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결말
언젠가 성주가 다친 날이 있었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고 신나는 마음에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다. 나는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애가 떨어질 뻔했어'라는 말을 그때 이해했다. 나는 구급차를 불렀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가는 길에 성주가 너무 멀쩡해서 굉장히 무안했던 일이 있었다.
함께 살 때는 내가 한전 엄청 아팠던 적이 있었다. 성주는 친구 생일 파티에 갔다가 늦게 들어왔다. 성주는 행복한 목소리로 통화를 하다가 들어왔다. 그때 생각이 났다. 성주가 다리를 헛디뎌 구급차에 실려 갔던 일. 그 생각에 웃음이 났다. 성주는 소중히 여기면서 나 스스로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는 내가 조금 웃기다고 생각했다.
인간은 원래 자기중심적이지 않나? 난 태어나서 나를 먼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나에게는 그게 본능에 없었다. 성주를 불러 구급차를 부르고 싶었지만 성주의 통화는 끊일 줄 몰랐고 나는 성주를 큰 목소리로 부르거나 성주에게 갈 힘이 없었다. 결국 구급차를 부르고 정신이 희미해져 가는 사이 나는 생각했다. 구급차가 오면 성주가 자기가 못 챙겼다는 사실에 마음 안 좋아할 텐데 조금 기다릴걸 그랬나. 생각하면서 정신을 잃었다.
눈을 떠보니 엄마와 할머니 성주가 내 옆에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가 맹장이 터졌는데 그걸 빨리 치료하지 않아 복막염으로 퍼졌다고 했다. 간단한 수술을 해야 한다고 안내해 주셨다. 나는 누워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드렸다. 옆에 간이 의자에 앉아 있는 할머니와 내 옆에 서있던 엄마가 눈에 들어왔다. 엄마는 나에게 미련하다고 했다. 나는 맞다고 했다. 내가 미련해 일을 키웠다고 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가슴을 쓸어내리셨다. 많이 놀라신 모양이었다. 그 옆에 성주는 나의 예상과 정말 똑같은 모습으로 서 있었다. 눈에는 그렁그렁 눈물이 차 있고 어쩔 줄 몰라하는 손모양에 앉지도 서지도 못해 어정쩡하게 서있는 모습이었다.
슬프게도 이 상황이 나는 조금 행복했다. 좀처럼 볼 수 없는 조합에 내가 모두 사랑하눈 사람들이라니 기뻤다 나를 위해 병원까지와 내가 깨기만을 기다려 주었다는 게 행복했다. 마치 처음 받아보는 사랑 같았다. ‘아픈 것도 나쁘지많은 않네’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체하지 않고 할머니와 엄마에게 집으로 가시라고 했다. 시간이 늦었고 식사도 안 하셨을 것 같고 편히 앉을 곳도 없어 불편하실까 마음이 안 좋았다. 수술하고 나와 혼자 편하게 쉬고 싶다고 했다. 엄청 대단한 수술도 아니어서 사람만 많으면 마음만 심란하다고 했다. 엄마와 할머니는 밥 먹고 오겠다며 병실을 나섰다.
성주가 나와 남게 되자 성주는 소리 내어 울었다.
“나는 너를 부르러 가고 싶었는데 갈 힘이 없어서 못 갔어, 알지? ”
대답은 없었다.
“전화라도 하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통화 중이라서 그냥 내가 구급차를 부르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부른 거야. 너는 잘 못이 없어 성주야.”
대답은 없었다.
아마도 미안하고 자기가 도와주지 못했다는 게 속상해서 이지 않을까. 성주는 마치 내가 아픈 게 자기 탓이라도 되는 양 오랫동안 울었다. 내가 마치 시한부 선고라도 받은 양 울었다. 나는 그게 조금 웃겼다. 나는 실성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었다. 성주는 의아한 모습으로 나를 봤다. 배가 아파서 웃으면 안 되는데 자꾸 웃기지 말라고 성주룰 다그쳤다.
간호사가 와 곧 수술실로 들어가야 하니 수술복으로 갈아입으라고 옷을 주고 나갔다. 나는 성주의 도움을 받아 옷을 갈아입고 이동식 침대에 올려져 수술 대기실로 들어갔다. 나는 걱정 말라며 할머니와 엄마에게 잘 말해 달라거 하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정말 간단한 수술이었고 잘 끝났다. 하루동안 입원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경과가 정말 좋았다. 나는 잘 먹고 잘 회복했다. 나에게는 웃긴 해프닝이었다.
나의 아픔은 별게 아니었다. 아픈 곳이 생겼고 그곳을 치료하면 끝나는 일이 아닌가. 걱정할 일도 마음 아파할 일도 없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도 아니고 왜 그렇게 성주가 우는지 좀 이해가 안 갔다. 시간이 흐른 뒤에 알았다. 만약 같은 상황이 나에게 왔다면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나를 자책했을 거라고. 그건 그 속상한 마음은 나를 아끼는 마음이었다.
성주는 유럽에 있는 동안 잔병치레가 많았다. 나는 그곳에 내가 없는 게 속상했다. 옆에서 챙겨주면 좋을 텐데 생각이 들었다. 성주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나서 고된 몸살에 걸린 적이 있다. 그 사람이 매일 옆에서 챙겨주고 치킨 수프도 끓여주고 약도 사다 주었다고 얘기했다. 내가 바라던 그런 사람이 성주에 옆에 있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내가 옆에 없어도 성주를 챙길 사람이 있다는 게 성주가 뭔가를 이뤄 낸 것처럼 뿌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