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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실비 May 13. 2022

두유노 김치의 성공

한식을 좋아하게 된 이유

“한국인들은 김치만 따로 보관하는 냉장고가 있다는 게 사실이야?”


어느 날 어학원에서 음식문화를 테마로 이야기를 나누다가 훅 질문이 들어왔다. 


나는 어안이 벙벙하다가, 

아! 김치냉장고! 하고 깨닫고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김치냉장고는 그냥 항상 집에 있는 사물이었기에, 김치를 따로 보관하는, 김치를 위한 특별한 냉장고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다른 외국인들한테는 그게 사실이며 꽤나 일반적이라는 것이 놀라운 듯했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람들의 가정에는 모두 기본적으로 냉장고가 두 개 있고, 하나는 김치 전용이라고 설명하고 나니 김치와 한식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주변에 괜찮은 한식당이 어디 있는지, 무슨 한식을 좋아하는지(비빔밥이 절대적이었다), 추천할만한 한식이 뭐가 있는지...


독일로 유학을 결심하기 전, 여행으로 왔을 때에도 김치를 좋아한다는 사람을 꽤나 보긴 했었다.  


처음에는 놀리는 건가? 라고 생각했다.  

그다음엔 내가 한국인이라 그냥 하는 말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으나 직접 김치를 담가먹는다는 독일인과 유럽인 친구들 몇 명을 보고 나서는 비로소 김치의 영향력을 실감하게 되었다. 

“두유노 김치?” 가 정말로 성공한 것이다. 



사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김치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아니, 싫어하는 편이었다. 

칼국수집에서 나오는 스타일의 겉절이 김치는 좋아했으나, 집에서까지 매일같이 김치를 먹는 게 너무 질렸다. 어릴 때 먹을게 김치밖에 없다고 반찬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항상 “반찬이 이렇게 많은데 먹을게 없다니!” 하고 대꾸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보는 건 김치 1, 김치 2, 김치 3, 김치 4... 김치들의 향연이었다. 

“한국인이 김치를 먹어야지!”  타박하는 가족들에게 언제나 “한국인이 김치를 먹어야 한다는 건 세뇌에 편견이야!”라고 외치곤 했다. 


그놈의 김치,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되는데 내가 한국인이니까 무조건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던 내가, 독일에 와서 김치와 한식 없이는 못 사는 몸이 되어버렸다.


사 먹기만 하던 김치, 

어쩌다 보니 외국인 친구와 같이 겉절이를 담가먹기도 하고(심지어 그 친구는 본인의 레시피가 있었다), 한인마트에서 산 김치를 맛있게 익혀먹을 줄도 알게 되었다. 아무래도 아직 외국인들한텐 김치에 호불호가 심하게 갈린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 훠궈가 유행했던 것처럼 무슨 새로운 힙스터스러운 음식으로 등장한 느낌이었다. 


내 변화는 김치를 좋아하게 된 것 뿐이 아니다. 전반적으로 한식을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자취할 때는 무조건 대형마트에서 반 조리된 것을 사서 데워 먹거나 라면이나 햄버거, 혹은 밖에서 사 먹는 게 일상이었기에 요리를 할 줄 몰랐다. 독일에 온 이후로 생활비를 아끼기 위해서 요리를 시작해야 했고 어느덧 요리를 즐기게 되었다. 


내가 요리에 본격적으로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 것은 친구들을 초대해서 같이 요리 하거나 대접해주는 문화에 익숙해지면서부터 였다. 대부분의 20대 학생들은 WG생활을 하거나 혼자 살고 있고, 한국처럼 밖에서 만나 맛집 탐방을 하는 것보다는 집에서 뭔가를 같이 하는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독일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나도 근사한 한국음식을 친구들에게 대접하고 싶어 진 것이다. 



헬로프레쉬 레시피로 만든 음식들


처음 몇 달은, ‘나도 여기에 왔으니 독일과 유럽의 음식문화를 경험해 볼까?’ 하고 이것저것  유럽식 음식을 시도해보려 했었다. 헬로프레쉬라는 음식 레시피+재료 구독 서비스를 체험해보기도 했고, 마트 전단지에 나오는 레시피를 시도해보기도 했으나, 대부분은 그냥 간단하게 감자요리나 파스타를 해 먹었다. 매운맛이 전혀 없는 음식을 먹다 보니 맵고 신맛이 나는 자극적인 맛, 김치가 그리워졌다. 약간의 허브와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는 음식들이 어딘지 밍밍하고 느끼했다. 무엇보다도... 식사를 해도 식사를 한 것 같지가 않았다. 내가 이렇게나 한국인이었다니. 

