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같이 저녁 해 먹을래요?

산티아고 순례길

by 작은 의미

함께 걷던 일행들과 헤어져 각자 걷는다는 것에 대한 불안함과 허전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처음으로 일행들과 헤어져 우리 부부만이 깜핑에서 잔 다음 날 아침, 택시를 타고 로스 아르코스까지 이동 후 버스를 타고 로그로뇨까지 가기로 했다. 로그로뇨로 가는 버스 시간이 가까워오자 배낭을 든 순례자들이 여러 명 모였다. 순례길을 온전히 다 걷지 못하고 중간에 버스로 이동한다는 것이 조금은 떳떳하지 못했는데 버스의 순례자들을 보니 동질감을 느끼며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버스가 달리기 시작하고 창밖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순례자가 보이자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버스는 비아나를 지나 로그로뇨에 도착했다. 28km의 거리로 하루 꼬박 걸어야 하는 거리를 1시간도 안 걸려 도착했다. 로그로뇨의 버스 터미널은 우리나라 지방 도시의 버스 터미널과 흡사했다.


“버스 탄 김에 더 가면 안 되나?”

“안돼. 오늘의 계획은 여기까지야. 여기부터는 걸어야 해.”


남편은 버스에서 내려 끙 소리를 내며 짐칸에서 배낭을 꺼냈다.

대도시의 버스터미널에서 도심을 벗어나기 위해 여러 번 길을 물어야 했다. 까미노를 알리는 표식이 새겨진 다리를 건너 한적한 공원의 사이프러스 가로수 길이 나오자 비로소 안도했다. 순례자를 위해 양쪽으로 군병같이 서 있는 사이프러스 가로수 길을 걷고 있는데 뒤에서 “안녕하세요?” 한국말이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한국인 남자였다. 그는 우리보다 하루 먼저 시작해서 걷고 있다며 짧은 인사를 주고받더니 쌩~하고 앞질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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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km 걸어 나바라떼에 도착했다. 로그로뇨부터 시작한 덕분에 알베르게 오픈 시간보다 일찍 도착했다. 알베르게 앞에는 예닐곱 명이 줄을 서 있었는데 로그로뇨의 공원에서 만났던 한국인 남자 T도 있었다. 알베르게가 문을 열고 침대를 배정받아 짐을 풀고 있다 보니 순례자들이 하나둘씩 고단한 몸을 이끌고 도착했다. 오후에 들어서자 젊은 한국인 네 명까지 알베르게로 들어왔다. 남편은 젊은이들에게 다가갔다.

“우리 같이 저녁 해 먹을래요?”

남편의 제안에 여섯 명이 모였고, 1인당 3유로씩 걷었다. 남편은 마트에 가서 쌀과 요리 재료를 사 왔다. 밥과 찌개, 샐러드, 채소전, 오징어볶음, 그리고 와인으로 푸짐한 한 상이 차려졌다. 모두 까미노 중 처음 먹는 한국 음식이라며 좋아했다. 남편도 한국인을 만나고 입맛에 맞는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것에 만족스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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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남편은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주변을 살핀다. 한국인을 찾기 위해서다. 요리 또한 수제비, 볶음밥, 짜장밥, 돼지고기볶음 등 갈수록 다양해졌다. 저녁마다 와인은 빠지지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 누룽지를 끓여 먹고 출발하는 날도 많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00km 정도 남은 사리아는 여러 루트로 걸어온 순례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특히 순례증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 100km 이상을 걸어야 하므로 짧은 휴가를 내서 사리아부터 시작하는 순례자도 많다. 따라서 공립 알베르게는 일찍 도착하지 못하면 자리가 없다고 하여 우리는 사설 알베르게를 예약해 두었다. 예약한 사설 알베르게는 한 방에 2층 침대 두 개씩, 총 4개의 방과 주방이 있는 곳이다. 16개의 침대가 있는 이 알베르게에 8명이 묵게 되었는데, 세상에나, 모두 한국인이었다.


신이 난 남편 “우리 같이 저녁 해 먹을래요?”


