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같을 것이라는 착각

우정의 결말

by PNE




나는 내 삶으로 돌아왔다.

어느덧 만난 지 4년이 되어가는 남자친구가 결혼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이만큼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의 넓은 이해심과 나는 품어주는 넓은 마음씨가 나를 평안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는 나에게 나의 가족이 나에게 주기 못했던 믿음과 신뢰라는 이름의 사랑을 주었다.


내가 나를 돌보는 것이 당연했던 내 삶에 누군가가 들어와 나보다 나를 더 보살펴 주었다. 이런 이타적인 사랑이 나는 낯설었다. 그렇게 4년이 지난 지금은 나에게 만연한 이타적인 사랑이 나를 풍요롭게 했다. 그는 내가 나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내가 나의 삶에 주인공으로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고 내가 나에게 가혹할 때 그는 나를 멈춰 주었다. 나는 그와의 결혼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요란한 삶에 유일한 고요. 그가 나와 결혼을 한다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나는 당연히 제일 먼저 이 소식을 전하고 싶은 사람에게 연락했다. 정말 오랜만에 들뜬 마음이었다. 성주가 뭐라고 할까 궁금했다. 성주는 내가 첫 연애를 한 상대와 결혼까지 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했다. 성주는 오빠가 아주 'lucky'라고 했다. 나를 데려가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모든 행운을 다 얻은 것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통화가 너무 재밌었다. 나의 행복한 소식을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지 몰랐다. 6개월 뒤에 있을 예정인 나의 결혼식에 성주가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성주는 이탈리아에서의 삶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고 했다. 비행기표와 월세를 내기가 빠듯하다고 솔직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언제든 내가 이탈리아에 갈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돈이 빠듯해 걱정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잘 먹고는 다니는지, 생필품을 사는데 돈이 부족하지 않은지 물었다. 돈을 좀 빌려 줄까라는 제안도 했었다. 성주는 한사코 거절했다.


다음 달 쯤인가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성주의 인스타 그램에 명품가방이 올라왔다. 누구나 알 만한 브랜드에 TV에서 많이 본 모양에 남자 가방이었다. 이런 글과 함께.

'우리의 1 주년을 기념하며, 내 사랑 몬티에게 마음을 담아'

한국 왕복 비행기에 3배 정도는 훌쩍 넘는 그 가방을 보고 나는 이해했다. 성주의 빠듯한 생활비는 나를 위해 쓰일 수는 없지만 만난 지 얼마 안 된 남자친구에게는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돈이라는 것을.

나는 더 이상 성주의 생활고를 걱정하지 않았다. 나의 걱정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생각했다. 성주가 나의 결혼식에 오지 못했던 이유는 남자친구에서 비롯된 생활고였다. 나는 이해했다. 그 사람이 성주에게 양질에 사랑을 주길 내가 나의 약혼자에게 받은 평안과 믿음의 사랑을 주길 기도했다.




나는 바보처럼 우정이 식어 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저 서운한 마음을 누르는 연습만 했다. 내 안에 있는 큰 식지 않는 마음이 모두에게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해본 것이라고는 끝없이 믿음을 주는 것. 그것을 열심히 했다. 관계가, 마음이 변해 가는 것을 알면서도 이전과 같을 것이라고 나를 다독이며 믿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