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이유와 목적이 있다.
예수의 제자 야곱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까지 종교적 목적으로 걷는 순례자의 길, 어떤 이에게는 도전의 길, 어떤 이에게는 자기 성찰의 길이기도 하다. 순례길답게 홀로 오롯이 걷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와 초반에 동행했던 언니들도 모두 혼자였다. 남편과 같이 온 내가 겁쟁이 같아 살짝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나도 혼자 오려고 했다고요.’ 속으로 혼자 변명했다. 오랜 버킷리스트였으며, 한 달의 시간이 생긴 덕분에 완주는 못하지만 가능한 한 더 많이 걸으려고 한다고 말하는 내 옆에서 남편의 대답은
“저는 짐꾼으로 왔어요. 오고 싶어서 온 건 아니에요”였다.
생장부터 시작하는 순례길은 피레네산맥과 마주한다. 마을을 벗어나 천천히 오르막을 걷다 보니 어느새 예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비를 머금은 초록은 더 진하고 깊었다. 발아래 펼쳐진 겹겹이 싸인 초록의 산들과 빨간 지붕을 얹고 있는 집들은 버킷리스트로 책갈피에 꽂아 두었던 사진 위를 걷고 있는 듯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하고 지금 내가 여기 서 있다는 현실에 감격하는 내 옆에서 남편은
“대관령 풍경이랑 비슷한데. 굳이 여기까지 와서 걸어야 하나?”라며 무덤덤한 반응이었다.
나는 입을 삐죽이며 눈을 흘겼다. ‘누가 따라오라고 했나?’
엘 아세보에서 까까벨로스까지 30km 이상을 걷기로 한 날이었다. 멀리 가야 하기에 최소한의 물건은 내 배낭에 담아 남편이 지고, 그의 배낭에는 내 짐을 보태어 까까벨로스의 공립 알베르게까지 보냈다. 무거운 짐도 보냈겠다, 저 멀리 설산과 발 끝에 고산지대 노랗고 붉은 꽃들에 몸도 마음도 나풀나풀 나비처럼 가벼운 날이었다. 계속되는 내리막길이 끝나는 곳에는 몰리나세카라는 꽤 큰 마을이 나온다. 몰리나세카는 검은 지붕과 돌담, 집집마다 꽃들과 체리나무로 어우러진 마을이었다. 다음에 오면 이 동네에서 하루 묵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마을을 벗어났다.
큰 도로에서 아무 의심 없이 다리를 건너 숲길로 들어섰다. 까미노 표식이 보이지 않았으나 곧 나타나겠거니 생각하였고, 분명 우리 앞에 걷는 사람도 있었다. 따라오던 서양인이 이곳이 까미노길 맞냐고 물어보길래 맞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2km 이상을 걸어 고갯길로 접어들었지만, 표식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 앞에 가던 사람들이 되돌아 내려오면서 이 길이 아니라고 했다. 큰 도로를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순간 다리에 힘이 풀렸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올라왔던 길을 터벅터벅 내려갔다.
한참을 내려가 다리를 건너야 했지만, 남편이 하천을 가로질러 거리를 단축해 보자고 제안했다. 하천의 폭은 꽤 넓었으며 풀숲이 우거져 음산했다. 그러나 2km는 단축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동의했다. 남편이 앞장서서 스틱으로 수풀을 헤치고 내려갔다.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바지도 잔뜩 걷어 올렸다. 풀이 우거진 하천에서 뱀이라도 나타날까 무서웠다. 물도 생각보다 깊어 허벅지까지 빠졌다. 갑자기 더 깊어져 급류에 휩쓸리면 어쩌나 별별 걱정이 다 되었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 없었다. 앞장서서 걷는 남편의 뒤를 따라 하천을 건너 물 위로 올라와도 길은 없었다. 한참 수풀을 헤치고 들판 위로 올라와서야 비로소 안도했다. 종아리 이곳저곳이 풀에 긁혀 빨개졌고 바지는 다 젖었다. 걸어야 할 길의 반의반도 안 걸었는데 이미 지쳤다. 그러나 갈 길이 멀다 보니 마음 편히 쉴 수도 없었다. 폰세라다를 지나 공장지대를 돌아가는 길은 더 지치게 했다. 중간에 멈추고 싶어도 우리의 짐이 까까벨로스의 공립 알베르게에 먼저 도착해 있을 테니 그곳까지는 무조건 걸어야 했다.
시간은 벌써 오후로 접어들었고, 아직도 갈 길은 먼데 남편은 배가 아프다고 한다. 마땅한 화장실도 없으니 조금 참아보라고 했지만, 길에서 벗어난 풀숲 사이로 들어가 버렸다. 시간도 너무 많이 흘렀는데, 갈 길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참지도 못하고, 아니 일부러 그러는 것 같아 속이 터졌다. 목적지가 4km 정도 남았을 때 남편은 길가에 주렁주렁 달린 체리를 따더니 풀썩 주저앉았다. 힘겨워하는 그의 모습에 내가 배낭을 메겠다고 하자 아무 말 없이 배낭을 건넸다. 잠시 쉬었다가 따라갈 테니 먼저 가라고 했다. 나는 배낭을 짊어지고 걷기 시작했다. 내가 걱정돼서 함께 온 것이 고맙고 미안하다는 생각에 밥이 중요한 그를 위해 목적지인 알베르게에 주방은 있는지 미리 알아보고, 다리의 상처는 괜찮은지, 컨디션은 어떤지 시시때때로 살폈다. 본인은 아내를 위해 짐꾼으로 왔다고 하지만, 짐꾼이 아니라 짐이라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마다
“다음에는 반드시 혼자 올 거야” 다짐했다.
까미노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산티아고 순례길의 잔상은 오래 남았다. 사진첩을 보는 남편의 눈가엔 그리움이 가득했고, 나 또한 그 길을 꼭 다시 가리라 다짐했다.
“난 순례길을 완주하지 못한 것도 아쉽고 혼자가 아니었던 것도 아쉬워. 다음엔 오롯이 홀로 걸을 거야.”
“다음엔 옆에서 조용히 있을게. 같이 가~” 남편이 피식 웃는다.
그는 늘 그랬다. 내가 계획하는 일에 언제나 함께해 주었다. 책방이 꿈이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시골로 가서 책방을 열자 했을 때도 기꺼이 따라줬다. 마음먹으면 바로 돌진해 버리는 나에게 조금 천천히 가자고는 했어도 멈추라고 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나보다 더 잘 어울리는 시골 책방지기가 되었다. 물론 지금도 서로 생각이 달라 티격태격한다. 나는 남편의 느긋함과 세련되지 못한 방식이 못마땅해서 늘 투덜거린다. 하지만 그는 말없이 한 발짝 떨어져서 나를 지켜준다. 세련된 파라솔을 아니어도 잎이 무성한 나무 그늘이 되어주고, 클래식한 의자는 아니어도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그루터기가 되어준다.
언젠가 한 번은 보름 정도의 시간을 내서 산티아고 순례길 중 포르투갈 길을 걸으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번에도 남편과 함께 걷게 될 것이다. 다만 이번에는 때때로 각자 걸으며 나만의 시간을 가질 것이다.
“여보, 우리 따로 또 같이 걸어봅시다. 그리고 그 기억을 오래도록 함께 나눕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