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의 결말에서의 사랑은 사실 여러 형태에 사랑이다.
내가 떠올렸던 것은 모녀의 사랑이었다. 자식을 낳아 기르면서 자식이 누군가를 만나고 독립해 가면서 생각했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며 속상한 마음이 들고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일방적이고 무한한 사랑을 주는 모녀의 사랑을 얘기하고 싶었다. 나의 마음이 투영된 글이다. 나는 아주 깊은 마음으로 엄마를 사랑한다고 자주 생각한다. '내가 전생에 엄마의 엄마이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가 못다 한 사랑을 엄마에게 주려고 이렇게 바꿔 태어나서도 엄마를 깊이 사랑하는 게 아닐까.' 중간에 성주에게 '다이아 같은 존재'라는 생각을 하는데 그것 또한 내가 중학교 때 엄마에게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했던 생각이다. '우리 다이아 같이 소중한 엄마가, 어디에 상처라도 날까 소중한 우리 엄마가, 힘들지 않고 지내야 할 텐데.'라고 말이다. 아주 어린 나이에도 철이 들었던 나는 아빠가 돌아가시면서 엄마에 대한 마음이 깊어졌다. 엄마에 생일날이나 새해에 항상 이런 편지를 썼다. '엄마의 행복이 나의 행복인 거 알지? 엄마가 행복해야 내가 행복한 거야.' 무뚝뚝한 엄마 밑에서 자란 자식에 투정에서 비롯한 억지 사랑인지, 정말 전생에 인연으로 이어진 깊은 사랑인지 알 수 없으나 나는 엄마를 깊은 마음으로 사랑한다.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에게 하고 싶었던 말들을 모아, 언제나 외로워 보이는 엄마에게 얘기하고 싶었다. 엄마를 아무 조건 없이 사랑하고 아끼는 사람이 있다고, 외로운 눈동자와 쓸쓸한 등을 가득 안아 그 외로움을 나눠 주고 싶다고. 이 글이 나의 사랑을 담아 엄마에게 닿기를 기대한다.
P.S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소중한 단짝 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기억이 있는데 그 속에 단짝친구들이 다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왜 그렇게 단짝 친구들은 전학을 가는지, 어린 마음에 친해지면 친구들이 전학을 가니 아무랑도 친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적도 있었다. 마음을 주지 않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 나는 다짐을 아주 쉽게 어기고 좋은 친구들을 만났다. 수능 공부가 너무 힘들었어서 고등학교 시절이 다시는 그립지 않을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 또한 그립다. 그 시절을 그립게 해 준 건 당연히도 친했던 친구들이다. 대학에 가면, 사회생활을 하면 친구 사귀기 어렵다는 말을 믿지 않았는데. 정말 어렵다. 특히나 결혼을 하거나 아기가 생기면 연락을 한다거나 혹은 공치사를 챙기는 것도 사치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 때는 정말 어렵구나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사람들은 순수한 사랑을 해본 적이 있냐고 많이들 묻는다. 나는 순수한 우정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묻고 싶다. 순수한 우정은 영원히 끝나지도 영원히 잊히지 않는다. 끝나더라도 함께한 사진을 버릴 필요도 없고 자주 함께 가던 장소들을 굳이 돌아갈 이유도 없다. 나의 지난 어린 시절의 아름다움과 함께 나이 들어가는 기억을 소중하게 아끼고 아껴 꺼내고 싶을 때 언제나 꺼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아름다운 변하지 않는 사랑을 우정이라는 단어 말고 어떤 말로 부를 수 있을까?
P.S +1
어떤 사랑을 당신은 우정이라고 부를 수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