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남편과 J 아내

by 작은 의미

산티아고 순례길 중 프랑스 길은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시작하여 산티아고 콤포스텔라까지 800km 가까이 된다. 이 길을 완주하기 위해서는 평균적으로 하루에 20km에서 25km씩, 35일 정도를 걷는다. 그러나 우리는 25일의 시간만이 허락되었다. 결국 하루에 32km를 걷던지, 중간에 점프를 해야 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하루에 32km씩 걷는 것은 무리다. 결국 중간에 200km 정도는 점핑을 하기로 했다. 어느 구간을 점핑할 것인가? 보통 메세타 지역을 걷지 않고 점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끝도 없는 밀밭 길, 고독의 길이라고 하는 메세타 구간은 꼭 걷고 싶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관련 책자, 블로그, 온라인 카페에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대도시를 들고 나는 구간은 표식을 못 찾아 헤매는 경우도 많고 자동차길이다 보니 지루하다는 글도 많다고 하니, 산티아고 순례길 중 대도시인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부근에서 점핑해야겠다는 계획을 했다.




순례길 첫날부터 일행이 생겼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준비하면서 카미노 카페의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H 언니와 출발 일정이 같아서 생장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생장에 먼저 도착해 있던 H 언니는 그곳에서 만난 두 명의 또 다른 일행을 소개해 주었고 다음날 우리는 네 명이 한 팀처럼 함께 걷기 시작했다. 세 명의 언니들은 모두 영어가 유창했다. 남편은 언니들과 함께 걸으며 외롭지도 않고 덕분에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으니 한결 안심하는 눈치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여 4일을 같이 걷고 난 후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의 공립 알베르게에서 저녁을 해 먹으며 다음 날부터는 순례길에 더 집중하기 위해 따로 걷기로 했다. 각자 걷기로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푸엔테 라 레이나(Puente la Reina)에서 시작하여 그날의 마무리는 22km 떨어진 에스텔라(Estella)에서 한다. H 언니와 Y 언니도 그날의 목적지는 에스텔라(Estella)라고 했다. 나의 계획은 에스텔라(Estella)를 지나 4km 정도라도 더 걸어간 후 다음 날에 첫 번째 대도시인 로그로뇨까지 점핑하고자 계획했었다. 아침에 일어나 H 언니는 서둘러 먼저 출발했다. 대부분 순례자들의 목적지보다 더 가야 하니 나의 마음도 분주했다. 우리 부부도 바로 출발해야 하는데 남편은 어제저녁 먹고 남은 밥으로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하자며 늦장을 부렸다. 나의 계획, 아니 우리의 계획을 말해주며 서두르라고 재촉하자 남편은 왜 꼭 그렇게 가야 하냐며 짜증을 냈다. 안 그래도 그는 언니들과 가는 날까지 그냥 같이 가면 안 되냐, 왜 꼭 끝까지 걸어야 하느냐, 계획대로 꼭 해야 하냐며 불만이었다. 누룽지를 끊여서 야무지게 먹는 남편이 한없이 못마땅하지만 싸울 수도 없으니 꾹 참고 기다렸다가 출발했다. 이날 마을 끝의 오래된 예쁜 다리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는 마음으로는 참는다고 했지만 얼굴에는 참지 못함으로 일그러진 내 모습이 그대로 묻어 있었다. 냉랭한 분위기로 예쁜 마을들을 지나며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2시가 넘어 에스텔라(Estella)를 지나가면서는 그곳에 머물고 싶어 하는 남편의 발걸음이 더 무겁고 느려졌다.

나는 4km만 더 가면 공짜 와인을 먹을 수 있다고 꼬셨다. 이라체(Irache) 수도원 근처의 보데가스 이라체라는 와인 양조장에서는 순례자들에게 무료로 와인을 제공했다.

그 역사는 1891년부터 시작했다고 하니 130년이 넘는데 매일 하루 100L의 와인을 제공한다고 한다. 담벼락에 달린 두 개의 수도꼭지 중 왼쪽에서는 와인이, 오른쪽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진다. 술을 좋아하는 남편에게 공짜 와인은 달콤한 유혹이 아닐 수 없다. 무거운 걸음으로 이라체(Irache)까지 걸어서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 앞에 도착했다. 이미 4시가 가까워졌으니 그날의 와인이 동이 났으면 어떻게 하나 슬그머니 걱정이 되었지만 다행히 수도꼭지를 틀자 붉은 와인이 나왔다. 작은 생수병에 와인을 담아 먹으며 남편의 얼굴로 조금씩 여유를 찾아갔다. 오아시스에서 만난 샘물 같았다.




무료 와인을 먹고 다시 출발하여 근처의 알베르게를 찾는데 보이지 않았다. 갈림길에서 짧은 코스를 선택하여 2km 정도 더 걸은 것 같은데 알베르게가 보이지 않고 화살표도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잃은 건 아닌지 불안함이 몰려왔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알베르게가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우리가 지나온 곳, 수도원 근처에 있다는 것이다. 순례길에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는 것은 심리적인 거리가 배가되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었다. 우리가 난감해하자 앞쪽으로 손가락을 가리키며 “깜삥, 깜핑” 이라고 하는 것이다. 깜삥? 깜핑? 혹시 캠핑? 일단 한 번 가보자 싶어 걸어가 보았다. 큰 길이 나오고 길 건너에 지방 외곽의 어느 유원지 같은 곳이 보였다. 남편을 기다리라고 하고 달려가 보았다. 캠핑장이 맞았다. 방갈로 형태의 숙소가 하루 28유로였다. 이라체수도원 근처의 알베르게는 체육관에 침구를 제공하는 형태로 되어 있어 매우 낙후되었다고 들었는데, 길을 잃고 캠핑장으로 오게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캠핑장 숙소를 배정받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두 개의 싱글 침대에 각자 누웠다. 순례길 이후 처음으로 우리 둘만의 편안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계획은 주어진 여건 안에서 실패나 오류를 최소화하며 경험과 기회의 길을 열어준다. 그러나 모든 것은 계획대로 되지만은 않는다. 계획하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는 올 것이며, 그 계획이 수정되어 가며 한 발 또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날 이후 우리의 계획은 조금씩 수정되면서 600km를 걸어 산티아고 콤포스텔라 성당에 계획했던 날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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