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정의 결말

우정의 결말

by PNE





이후에도 우리는 많은 연락을 했다. 성주에게는 서운한 마음을 하나도 내 비치지 않았다. 혹여나 마음 불편해할까 단어를 골라 대화를 했다. 우리는 나의 결혼식에 대한 얘기를 많이 했다. 결혼식장은 어디로 골랐는지 드레스는 뭘 입을 건지 여느 친구처럼 대화했다. 성주는 옆에서 같이 드레스를 골라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다. 나는 남편 될 사람이 있는데 뭐가 미안하냐고 얘기했다.


나는 결혼식 준비에 바빴고 성주도 바쁜지 한참 연락이 없었다. 나는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았다. 일도 바쁜 시기였고 할머니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 바람에 정신없는 몇 달을 보냈다. 결혼식을 1주일 남겨두고 나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노트북을 두드리는 나의 손은 바빴고 나는 처리해야 할 일들이 빼곡히 적힌 내 수첩에 목록을 하나씩 지우며 처리하고 있었다.


갑자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수희야."

내가 아는 아주 익숙한 목소리였다.

"설마! 설마 너야? 진짜로?"

내가 소리쳤다.

"응! 나야 진짜 성주!"

성주가 말했다.

나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성주가 내 눈앞에 있다니 믿을 수 없었다.


그동안 속으로 했던 서운한 감정들이 스쳐 지나가면서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성주는 몰래 놀라게 해 주려고 얘기를 안 한 건데 내가 속 좁게 생각했구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우정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다잡고 성주를 봤다. 자세히 보니 성주는 수척한 얼굴로 내 앞에 앉아 있었다.

나는 곧바로 물었다.

"왜 얼굴이 반쪽이야? 유럽 생활이 힘들었어?"

성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벅찬 감정으로 물었다.

"몬티랑 같이 왔어? 나도 한번 보고 싶다. 설마 내 결혼식 때문에 온 거야? 못 온다며!"

성주는 멍하니 테이블을 보다, 나를 보기를 반복했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물었다.

"헤어졌어? 그래서 온 거야?"

성주는 그렇다고 했다. 나는 기가 막혔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성주의 마음도 좋지는 않겠지만 내 마음은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상태로 안 좋았다.

나는 복잡한 마음을 다잡았다. 어떠한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떠한 것도 묻고 싶지 않았다.

한참을 우두커니 서로의 곁에 앉아 있었다. 방금 헤어진 연인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앉아 있었다. 나는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성주에게 커피 한잔 할 건지 물었다. 성주는 그러겠다고 했다.

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고는 계산대 근처에서 여러 생각을 했다. 마음을 다 잡았다. 한참이 흐르자 성주가 괜찮은 건지 궁금했다. 커피를 받아 자리로 돌아왔다. 성주에게 물었다.

"괜찮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성주는 답했다.

"몬티가 다른 여자가 생겼더라고. 그 사람은 정말 정말 안 변하고 나만 봐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알았어? 몬티가 그래?"

"몬티랑 저녁을 해 먹으려고 장을 봐서 몬티네 집으로 갔어. 놀라게 해 주고 깊어서 간다고 얘기 안 하고 갔어. 그런데 집에 모르는 신발이 있는 거야 그래서 손님이 왔나 하고 집에 들어가 보니까 그 여자가 몬티랑 방에서 나오더라고 거의 나체였고. 더할 것 없는 바람이지 뭐…"

"아예 들어온 거야?"나는 물었다.

"응." 성주는 답했다.

내가 궁금한 건 사실 몬티랑 헤어졌는데 왜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 이었다. 마치 성주가 유럽에 있었던 오직 한 가지의 이유가 몬티였던 것처럼. 나는 물었다.

"괜찮아? 안 괜찮겠지만 뭘 물어야 할지 모르겠어."

성주는 말했다.

