에 대한 투자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키포인트가 되기도 합니다.
(금리는 됐고 만기 긴거 가지고 와서 빨리 듀레이션 맞취! 라고 이야기하던 CIO가 생각남 ㅋ)

정리하자면, 단순히 재무분석하고 금리만 보는 것이 심사나 투자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늘 강조하는 것처럼 유동성 프리미엄도 감안하고,
만기를 포함한 듀레이션 매칭도 파악해야 '상대방이 왜 이건에 투자하는지!'에 대한 행간을 읽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제대로 된 투자의사결정이 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보험사는 인프라 투자를 선호한다'라고 하길래,
'왜 선호하는데?'라는 질문을 던졌더니,
'안전하니까'라고 답하는 상대방을 보고,
'준비가 전혀 안된 것 같다' 는 생각을 하게 된 하루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P.S
과거에 쓴 해외채권과 듀레이션 관련 글은 아래 참고!
https://m.blog.naver.com/dulri0000/223645959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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