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빠뉴(2)

으르신 제빵소

by 고목나무와 매미

약속이 생겨 이태원에 가면 꼭 들리는 곳이 있다. '오월의 종'이라는 빵집이다. 천연 발효종을 이용해서 만드는 건강빵으로 유명한 곳인데 11시에 문을 열어 오후 2시쯤 되면 거의 모든 빵이 다 팔리고 없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단연 무화과 빵이다. 12cm 정도의 길쭉하고 날씬한 럭비공 모양의 빵인데 안에 무화과를 아낌없이 넣어 투박한 모양과 달리 담백하면서도 무화과를 씹을 때 느껴지는 달콤한 맛이 일품이다.


지난번 '리움미술관' 전시를 어렵사리 예약해서 부모님을 모시고 다녀온 적이 있었다. 미술관을 가기 전에 시간이 애매하게 남아 '오월의 종'에 가기로 했다. 역시나 핫플레이스답게 오픈 직후였음에도 불구하고 가게 밖으로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었다. 약 30분을 기다린 후에 무화과 빵 여러 개와 호두 호밀 식빵을 겨우 사서 나올 수 있었다. 기다리는 걸 질색하는 아부지는 이때 '도대체 그 무화과 빵이 얼마나 좋길래 이렇게 한 세월을 기다려서 먹는가'라고 생각하셨다. 그리고 깜빠뉴 만들기를 성공하면서부터 '그 대단한 무화과 빵'을 만들기로 결심하셨다.


무화과 깜빠뉴는 일반 깜빠뉴와 만드는 법은 같다. 하지만 핵심적인 과정이 하나 추가된다. 바로 무화과를 레드와인에 졸이는 것이다. 말린 무화과를 레드와인에 졸이면 와인이 무화과 안으로 스며들면서 무화과의 당도를 높여주고 향을 살려준다. 번거로울 법한데도 아부지는 항상 무화과 깜빠뉴를 만들 때 생략하지 않고 정성 들여서 무화과를 졸이신다. 졸여놓은 무화과를 다시 하루 발효시킨 반죽에 넣고 잘 버무린 다음 두 시간 동안 숙성시킨다. 그다음에야 오븐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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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의 무화과 깜빠뉴는 다른 곳에서 파는 무화과 빵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바로 해바라기씨를 듬뿍 넣어 같이 굽는 것이다. 무화과의 단맛과 해바라기씨의 고소한 맛이 무화과 깜빠뉴의 풍미를 한층 더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항상 이태원에 갈 때마다 '오월의 종'에 무화과 빵이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면서 눈치게임을 했는데 아부지가 무화과 깜빠뉴를 만들기 시작한 덕분에 그럴 일이 없어졌다. 기존의 무화과 빵보다 더 크고 더 고소하고 더 맛있는 무화과 깜빠뉴를 원할 때마다-비록 만드는 데 이틀 걸리기 때문에 미리 주문을 해야 하긴 하지만-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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