나는 밥을 먹어야 했다. 김치를 담가먹었던 것도 그 시기였고, 필살기 요리 간단한 것 하나는 만들어보자, 하고 이것저것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요리를 직접 하다 보니 깨닫는 게 많아졌다. 떡볶이는 시중에 소스까지 같이 팩으로 나온 것보다 직접 만드는 게 더 맛있고, 순두부찌개에 소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받아온 방앗간 고춧가루가 소중해졌고, 콩나물국을 하면 국물보다 콩나물을 더 많이 건져먹게 되었고, 그리고 어릴적 소풍갈때마다 엄마가 새벽같이 일어나 준비해준 김밥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인지도 알게 되었다. 반전인것은 한국인들에게는 추억의 음식, 친숙한 음식인 김밥이 독일에서 태어난 한국아기들한테는 밥의 식감이 익숙하지 않아 불호인 경우가 많다는 것. 


내가 한국요리를 자주 해 먹자 같이 사는 플랫메이트들도 조금씩 한국음식을 맛보게 되었다. 소금과 후추, 허브 외의 다른 조미료를 쓰지 않는 포르투갈인 플랫메이트는 어묵이 많이 들어간 떡볶이와 콩나물국을 좋아했고(멸치로 육수 낼 때 신기해했다), 특히 소금간이 안된 천연 구이김을 엄청 좋아했다. 친구들을 초대해 김밥을 같이 말면 아직 많이 친하지 않은 사이라도 금세 분위기를 풀 수 있는 재밌는 활동이 되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한식을 해서 친구들을 초대해 대접했는데 비빔밥이 특히나 인기가 많았다. 비건이거나 채식주의자인 친구들에게 안성맞춤인 요리였다. 계란과 고기를 빼고 두부를 볶아서 넣으면 되니까. 



독일인 플랫메이트의 쇼핑 결과

어느 날은 독일인 플랫메이트를 데리고 한인마트에 다녀왔는데 그 녀석의 장바구니 크기가 심상치 않았다. 식탁 위에 사 온 물건들을 쏟아놓은걸 보고서 나와 다른 플랫메이트는 동시에 웃음을 터트렸다. 과자는 그렇다 치고 쌈장까지 야무지게 샀을 줄이야. 특히 자갈치 과자는 봉지가 마음에 든다며, 조심스럽게 뜯는 걸 봤는데, 나중에 보니 액자에 걸려있었다.(그렇게 보니 나름대로 예뻤다)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프랑크푸르트의 한인마트는 없는 게 거의 없었다. 거의 이마트에 온 느낌이었다. 대창이나, 간장게장, 심지어 한국식 크림빵도 팔고 있었다. 덕분에 7개월간 프랑크푸르트로 이사했을 때는 깻잎을 실컷 사 먹을 수 있었다. 유럽인들은 깻잎을 먹지 않기 때문에 베를린에서 깻잎을 먹는 친구들은 직접 씨앗을 사서 집에서 키워먹었다. 듣기로는 한국에 갔다가 몰래 깻잎 씨앗을 밀수해오는 사람도 꽤나 있다고 한다.  나는 깻잎 씨앗은 구하지 못했고 현재 부추를 키우고 있다... 잘 키워서 부추전을 해 먹으려고 했는데 화분에 키우니 양이 너무 적어서 그냥 데코레이션처럼 쓰고 있다.. 


깻잎이라니, 한국에서는 한 번도 살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요리도 안 했고 음식점 가면 그냥 나오니까. 전 종류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나한테는 명절 음식 같은 류였다. 김치든 한식이든, 뭐든 간에 옆에 있을 땐 모르지만  없으면 아쉬워지나 보다. 


독일인 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자, 아시아 국가에 얼마간 거주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독일인들은 돌아올 때 이전보다 훨씬 더 독일을 사랑하게 된다는 얘기를 했다. 해외나오면 애국자 된다는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닌가보다. 

나 역시도 그렇다. 독일에 오고 한국의 모든 것들이 더 좋아 보이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어느 정도 멀리서 보니 한국의 장단점이 더 또렷하게 보이고, 오히려 한국문화의 어떤 점이 매력적인지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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