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이 버킷리스트였던 나는 연구년이라는 귀한 시간을 얻자마자 산티아고 순례길을 계획했다.
남편은 산티아고 순례길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왜 가려고 하는지, 꼭 가야만 하는지 묻지 않았다. 다만 낯선 외국 땅에서 800km나 되는 그 길을 어떻게 걸으려고 하는지 걱정할 뿐이었다.
"그럼 같이 갈까?"
마침 이직을 고민하던 남편에게 회사 그만두고 같이 가자고 꼬셨다. 남편과 함께 간다고 하면 가족들에게도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남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였다. 가까이 사는 시누이에게 고민을 말했더니 초딩과 고딩인 우리 아이들을 돌봐 줄테니 걱정말고 둘이 다녀오라고 했다. 그녀의 어깨에 날개가 퍼득이고 있었다. 나는 바로 비행기표 두 장을 끊었다. 남편은 회사를 퇴사했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했다.
우리 부부의 여행은 늘 내가 계획한다. 어디로 가는지, 숙소는 어떤 곳인지, 며칠 동안 가는지 큰 관심이 없다. 여행 전에 이런저런 계획들을 얘기해 보지만 남편은 늘 처음 듣는 얘기처럼 반응한다. 아예 출발하기 위해 운전대 잡으면 목적지를 알려주겠다고 체념할 정도다. 워낙 걱정도 스트레스도 없고, 감정의 변화도 별로 없어 느긋하다 못해 천하태평인 남편이지만, 낯선 땅의 언어적 장벽, 오랜 여정에 대한 긴장감으로 많은 준비를 했다. 보통은 여행지에 대한 정보나 교통편과 노선, 기초 언어 등을 준비하겠지만 남편은 오로지 본인이 필요한 물건만 준비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은 배낭을 메고 걸어야 한다. 남편은 60L, 나는 40L의 배낭을 준비했다. 배낭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준비물은 최소화해야 한다. 침낭과 한두 벌의 옷과 세면도구, 비상약 정도다. 그러나 남편의 준비물은 남들과 달랐다. 비상약품 외에 어마어마한 약품이 필요했다. 오래전 화상으로 인한 다리의 깊은 상처가 있다. 이삼일에 한 번 정도는 상처 부위를 치료해야만 했다. 한 달 동안 사용할 거즈와 붕대, 약품들이 한 짐이었다. 남들에게는 필요하지 않은 짐으로 배낭은 무겁기만 한데, 남편의 엉뚱한 발상으로 짐은 더 무거워졌다. 순례길 초반에 버린 물건도 있고, 순례길 내내 짐이 된 물건도 있었다.
순례길 동안 매일 빨래를 하고 말려야 하니 필요하다며 출발하는 날 잡화점에 들려 세탁비누와 빨랫줄을 샀다. 3m가 넘어 둥근 뭉치로 되어 있는 빨랫줄과 커다란 세탁비누로 얼마나 배낭이 더 무거웠겠는가. 빨랫줄과 세탁비누는 써보지도 않고 이틀 만에 과감히 버렸다. 세탁비누 대신 올인원 샴푸로 빨래를 했고, 빨랫줄 대신 침대 난간에 널어 말렸다.
버리지 못하고 순례길 내내 짐이 된 물건도 있었다. 끝이 뾰족한 고리로 되어 있는 암벽등반 지팡이다. 등산스틱도 아닌 암벽등반용을 어디서 구했는지, 왜 가져가는지 묻자 만약에 위험한 상황이 생기거나 괴한을 만날 경우를 대비한 호신용이라고 했다. 끝은 뾰족하고 손잡이는 갈고리 모양인 암벽등반 지팡이를 배낭에 꽂고 가는 덩치 큰 이 남자가 더 무섭게 보이지 않겠는가? 순례길 걷는 동안 그 지팡이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아내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만 부끄러웠을 뿐 암벽등반 지팡이를 사용할 그 만약의 상황은 순례길 내내 한 번도 없었다. 순례길 막바지에 들어가 더 이상 위험한 상황은 없을 거라 생각했나보다. 한 카페의 야외 테이블에서 잠시 쉬면서 음료를 마시고 다시 출발하면서 그 지팡이를 의자 옆에 두고 출발했다. 아니 사실 버린 거였다. 그런데 그날의 목적지 알베르게에 도착하여 쉬고 있는데 뒤를 따라오던 K언니가 그 지팡이를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머물렀던 카페에 들렀던 언니는 단번에 그 지팡이를 알아보고 남편이 잃어버린 지팡이인 줄 알고 당당히 가져와서 건네는 것이었다. 결국 그 지팡이는 남편의 배낭에 꽂혀 순례길 끝까지 호신용이 아닌 짐이 되어 함께 걸었다.
우리는 필요 이상의 물건을 가지고 살아간다. 넘쳐나는 물건 속에서도 더 가지려는 욕심이 한없는 결핍감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평소 과시욕도 욕심도 없는 남편이지만 걱정이라는 무게로 준비한 남들과 다른 준비물은 결국은 짐이 되었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는 욕심도 걱정도 내려놓게 된다. 최소한의 물건과 대부분은 간단한 식사로 해결하는 하루하루가 군더더기 없이 깨끗하고 단출하다. 그 길에 우리 삶에 생각보다 많은 것이 필요치 않다는 것을 경험하고 느끼며,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순간에 충실하게 된다.
그 지팡이가 마지막에 중요한 임무를 하게 된 사건이 생겼다.
순례길의 마지막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에 도착하여 순례길 인증서를 받고, 향로 미사를 드린 후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에서 90km 정도 떨어진 피니스테라로 향했다. 중세 유럽 사람들이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했다는 피니스테라는 순례자들이 진정한 마지막 마침표를 찍기 위해 90km를 더 걸어오기도 하고, 자신이 신고 온 신발을 태우며 여정을 마무리 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 또한 세상의 끝이자 새로운 바다의 시작으로 출렁이는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신발을 태우는 대신 25일 동안 함께 해 온 신발과 배낭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했다. 바닷가 언덕길, 건물터만 남겨진 석축 난간에 신발을 벗어서 배낭과 함께 올려 두었다. 반대편은 2m 정도의 풀숲 벼랑이었다. 사진을 막 찍고 신발을 다시 신으려는 순간, 나의 배낭이 바람에 중심을 잃고 벼랑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배낭에는 짐들뿐만 아니라 여권도 있는데 어떡하지? 풀숲 벼랑으로 내려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때 남편은 배낭끈 사이에서 25일 동안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던 암벽등반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지팡이를 잡고 손을 길게 뻗어 고리로 배낭을 낚으려고 애를 썼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혹시 남편이 벼랑으로 고꾸라질라 뒤에서 허리춤을 잡고 버티었다. 드디어 배낭끈 부분이 고리에 매달려 끌려 올라왔다. 비로소 암벽등반 지팡이가 빛을 발한 것이다.
중요한 임무를 마친 지팡이는 또 다른 어느 순례자의 배낭을 끌어올릴 수 있길 바라면서 그곳에 두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