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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목나무와 매미 Jun 16. 2024

사랑이 역사가 될 때

<사랑의 역사>(문학동네, 2023)를 읽고

 레오폴드 거스키는 유대계 미국인이다. 세계 2차대전 당시 홀로코스트를 피해 폴란드에서 미국으로 망명했다. 앨마라는 여인을 사랑했지만, 미국에 먼저 온 앨마는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어 있었다. 남은 삶을 다 바쳐 앨마를 사랑하는 낭만적인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죽었을 때 빨리 알아차려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주기적으로 식당에서 진상을 부리고, 마트에서 동전을 던지는 괴팍한 할아버지일 뿐이다.


 앨마 싱어는 14살 미국인 소녀다. 자신을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독특한 동생을 두었지만 본인도 평범하지 않다. 야생에서 살아남는 법을 노트 몇 권에 정리하기도 하고, 아빠가 물려준 텐트를 더 빠른 시간 안에 치기 위해서 스스로와 경쟁한다. 아빠가 죽고 "아빠를 택했고 어떤 느낌을 붙잡기 위해 세상을 희생한" 엄마가 행복하기를 바라며 여러 남자들을 계속 엄마와 엮을 구실을 찾는다. 마침내 <사랑의 역사>를 번역해달라고 부탁한 제이컵 마커스를 적당한 상대라고 여기면서 그를 찾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문학동네, 2023)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 2명의 이야기가 촘촘히 연결되며 이어진다.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쓸 정도로 앨마를 온전히 사랑했던 할아버지와, 감정에 서툴고 사랑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춘기 소녀가 차곡차곡 벽돌을 쌓아 소박하지만 견고하고 아름다운 다리를 만든다. 이 다리를 통해 레오 거스키에게서 앨마에게로 사랑이 넘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오히려 질투인지, 호감인지, 사랑인지도 모르는 앨마가, 자신의 사랑을 확신하는 레오 거스키를 이해해 주고 그 사랑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준다. 앨마를 위해 쓴 책이 또 다른 앨마에게 전달되면서 거스키의 사랑이 보답받고 확인받기 때문이다. 앨마가 거스키를 만남으로써 거스키의 사랑은 거스키의 인생과 함께 역사가 된다. 

 이 사랑이 역사가 되는 과정이 마지막 몇 장에 담겨 있는데, 450쪽이 이 부분을 위해 쓰인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레오 거스키는 자신이 쓴 책, <사랑의 역사>에서 언어와 손짓의 관련성에 대해 밝혔다. "언어의 손짓과 삶의 손짓에는 아무런 구분이 없었다."(111쪽) 이 점에서 마지막 문장은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던 거스키가 손짓을 통해 앨마에게 이야기했고, 앨마는 이 손짓을 통해 거스키의 삶과 그 자체였던 사랑을 이해한 것이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다시 말했다.
아이가 말했다, 네.
앨마, 나는 말했다. 
아이가 나를 두 번 두드렸다. 

373쪽


이 부분에서 앨마와 거스키가 서로의 사라진 퍼즐 조각을 맞추는 걸 보며 울컥했고, 거스키의 <사랑의 역사가> 비로소 실현되는 걸 보며 감탄했다. 


 문학동네 편집자는 이 책의 추천사를 이렇게 썼다. 


작은 퍼즐이 모여 마침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되었을 때,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 아름다운 그림 앞에서
당신은 반드시 울게 될 거예요.

편집자 K


   접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두 인물이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차근차근 서로를 이해하며 만드는 과정이 감동적인 작품이었다. 여기에 앨마의 풋풋한 사랑, 버드의 별나면서도 귀여운 행동들이 감초처럼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비록 울지는 않았지만) 앨마와 거스키의 앞으로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훈훈한 여운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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