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 속의 으르신 제빵소

으르신의 약력 소개

by 고목나무와 매미

아티장 빵집에 가면 파티시에의 화려한 경력들이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르꼬르동 블루 수료장, 유명인사들과의 사진, 그들의 사인 등이 여기저기 붙어 있다. 비록 연예인들의 후기나 사인들은 없지만 으르신 제빵소의 파티시에이자 주인장인 으르신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보고자 한다.


으르신 제빵소를 상상해 보면 아마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벽에 옥조근정훈장이 걸려있을 것이다. 옥조근정훈장은 33년 이상 근속한 공무원에게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다. 그렇다. 으르신은 자그마치 33년 동안이나 교직에 계셨다. 시작은 고등학교 수학교사였다. 이십여 년동안 수학교사이자 고등학교에서 가장 힘든 보직인 고등학교 3학년 부장으로 근무하셨다. 그러다 진로교사제도가 신설되면서 고3 담임 경력을 살려 전직하셨다. 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이 제일 중요한지라 으르신은 진로교사가 되어서도 계속 고생하셨다. 해마다 입시철이 되면 밤을 새워 가며 고등학교 3학년 학생 전체의 자소서를 읽고 첨삭하셨다. 학기초와 학기말에는 학교 홍보 및 학교 소개로 분주하셨다. 여기에 학부모들과 진로 상담도 하고 자퇴 학생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설득도 하시고, 가출 학생들을 수색하러 나가시는 등 학교의 대소사를 도맡아 하셨다. 옥조근정훈장은 오랜 세월 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신 아부지의 교직 생활을 증명한다.


다른 벽에는 으르신이 이것저것 조립해서 만든 물건들이 가득 걸려있을 것이다. 오븐 위에는 무소음 부품을 따로 사서 넣은 시계가 걸려있을 것이다. 반죽을 하는 테이블 위에는 나무판을 조립해서 만든 거치대가 있을 것이다. 내 기억 속의 으르신은 항상 호기심이 엄청 왕성하셨다. 어떤 일에 호기심이 생기면 항상 직접 경험해봐야 직성이 풀리셨다. 시계부터 컴퓨터까지, 기계란 기계는 다 뜯어봐야 했다. 새로운 곳에 놀러 가면 남들이 가지 않은 길로 꼭 가봐야 했다. 어릴 때 하루는 온 가족이 함께 산에 갔다. 매번 다니던 길이 있었는데 갑자기 중간에 "이 길로 가면 어디가 나올까?"라고 하시더니 모두를 이끌고 남들이 아무도 가지 않는 길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집에 오는 데 평소보다 한 시간은 더 걸렸다.


맞은편 벽에는 직접 그린 그림들이 걸려 있을 것이다. 집 안에 걸어두면 돈이 들어온다고 한참 의뢰를 받아 그린 해바라기부터 으르신이 제일 좋아하는 수련 그림들까지. 제빵소를 열면 직접 그린 빵 그림들도 걸려 있을지도 모른다. 할머니 말씀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아부지 형제들은 손재주가 좋았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아부지 손재주가 특출 나다. 스위치 갈기, 환풍구 고치기 등 집의 가전들은 대부분 아부지 손을 거치면 문제가 해결되었다. 퇴직하기 몇 년 전부터는 유화 그리기에 취미를 붙이셨다. 작은 해바라기 한 송이부터 거대한 소나무 숲까지 아부지는 자연물을 즐겨 그리신다.


내 기억 속의 아부지는 항상 바쁘셨다. 평일에는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시고 밤 11시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감독하시다 들어오셔서 초등학교 때는 거의 얼굴을 뵐 수 없었다. 주말에는-이 때는 주 6일 근무일 때라 주말이라고 해봤자 일요일 하루였다- 어떻게든 짬을 내서 우리와 시간을 보내시느라 바쁘셨다. 놀이공원, 명산, 명승고적 등등 주말을 이용해서 전국을 누볐다. 그랬던 아부지가 퇴직 후 시간을 보낼 방법을 찾지 못해 괴로워하셔서 가족 모두가 속상했다. 이제는 요리도 해 보시고, 나물도 캐러 다니시는 등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고 계신다. 빵 만들기는 그중에서 가장 아부지가 뿌듯함을 느끼시는 일이다. 빵 만들기를 통해 아부지가 퇴직 후에도 인생을 충분히 즐기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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