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을 걷다 보면 종종 두 개의 표지판을 마주친다. 할까 말까, 살까 말까, 갈까 말까, 먹을까 말까. 하루에도 몇 번씩 등장하는 선택의 기로에서 후회를 남기지 않으려 애쓴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고민되는 선택지가 하나 있다.
'내가 아는 것을 말할까, 말까'
앎과 경험과 성취를 보여주고 싶다는 욕구와 내세우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은 자주 기싸움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이 두 개의 마음이 옥신각신 다투다 내세움의 욕구가 우위를 차지하는 것을 방관하며 지낸 편이었다.
잔뜩 힘이 들어간 어깨는 부작용을 낳았고 내세움은 지나치니 허세가 됐다. 과시를 위한 입은 항상 옴짝달싹 움직였고 거만함이 피어났다.
잔뜩 기고만장해진 몸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려 할 즈음이었다. 나를 멈춰 세운 것은 우리 반 열두 살짜리 아이의 어떤 '말'이었다.
교실에는 꼭 한 명씩 에이스가 있는 법이다. 5학년 한울이는 우리 반의 에이스였다. 야구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에이스 선수가 등판해 실점을 틀어막는 것처럼 한울이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무한 신뢰를 받는 든든한 해결사였다.
운동선수처럼 바짝 깎은 머리에 복스럽고 통통한 얼굴, 얇은 테의 안경을 쓴 한울이의 서랍 속에는 항상 읽던 책이 가득했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를 생일 선물로 받았다며 기뻐하는 아이였다. 원체 아는 것이 많고 리더십도 있는 데다 다정한 한울이의 주변에는 늘 도움을 청하는 아이들로 붐볐다.
"한울아, 이 문제 이렇게 푸는 거 맞아?"
"한울아, 저기 보드게임 하는 애들 네가 좀 해결해 줘"
수학 문제집에서 어려운 문제를 발견했을 때도, 보드게임을 하다가 사소한 다툼이 생겼을 때도 한울이를 먼저 찾았다. 아마 그들의 세상 속에서도 한울이는 특별한 면모를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한울이가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마다 입버릇처럼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정확하지 않아', '나도 틀릴 수 있어' 같은 말이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이제 이해가? 근데 나도 확실히 아는 건 아니니까 한번 찾아봐"
"근데 나도 정확히 몰라"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 너도 잘 생각해 봐"
잘 말해 놓고도 꼭 뒤에 한 마디를 덧붙이며 여운을 남겼다. 친구가 지나치게 영향을 받을까 우려스러운 마음에 선을 긋는 것일까. 당당해도 되건만 굳이 이런 말을 꼬박꼬박 붙이는 이유가 궁금했던 기억이 난다.
한울이가 습관적으로 내뱉던 그 말이 고작 '자신 없음'이나 '책임회피' 따위가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느 가을날의 수업 시간이었다. 5학년 2학기 사회시간에는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사를 배운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역사 수업 때마다 겪는 애로 사항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알고 있는 내용을 냅다 말해버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역사도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인데 기승전결의 '승' 단계에서 들입다 스포일러를 터뜨려버리곤 했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외치는 몇몇 아이들의 입을 막는 게 중요한 과제였다.
그날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의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어떻게 안정시킬 수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을 하던 중이었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지방 호족들을 어떻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을까요?"
"............"
오랜만에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 수다스러웠던 아이들이 입을 꾹 다물고 아리송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우는 것을 보니 잘 모르는 듯했다. 그런데 맨 앞에 앉아있던 한울이가 짝꿍만 들릴법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말하는 것이 들려왔다.
"결혼.."
귀 기울여 들어보니 맞는 내용이었다. 평소에 역사책을 즐겨 읽던 한울이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었다.
"한울이가 이야기해 볼래?"
"아, 아니요!"
그런데 막상 물어보자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발표를 워낙 좋아하는 아이여서 당연히 자신 있게 이야기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한울이를 뒤로 하고 다시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생각해 볼게요. 만약에 여러분들이 왕건이라면 어떤 방법으로 지방 호족들이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했을 것 같나요?"
스스로 태조 왕건이 되어 생각해 보자고 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집이나 돈 같은 재물을 많이 줘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을 것 같아요"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직을 줬을 것 같아요"
상상력을 펼치는 아이들 사이로 대답을 피했던 한울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조금 전 생각했던 결혼정책에 대해서 말하려는 듯했다.
"한울이 이야기해 볼래?"
"그.. 병사들을 좀 나누어주었을 것 같고요, 각자의 지역을 잘 지키면 상을 주는 식으로 통제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아예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답을 알고 있는데도 일부러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처음 들어본 내용이라는 듯 말이다.
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았던 걸까. 한울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6교시 수업이 끝난 뒤, 하교시간을 틈 타 청소를 하고 있던 한울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한울아, 아까 사회시간에 그 결혼정책 알고 있는 것 같던데 왜 발표 안 했어?"
"아, 그거요. 알고 있긴 했는데.."
조금 뜸을 들이던 한울이가 말했다.
"저는 한국사 시험공부하느라 알고 있긴 했는데요, 뭔가 저만 자꾸 말하면.. 친구들이 자기는 모른다고 생각할까 봐요"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그리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상관없지만, 친구들은 생각해 볼 시간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우선이었다는 이 열두 살 아이의 대답이 너무나도 사려 깊고 성숙했다.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게다가 한창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나이다.
그제야 한울이가 습관적으로 말하던 '정확하지 않아'와 '나도 틀릴 수 있어'의 의미도 이해가 됐다. 그 또한 자신을 기꺼이 낮추는 마음이자 친구의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리는 넉넉한 시선의 일부였다. 그 다정한 겸손함이 가벼워지던 나의 자아에 묵직한 돌을 달아주는 기분이었다.
별 일 아니라는 듯 뒤돌아서 다시 청소를 하던 한울이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가끔 지인들과 한창 수다를 떨고 난 후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아는 것을 말하고 싶다는 욕심과 이루어낸 것을 자랑하고 싶다는 도취심에 시야가 좁아질 때가 있다. 그럴 때 한울이의 말이 생각난다.
꽤 많은 시간 동안 '내세움'으로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고,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던 다른 사람들을 들러리처럼 여겨온 것 같다. 스스로 만족하면 그것이 전부인데 애먼 곳에서 정답을 찾았다.
마티아스 뇔케의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겸손은 허공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인 채 스스로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 있으려는 노력이다'
어쩌면 열두 살 아이가 정답을 알아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현실에 단단히 서 있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자 다른 이와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한 켠 내어주는 사려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겸손]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