남편은 마트에 가서 빨간 핫소스와 검은색 소스(지금 생각하면 굴소스였던 것 같다)와 닭을 사 왔다. 비장한 얼굴로 팔을 걷어붙이고 닭을 한번 끓여 잡내를 없앴고, 다른 한국인 아가씨들이 감자와 양파 손질하는 것을 도왔다. 고추장도 고춧가루도 간장도 없었지만, 닭볶음탕이 빨간 물을 머금고 용솟음치며 끓어올랐다. 갓 지어낸 하얀 쌀밥에 매콤한 닭볶음탕으로 모두 맛있게 먹었다. 뉴욕에서 온 한국인 이민자 K는 닭볶음탕이 먹고 싶어 한인 식당 몇 군데를 찾아가서 먹어봤지만,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던 그 맛을 못 느꼈는데 비로소 그리워하던 맛을 맛보게 되었다며 감동했다. 다음날 닭볶음탕의 남은 양념이 아깝다고 비닐에 싸 들고 가서 밥에 비벼 먹었으니, 닭볶음탕은 국물 한 숟가락 남지 않았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이틀 남겨둔 날, 뽈뽀로 유명한 멜리데에서 점심을 먹고 난 후 남편은 저녁에 칼제비를 해 먹겠다며 해산물이 많은 멜리데에서 조개 한 봉지와 달걀 서너 개를 샀다. 목적지인 리바 디소의 알베르게 주변에는 마트가 없기 때문이다. 멜리데에서 리바 디소까지는 12km 정도로 짧은 거리가 아니었다. 달걀이 깨질세라 조심조심 걷다 보니 더 멀게 느껴졌다. 배낭도 무거운데 꼭 그렇게 재료까지 사 가야 하냐며 남편을 타박했다. 리바 디소에 도착하여 공립 알베르게에 머물려했으나 공립 알베르게는 주방이 없어서 함께 걸어온 두 명은 공립 알베르게에 남고, 우리 부부는 주방이 있는 사설 알베르게로 옮겨야 했다. 남편은 짐을 풀자마자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조개로 낸 육수에 밀가루 반죽을 뚝뚝 떼 넣고, 고이 모시고 온 달걀을 풀어 칼제비를 완성했다. 칼제비가 완성되자 식탁에는 며칠 동안 함께 걷던 동행 두 명과 그날 처음 만난 한국인 부부까지 여섯 명이 함께 했다. 얼큰한 칼제비를 먹는 사람들은 이마에 맺힌 송골송골한 땀을 닦으며 순례길의 막바지에 조개칼제비를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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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에는 한국인 청년 둘이 더 있었는데, 파스타 재료가 있어서 간단하게 해 먹는다고 했다. 나는 올리브유를 둘러 간단하게 해 먹는 뻣뻣한 파스타가 너무 먹고 싶었다. 한 젓가락 얻어먹고 싶었지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말은 못 하고 군침만 삼켰다. 한국을 떠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은 지 20일이 지났지만, 한국 음식이 그립기는커녕 이탈리안 음식을 먹고 싶다니, 나는 지금 어느 땅 위에 있는 것일까?


그뿐만 아니다. 온종일 걷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간단하게 저녁을 먹은 후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한국인들을 불러 모아 저녁마다 잔치를 벌이는 남편 때문에 외롭고 고독한 사색의 시간은 전혀 없었다. 오랜 시간을 걷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친 후 대부분 사람은 체중이 줄어든다고 하는데, 매일 7시간 이상을 걷고도 밤마다 과한 저녁 식사로 몸무게가 줄어들지 않은 것이 가장 억울했다.




시골로 들어온 후에도 남편은 여전히 책방 뒤편의 주방에서 요리를 하고 함께 먹자고 마을 어른들 부른다. 음식이 많이 남았으니 함께 먹자, 마땅히 먹을 게 없으니 삼겹살 구워 먹자, 해산물이 제철이니 함께 먹자고 한다. 또한 마을에서 함께 음식 먹는 자리에는 반드시 남편을 부른다. 마을회관에서 노인들을 위해 음식을 했는데 먹으러 오라, 부녀회 몇몇이 점심해 먹는데 오라고 부른다.


아. 남편의 그 오지랖 어디 가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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