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물 식빵

으르신의 집념의 집약체

by 고목나무와 매미

우리 집 반려 효모 제임스의 도움으로 아부지는 많은 식빵과 발효빵을 만들었다. 대부분의 빵들이 성공적이었다. 잘 부풀었고 고소한 맛이 일품인 빵들이었다. 다양한 빵을 만들기 위해 연구하던 중, 책에서 마주한 곡물 식빵은 아부지에게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설탕, 버터, 기름 등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고 오로지 여러 가지 곡물과 통밀로 맛을 낸 건강 식빵. 건강한 빵 만들기를 표방하는 아부지에게 곡물 식빵은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곡물 식빵에 꽂힌 이후로 여러 빵들을 만들고 먹을 때마다 "곡물 식빵을 만들어야 되는디 재료 구하기가 쉽지 않네~."라는 말을 토핑처럼 덧붙였다.


곡물 식빵을 만들겠다고 결심한 때부터 아부지는 곡물 식빵에 필요한 재료들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장을 보러 갈 때마다 곡물 식빵에 넣을 만한 잡곡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며 곡물 코너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조, 팥, 수수 등 곡물은 일반 마트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문제는 곡물식빵에 넣을 '몰라시스 molasses'였다. 몰라시스는 사탕수수에서 정제한 당밀을 뜻한다. 그웬 스테파니의 유명한 캐럴인 'You Make It Feel Like Christmas'에 몰라시스로 만든 과자가 가사로 나올 정도로 외국에서는 익숙하고 흔한 재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아부지의 몰라시스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던 중, 습관처럼 인터넷 마켓을 브라우징하던 나는 몰라시스를 발견했다. 곡물식빵 만들기만을 고대하고 있는 아부지를 위해 당장 주문을 했다. 새벽 배송으로 몰라시스가 도착한 당일, 아부지는 바로 곡물 식빵 만들기에 돌입했다.


곡물 식빵이라는 이름답게 거의 10가지 가까운 곡물과 견과류가 들어갔다. 찹쌀, 팥, 수수, 조 등등 잡곡밥에 버금갈 정도로 많은 곡물이 들어갔다. 여러 곡물들을 반죽에 넣고 잘 버무린 다음에 숙성을 시키고 오븐에 구웠다. 안에 들어 간 재료가 많아서 그런지 제임스(*우리 집 반려 효모)를 충분히 잘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식빵만큼 많이 부풀지 않아 아부지가 걱정을 하셨다.


KakaoTalk_20220501_191827803.jpg
KakaoTalk_20220501_191827803_01.jpg

하지만 기우였다. 빵이 다 구워졌음을 알리는 경쾌한 소리가 들리고 아부지가 한 달을 노래하던 곡물 식빵이 모습을 드러냈다. 많은 곡물이 들어간 만큼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그리고 천연 효모로 인해 나는 산미를 몰라시스가 중화하여 한층 더 담백하고 향기로웠다.


빵을 잘라보니 정말로 독일이나 프랑스에서 사 먹어볼 수 있을 법한 빵의 단면이 나왔다. 빽빽하게 속이 차 있었고 아몬드, 호두 등의 단면들이 여기저기 콕콕 박혀있었다. 겉모습이 훌륭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부지는 맛이 없을까 봐 걱정하셨다. 처음 사용해 보는 재료도 있었고 구워지는 과정에서 아부지의 예상만큼 충분히 부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통상적으로 빵이 많이 부풀지 않으면 골고루 익지 않고 빵의 식감이 좀 더 뻑뻑해진다.) 역시나 필요 없는 걱정이었다. 갓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빵을 한 입 베어 무니 곡물의 고소함이 입 안 가득 느껴졌다. 밀도가 높아 다른 식빵에 비해 폭신폭신하지는 않았지만 촉촉했고 곡물이 들어간 만큼 한쪽만 먹어도 든든했다.


만드는 데 거의 한 달이 걸린 아부지의 곡물 식빵은 고급진 맛을 뽐내며 성공적으로 완성되었다.

keyword
이전 07화깜빠뉴(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