"더 이상 뭔가에 의욕이 들지 않아. 사실 정말 죽고 싶은 마음뿐이야. 나는 이사랑은 진짜일 거라고 생각했거든. 지금까지의 사랑과는 다르게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고 그 어떤 것을 바라고 주지 않는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그런 사랑이 나를 배신하니까. 나는 더 이상 살 이유가 없이 느껴져. 알아, 나도 이런 내가 너무 한심하다는 것도, 근데 그냥 내가 이런 사람이야. 너는 모르겠지, 너는 모든 것을 잘하고, 겁도 없고, 원하는 건 다 이루며 살아왔고, 니 옆엔 너만 바라보고 너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너는 관심도 없겠지 내가 왜 이렇게 밖에 살 수 없는지,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을 거야. 근데 더 이상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하는 것마다 실패하고 심지어 근성도 없어서 뭔가 하나를 오래 하지도 못하고 남들이 하는 실없는 소리에 실실 웃으며 착한 척하는 것 말고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이렇게 평생을 살아서 이제는 아무 경력 없이 서른이 넘어서 이제는 누군가 얘기를 할 때마다 내가 얼마나 위축이 되는 줄 알아? 저 사람은 나를 얼마나 무시할까? 이 나이가 되도록 할 줄 아는 것 없이 나이만 먹었다고 생각할까? 얼마나 나를 한심하게 바라볼까? 이런 생각만 든다고. 근데 그런 표현도 할 줄 몰라 나는. 너도 이런 내가 한심하다고 생각하겠지. 그나마 해외에 살면서 좋았던 거는 사람들은 내가 몇 살인지 무슨 일을 하는지 보다 나 그대로를 사랑해 준다는 거야. 내가 어떤 마음씨를 지녔는지 더 중요시한다는 거야. 나는 그게 좋았어. 그래서 거기에 살고 싶었던 것뿐이야. 그러다 나랑 잘 맞는 사람을 만났을 뿐이라고. 그게 잘 못된 거 아니잖아. 나 나름대로 할 수 있는 걸 하며 산 것뿐이라고. 내가 이 이상 도대체 뭘 해야 하냐고."

성주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을 토해내고 울기 시작했다. 내가 알던 성주와는 확실히 다른 사람이었다.

나도 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했다는 게 나를 너무 슬프게 했다. 나의 사랑이, 나의 인생에서 자랑스럽던 단 한 가지, 우정이 나를 파렴치한으로 만드는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절대로 그렇게 생각해 본 적 없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도 성주의 아름답고 따듯한 마음씨만을 바라봤는데, 성주가 좋아했던 편안함을 느꼈던 해외에서 만난 사람들이 주었던 그 관심과 같은 그 마음을 나도 성주에게 주었는데. 왜 내 마음은 성주에게 닿지 못하고 이렇게 왜곡당했을까. 내가 성주의 삶에 비교 대상이 된 게 슬펐다. 나의 존재가 성주에게 도움이 될 수 없고 성주를 더 작게 만드는 것 같아서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어떤 위로도 성주를 더 작게 만들까 봐 침묵을 선택했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성주야, 미안해. 내가 너에게 너무 부족한 사람이라 네 마음을 살펴줄 수 없었구나. 나는 내가 했던 모든 것들이 나의 최선이었어. 나는 내가 웃는 것보다 네가 웃는 게 더 행복했고. 네가 좋은 사람을 만나 네가 원하는 사랑을 받고 살면서 가족을 꾸리는 것이 나의 행복이라 생각하며 응원했어. 네가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너에게 어려움을 극복하고 견뎌낼 수 있는 마음이 생기길 간절히 기도했고 네가 어떤 시련을 겪고 힘들어 무너지더라도 네가 그것을 겪는 모든 순간에 그 옆에 단단히 너의 곁을 지킬 거라고 다짐했어. 아마 내가 너의 곁에 있어주지 않아서 네가 그 외로움들을 못 견뎌 냈다면 미안해. 내 너를 위하는 마음보다 너의 외로움이 훨씬 더 커서 내 마음이 큰 힘이 되지 않았다면 내가 미안해. 너는 나에게 정말 큰 위로였고 안식처였고 나의 유일한 행복이었는데 나는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지 못했구나. 내가 너무 보잘것없다. 그렇더라도 내가 너에게 너무나 별게 아닌 존재라고 해도 내가 너에게 어떠한 위로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나는 너를 응원해. 네가 힘든 일이 없이 언제나 행복하더라도 나는 나의 평안 보다 너의 그 영원한 행복이 끝내 깨지질 않길 더 먼저 기도할 거야. 내가 그 어떤 신을 믿지 않더라도 너를 보호해 주고 행복을 가져다주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을 믿을 거야.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믿어줘. 어떠한 보상도 조건도 없이 너를 아끼고 위했던 내 사랑을 의심하지 말아 줘. 그 믿음을, 더 깊은 사랑을 알려주지 못해서 미안해.'


우리는 서로를 앞에 두고 오래 울었다. 나는 이 관계가 끝나 가는 것을 느꼈다. 내가 성주에게 더 이상 어떤 것도 해 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어떠한 위로나 응원이 성주를 더 힘들게 할 것만 같았다. 내가 할 수 있는 말을 했다.

"성주야, 그동안 너무 고마웠어. 너는 나에게 정말 좋은 친구였어 말로 표현 못할 만큼. 나는 너에게 그런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한 것 같다. 미안해. 너는 좋은 사람이니까, 네가 원하는 정말 좋은 사람 만날 거야. 너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

성주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봤다.

나는 말을 덧 붙였다.

"성주야. 한번 안아 보자."

나는 성주를 안았다.

"성주야, 사랑해, 행복해."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