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 파운드케이크

으르신 제빵소

by 고목나무와 매미

"아! 그런 거 말고 그냥 파운드케이크나 만들어 줘!"


깜빠뉴 만들기 장인이 된 아부지는 도서관에서 엄청 많은 제빵 책을 빌려다 보시며 다음 도전 대상을 물색하셨다. '천연 효모로 만드는 ~', '빵 만들 때 곤란해지면 읽는 책', '천연발효~' 등의 온갖 종류의 제빵 책을 돋보기안경을 쓰고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으셨다. 직장을 그만두고 베이커리 카페를 시작한 일본인 부부가 쓴 책을 읽던 중, 곡물식빵 꼭지가 인상 깊으셨는지 다음 도전 대상으로 곡물식빵을 점찍으셨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행히도-아부지께는 불행하게도- 곡물식빵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들 중 일부 재료를 우리나라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한동안은 책에서 소개한 재료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를 탐색하면서 이제나 저제나 곡물식빵 연구만 하셨다.


"아이 우리나라에는 왜 다양한 곡물을 안 파는 거여?", "도대체 몰라시스는 어디서 파는 거여?"

라는 아부지의 불평을 4592015번째쯤 들었을 때 티브이를 보시던 엄마가 말씀하셨다.


"아! 그런 거 말고 그냥 파운드케이크나 만들어줘!"


"파운드케이크는 또 뭐여"라는 말과 함께 곡물식빵은 잠시 아부지의 뇌리에서 사라졌고 파운드케이크가 자리를 잡았다.


파운드케이크는 밀가루, 버터, 설탕, 달걀을 모두 1파운드씩 동일하게 넣었다고 해서 그 이름이 붙었다. 영국에서 시작된 빵으로 안에 재료를 무엇을 넣느냐에 따라 앞에 붙는 이름이 달라진다.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기로 결심한 이후 유 선생님(*유튜브)과 열심히 연구하시던 아부지는 나에게 특명을 내리셨다.


"바나나가 필요한디, 너무 싱싱한 거 말구 푹 익어서 누르스름~ 해진 바나나 보이면 사와."


마트에 갈 때마다 눈에 불을 켜고 누르스름~한 바나나를 찾기를 일주일, 동네 슈퍼에서 세일하고 있는 누르스름~하다 못해 갈색 반점들이 보이기 시작한 바나나를-심지어 할인된 가격에-사 들고 신나게 집에 들어왔다. 마음에 드는 상태의 바나나를 보자마자 아부지는 바로 바나나 파운드케이크를 만들기 시작했다. 파운드케이크에는 버터, 설탕, 달걀이 모두 1파운드씩 들어가야 제 맛이지만 건강빵을 포기할 수 없었던 아부지는 레시피에 적혀 있는 것에 있는 것보다 적게 설탕과 버터를 넣고 반죽을 하다가 레시피에 적혀있는 것보다 많은 양의 바나나를 넣었다. 다시 레시피에 적혀 있는 것보다 많은 호두와 아몬드 슬라이스를 넣고 레시피에 적혀있지 않은 해바라기씨를 잔뜩 넣고 빵틀에 넣어 구웠다.


KakaoTalk_20220424_114227417_01.jpg
KakaoTalk_20220424_114227417_02.jpg


그 결과 단 맛은 조금 덜하지만 바나나 향이 더 향긋하고 견과류의 고소한 맛이 곁들여진 파운드케이크가 완성되었다. 내부는 촉촉하면서 먹었을 때 묵직하고 바나나 향이 많이 났다. 처음 만들어 본 것임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훌륭했다.


처음 만드는 바나나 파운드케이크를 성공적으로 만들어 자신감을 얻은 아부지는 그 후로도 두 번 더 바나나 파운드케이크를 만드셨다. 두 번째 시도 때는 으르신의 눈이 어두워 레시피에 적혀있는 베이킹 소다 대신에 베이킹파우더를 넣는 실수를 하셨다. 그 결과 파운드케이크가 부풀지 않아 제대로 익지 않는 사태가 발생했다. 파운드케이크의 윗부분만 익어 내부의 바나나 반죽을 타고 속절없이 흘러내렸다. 다시 속 안까지 확실하게 익히려다 보니 이미 익은 윗부분은 새까맣게 타버렸다. 윗부분을 잘라낸 파운드케이크의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너무 오래 오븐에서 구워 첫 번째 시도 때보다는 조금 뻑뻑했다.


뼈아픈 두 번째 실패를 거울로 삼아 으르신은 꼭꼭 돋보기안경을 챙겨 쓰고 그다음 시도 때 모든 재료가 잘 들어갔는지 트리플 체크를 하신 결과 다시 맛있는 바나나 파운드케이크가 완성되었다! 집에 친구가 와서 맛 보여줬더니 맛있다며 집에 가서 가족들도 준다고 싸 달라고 할 정도였다. 베이킹을 시작한 이후 파운드케이크까지 완성한 아부지의 머릿속에는 다시 곡물식빵이 천천히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keyword
이전 16화포테이토 크라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