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보보다 의도 파악이 중요한 이유 - 평판 리스크
심사역 입장에서 과거에 어렵게 승인해줬던 업체가 잘되는 것만큼 기분이 좋은 일은 없을 겁니다.
이와 비슷하게 프런트의 강력한 요청에도 부결했던 업체가 결국 망가지는걸 보게 되는 것도 심사역으로서는 큰 보람입니다.
오해하면 안되는 것이 업체가 망해서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부실을 사전에 방지해서 내가 속한 조직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일에 대한 사명감이 커지는 순간입니다.

엊그제 시공능력 182위의 범양건영이 회생절차를 신청했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상폐 이야기에 의견거절도 받더니 결국 사요나라의 길로...
https://www.viva100.com/article/20260107501230
3년전 이맘때가 떠올려집니다.
당시 자회사 고려종합물류를 통해 지방에 있는 냉동창고업 운영중인 회사를 인수한다면서 아주 '이상한 인수금융 구조도'를 프런트에서 가져왔더군요.
https://www.ibtomato.com/mobile/mView.aspx?no=6545
'담보가 빵빵하고 상환구조도 짜여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의기양양한 철부지 지점장'과,
'아무리 봐도 이상한데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갈팡질팡하는 후배 심사역 사이에서, 다시금 나서서 총알받이가 되어야 했습니다.
여기에서 자세히 설명할수는 없습니다만,
간단히 말해 'LBO 배임죄에 걸리기 딱 좋은 구조였다'는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피인수대상 자산을 담보로 (부동산과 보유 예금) 인수대금을 마련하고 이후에 피인수기업의 현금성자산으로 대출금액을 상환한다는,
그야말로 미치고 펄쩍 뛰는 구조였다면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걸 괜찮다고 동의한 IB 부서도 뭐...할많하않)
추가로 인수주체는 전체 인수대금의 10% 이내의 소액을 투자하며, 무자본 인수합병이 아니다 라는 주장까지 했습니다.
재밌었던 건 그 와중에 프런트는 피인수대상기업 유동자금을 유치할 생각만 했다는 겁니다. (이 생각이 없는 지점장은 잘지내고 있는지 문득 궁금하네요)

저는 판사가 아니기 때문에 법적인 판단을 내릴수는 없으나, 과거 판례들을 이야기하며 배임죄에 걸릴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설명했고 취급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참고로 시장에서는 한일합성 LBO, 신한 LBO 판례가 가장 유명합니다. 복잡한데 찾아서 읽어보면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됨)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런트는 "배임죄에 걸리지도 않을 뿐더러, 만약 걸린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무슨 상관이냐? 그리고 모회사가 탄탄하다!"고 주장하더군요.
배임죄에 걸리면 평판리스크에 휘말리는 건 불보듯 뻔할 것이기 때문에 (사랑제일교회에 대출해줘도 부실은 안납니다. 땅값이 얼마인데...그럼에도 왜 수많은 금융기관들이 거절할까요?) 이 부분은 그만 이야기하자고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배임죄에 걸려도 탄탄한 모회사가 구해줄거라고 했는데, 오늘 그 탄탄한 회사가 그로부터 3년을 막 넘기고 회생절차에 들어갔네요?
R.I.P
'국내에서 인수금융 투자하는데 무수 LBO, 배임죄까지 따지냐?' 는, 애송이들의 불만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아주 잘 짜여진 대기업 자회사 IM만 받아보는 사람들입니다.
얼마 전 한 이웃의 댓글처럼 '본인이 가져온 딜을 본인과 동일시하는 부류'인 것이죠.
(난 글로비스 딜을 가져왔으니 정의선이랑 동급이야! 라고 주장하는 꼴)
그래서는 평생 IM 만드는 주관사 꽁무니만 바라보게 될 뿐입니다.
직접 찾아보고, 모르면 물어보고, 어떤 사례가 배임죄에 들어가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해봐야죠.
저는 그렇게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구한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위해서 말이죠.
...
해당건을 부결하면서도 '잘한 판단인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라고 불안해하던 후배님이, 이 글을 보고 이제 부디 한시름 놓기를 바라며...

오늘은 여기까지!
P.S
지금 생각해보면 수정이 필요해보이지만, 그래도 참고하라는 의미에서 과거에 쓴 LBO 배임죄 관련 글 첨부합니다.
https://m.blog.naver.com/dulri0000/222644018191
P.S의 P.S
관련 사례는 현재 영혼을 갈아 넣어 준비중인,
금년도 금융연수원 강의인 '인수금융 심사사례'에서 소개할 예정임.
(아...그런데 이거 언제 마무리하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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