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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 별 Jan 05. 2022

제8화. 삼겹살은 먹고 봐야지

1998년 수유리 시댁에서 살고 있었을 때다.

둘째 아이의 임신을 확인하고는 근처 가까운 병원으로 산부인과 진료를 다녔다. 동네 분들이 알려주는 유명하다는 산부인과 선생님이 있다는 이유로  골목 따라 기다란 작은 시장을 걸쳐 걸어가면 나오는 제법 큰 병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댁 근처는 연세 드신 분들이 오랜 시간을 마을에서 이웃으로 함께 사셨다. 그러다 보니 항상 아침을 드시면 커피를 마시러 오시거나 어머님이 건너편 집을 향해 창문을 열고 ”어이, 커피 한 잔 할까?” 하면 “창식이네 집에서 한잔해요” 하는 대답 소리가 전해오는 그런 마을이었다. 

어찌 보면 우리 집에 누가 다녀갔는지, 저 집이 무얼 해 먹는지 알 수도 있을 정도로 동네 안 소식을 들을 수 있는 마을 안에 또 다른 공동체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다 보니 갓 결혼식을 마치고 돌아온 시댁의 그 작은 한 칸짜리 지하방은 우리들의 사생활을 보호해 주지는 않았다. 더군다나 신혼 여행길에 아이를 갖고 입덧을 시작한 새색시의 사생활은 더욱이 호기심 거리에 이야깃거리의 대상이 되었다. 직장일로 야근을 하게 된 신랑을 기다리다 밖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 지하방에서 홀로 잠을 이룰 수 없어 불을 켜놓고 잠든 그다음 날은, 눈을 떠 시댁에 올라가기 전에 이미 동네 아주머님들 사이에 전기요금 걱정하지 않는 새색시가 되었고, 입덧으로 너무 먹고 싶은 떡볶이를 시장에서 사 먹고 들어오는 날도 영락없이 누구네 며느리가 시장에서 혼자 떡볶이를 사 먹었다고 소문나는 그런 마을의 동네였다. 그런 환경에 익숙해진 신랑은 왜 그런 행동에 예민해하는지 나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았고, 부모님들의 한마디는 그냥 스치듯 지나쳐 버릴 수 있는 환경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렇기에 새색시의 외로움과 서운함은 안으로 더 커지기만 했다.   

 

그런 이유로 난 출근 하는 날은 참았던 식욕으로 자유의 진정한 의미는 먹는 것부터 라며  참아온 입덧을 분출하듯 먹어대기도 했다. 첫째 아이는 그렇게 지독한 입덧 속에서도 잘 먹고 어렵지 않게 출산을 했다. 이젠 둘째 때는 뭔가 달라졌다. 그때의 새색시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결혼 생활도 익숙해져 있다 보니. 근처이긴 해도 시댁에서 분가를 한 상태이고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일도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덕에 둘째 아이 임신에서는 먹고 싶은 것들을 겁 없이 먹기 시작했다. 무언가 먹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 주머니 사정 내에서 칼국수도 먹고 떡볶이도 먹고, 더군다나 그때의 그 병원은 한 번의 진료가 적어도 2시간 정도 소요되고 예약을 하고 가도 응급분만이 잡히거나 진료가 늦혀질 수 있었기에 산부인과 진료를 하면 시간을 잡고 마음 넉넉히 가야 할 정도였다. 임산부에게 2시간의 공백이란.....    


 출산일을 앞에 두고 있는 이유로 병원을 가기 전 점심을 든든히 먹고 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때 이웃 아주머니의 말씀이 생각이 났다. 아이를 잘 낳으려면 삼겹살을 자주 먹어야 아이를 잘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 , 지금 생각하면 참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데 왠지 이웃 아주머니들의 말씀은 경험에서 나오는 말 같고 또 건너 누군가는 그렇게 해서 아이를 편하게 잘 낳았다는 말을 해주 곤 하였다.


그런 이유로 진료를 가기 전 그 말을 기억한 나는 용감하게 삼겹살집은 들어갔고 혼자서 2인분을 주문하고 기분 좋고 맛있게 먹었다. 직장도 다니고 큰아이도 키우느냐 애쓰는 나에게 마치 휴가를 받고 병원을 간다라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으로 고기를 먹었다.     


그렇게 든든한 속을 채우고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다 차례가 되어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내 몸은 마음 같지 않았나 보다. 초음파 검사 중 의사가 한마디 했다. 아이가 너무 작고 심장소리가 이상하다고, 그리고는 바로 수술을 할 수도 있다고, 그렇게 난 분만실로 입원을 하게 되었다. 상황이 안 좋으면 바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면서 나에게 언제 식사를 했냐고 물었고 난 오기 전 바로 삼겹살을 먹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진료 오면서 식사를 하고 왔냐고 물어보길래  난 너무 당황스러웠다. 첫애도 아니고 둘째를, 나는 아직도 첫아이 때의 그 어려움을 보상받으려는 듯  철없는 행동을 한 듯했고 난 전혀 예기치 않게 벌어진 일에 대해 당황스러웠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다. 무엇인가 계속 확인을 하며 기계로 체크를 해야 했고,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나의 삼겹살 2인분이 문제가 되었던 듯했다. 급하게 보호자에게 연락을 했고, 나는 삼겹살의 소화를 기다리는 철없는 산모가 되어있었다. 그렇게 될 때까지 나는 나를 또 얼마나 원망했는지 보호자가 오니 그런 상황을 설명하는데 더 부끄러운 산모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결론은 수술을 하고 울 아들을 낳았고, 아기가 희귀병에 걸렸다는 걸 안 순간, 나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곤 아들을 잃은 어느 날부터 인가는 그 부끄러웠던 하루의 이야기가 더 잡아두고픈 소중한 추억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라도 잡아 두고 싶던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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