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결말
나는 자주 물었다.
"행복이 뭘까?"
성주는 항상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항상 어서 생각해 보라고 했다.
성주는 금세 답을 생각해 냈다.
"너랑 맛있는 거 먹을 때. "
나는 그 대답에 세상을 가진 듯 행복했다.
나는 또 물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성주는 대답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지만 아주 많이 웃었던 날. "
성주는 가끔 천재 같았다. 어떻게 저런 멋진 말을 생각해 낼 수 있을까.
오래 지나지 않아 성주는 해외를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여행을 가고 싶어 하는 건지 물었다. 성주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었다. 성주는 유럽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나는 자유롭고 예술적인 유럽이 성주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성주는 유럽으로 떠났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성주를 바래다주는 길에 너스레를 떨었다.
"유럽 가서 멋진 이탈리아 오빠 데려와!"
성주는 정말 큰 소리로 웃었다.
"내가 이탈리아어를 먼저 배워볼게."
라고 말하며 성주는 출국장으로 걸어갔다. 뒤돌아 인사를 하는 성주가 나는 너무나 예뻤다. 마치 다 키운 딸을 시집보내듯 마음이 뭉클했다. 성주에게 마음으로 말했다. '성주야, 그동안 힘들었던 거 다 잊고 좋은 구경하고 좋은 사람들 만나고 와.'
한 달 정도 걸린다던 여행은 점점 길어졌다. 다행히도 성주는 돌아오는 비행기 편을 사지 않아서 늘어지는 여행을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다. 하루 걸러하던 영상통화로 성주가 어느 곳을 다니고 어떤 것들을 보고 즐기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치 내가 여행을 하듯 너무나 재밌었다. 낯선 얼굴이 가득 찬 거리와 시끌벅적한 거리가 가득한 사진들을 매일매일 아끼듯 하나하나 천천히 살펴보았다. 성주가 이 모든 것들을 보고 경험한다는 것 자체가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도 언젠가는 성주와 함께 전 세계를 누비는 상상을 했다. 나는 그게 멀지 않은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어디를 가면 좋을지 생각해 보고 뭘 하면 좋을까 상상했다. 생각만으로도 내가 멋진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성주는 어떤 펍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다고 했다. 그 사람은 성주와 비슷한 직업에 비슷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 사람은 영어를 쓴다고 했고 나는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는 성주가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성주는 그 사람과 자주 산책 했고 많은 얘기를 했다고 말했다. 나는 성주에게 좋은 친구가 생겨 기뻤다. 얽매이지 않은 관계에서 오는 자연스럽고 무게감 없는 대화가 인생에 주는 따듯함과 여유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 여유 속에서 성주는 다시 행복을 찾는 듯 보였다.
성주는 내게 물었다.
"내가 행복 해 질 수 있을까?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나는 답했다.
"성주야, 너는 너 자체로 행복이야. 너는 너만 찾으면 돼."
성주는 말했다.
"나는 나를 찾을 자신이 없어."
나는 물었다.
"왜?"
성주는 답했다.
"나를 잃은 지가 너무 오래돼서 그런가 봐."
나는 생각했다. 성주에게 위로가 필요한지 아니면 충고가 필요한지 아니면 그냥 성주의 말을 들어주고 묵묵히 있어주는 내가 필요한지.
나는 성주가 그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아무도 없어서 성주 스스로 행복한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주야 너는 혼자 있을 때 행복했던 적 있어?"
성주는 답했다.
"음… 없었던 거 같아."
나는 물었다.
"왜 인 것 같아?"
성주는 답했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외로워."
나는 마음이 아팠다.
"나는 네가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어."
성주는 말했다.
"나는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어떻게 하는지 알 필요 없어. 그냥 너의 주변에 모든 것들을 사랑하고 예뻐하고 아껴주면 돼. 그렇게 네가 사랑하는 것들로 너를 채워 가다 보면 너도 네가 사랑하는 네가 될 거야."
성주는 이해가 안 되는 눈으로 나를 봤다.
"이해가 안 돼도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돼. 안 되는 건 없어 성주야."
나는 사실 이 말들을 성주가 강요처럼 느낄까 무서웠다. 나의 응원이 시도조차 할 수 없는 성주에게 짐이 되지는 않을까 무서웠다.
성주는 말했다.
"수희야, 내가 그럴 자격이 있을까? 나는 혼자가 되는 게 무섭기만 해. 혼자 행복할 자신도 없고 ‘누가 날 사랑해주지 않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만 들어. 세상에 나를 사랑을 사랑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나는 혼자 살아가야 하는데 나는 그럴 자신이 없어."
성주가 이렇게 자신의 느낌을 얘기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다. 순수한 두려움인 듯했다.
생각했다. 자격이란 무엇인가 누가 주는 것인가. 스스러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인가. 너무도 당연한 것이 아닌가. 아…. 아니다. 나도 이 생각을 했던 때가 있었다. 성주를 처음 알게 되고 친구가 되어 가던 때 그때 나도 생각했다. ‘내가 성주의 친구가 되어도 될까? 이렇게 따듯하고 사랑스러운 네 곁에 어둡고 그늘진 내가 있어도 될까? 너에게 해가 되진 않을까 두렵다. ’ 내가 너의 따뜻함에 위로받으며 살다 보니 두려웠던 그 감정을 잊고 지냈나 보다. 그렇게 평안한 삶이 만연해지다 보니 그게 당연해졌나 보다.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나에게 평안한 삶을 선물해 준 너의 사랑이 이렇게 소중한 것을 너는 왜 모를까. 마음이 미어졌다.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럼 당연하지 네가 마음먹기에 달렸어!'라는 당연한 말을 쉽게 해주고 싶었다가. 말문이 막혔다. 성주가 겪은 여러 일들은 성주가 이 세상에 자신이 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굳은 신념을 만들어 버린 것 같았다. 나의 말이 어떻게 하면 너에게 다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성주야, 나는 너를 세상에서 제일 사랑해. 다이아몬드 보다도 소중하고 반짝이는 너를 곁에 두어서 나는 이 세상에 둘도 없는 행복한 사람이야. 그런 네가 너의 소중함을 모르고 막대하던 사람들과의 기억에 갇혀 너의 소중함을 잃어가는 걸 볼 수없어. 너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네가 어떠하단 이유로 너를 사랑하지 않아. 너를 사랑하는 거야. 너를 사랑해 주고 아껴주는 사람 앞에서 너의 소중함을 무시하지 마."
하지 못한 말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러지 마, 성주야. 네가 그 사람들에게 사랑과 관심을 구걸하지 않아도 너는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이야. 너에 그 의심이 사치스럽다고 생각이 들 만큼 너는 멋진 사람이야. 성주야, 너는 나에게 이 세상 최고의 행복이야. 나의 행복과 평안을 떼어다가 너에게 줄 수 있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줄텐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
내 마음에 있는 모든 말들을 꺼내 설득하고 싶었다.
내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는지 성주가 입을 떼었다.
"알겠어 ~ 걱정하지 마. 알지 네가 날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마워. 나 진짜…"
성주 눈에 눈물이 맺혔다. 알았다는 뜻일까. 감동일까. 말도 안 된다는 자기 비하일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뒀다. 어떻게 걱정이 안 될 수가 있을까.
성주는 이전에 만난 사람과 잘해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응원해 주었다. 나의 첫 질문은 그 사람이 어른스러운지 물었다. 나는 성주에게는 어른스럽고 성주를 잘 챙겨 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성주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소중한 너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생겼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