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원의 엽서 Vol.1 postcard067

캘리그래피와 그림으로 띄우는 100일간의 엽서 - 예순일곱번째 엽서

Never More.
다시는 없으리.

-에드가 앨런 포우의 <The Raven> 중에서
작업을 하며 틀어놓은 오늘의 vod는 진격의 거인.
거인의 습격에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들이 절망하는 장면들이 반복되는 걸 보며
포우의 갈가마귀가 떠올랐다.

나는 절망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언제나 포우의 갈가마귀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이불킥이 자동시전되는 민망한 정서지만
10대 후반의 나는 이상한 미적관점에 빠져 있었다.
슬프고 기괴한 것이 왜 그렇게 아름답게 여겨졌는지.
심지어 안 슬프면 아름답지도 않다는
그야말로 중2병 같은 상태였다.
(ㅋㅋㅋㅋㅋ 내 안에도 머물렀던 흑염룡…)

그런 나에게 취향저격이었던 이 시는
사랑하는 아내를 잃은 절망에 빠진 포우 자신의 심정을 적은 것이었는데
슬픔에 절여진 주인공에게 불길한 까마귀가 하는 대사(?)가
바로 저 Never More.

다시는 없으리, 혹은 영영 없으리로 번역되는 이 구절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뭔가 가슴이 무너지는 기분이 든다.

지금은 슬픈 이야기는 좋아하지도 않는다.
인생의 쓴맛을 두루두루 보고
눈물 콧물 쏟을 만큼 쏟아보니
슬픔은 너무 족하다 못해 과했다고 생각한다.

포우의 네버 모어의 주어가 행복이었다면
나의 네버 모어의 주어는 슬픔이길 바란다.

P.S. 어쨌거나 오랫만에 다시 읽어본 추억의 시는
지금 읽어도 그 표현들이 참 아름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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