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달라서 가능한 일

시베리아 횡단열차

by 작은 의미

첫날밤

야간열차의 첫날밤, 2층 침대에서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나직하게 들렸다.

피곤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4인실에서 코 고는 소리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앞 침대에서는 남편보다 두 배 큰 소리가 들렸다. 덩치도 두 배는 큰 러시아 아저씨의 소리였다. 다행이다. 나는 준비해 온 귀마개를 꺼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서 잘 수 있을까 걱정했지만, 두어 번 깨긴 했어도 워낙 피곤했던지라 다시 잠이 들었다. 새벽에 눈을 떠 살금살금 객실 문을 열려고 하는데, 잠겨진 문고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곤히 자는 남편뿐만 아니라 건너편 침대에서 자는 사람들까지 깨우게 될까 봐 숨죽여 문고리를 돌리고 잡아당겨보아도 문은 열리지 않고 손만 빨개졌다. 아니 머리끝까지 빨개지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남편을 깨웠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어느 것 하나 호락호락하지 않는구나.




Good morning

밤새 어둠을 달린 기차에 아침이 왔다. 하루를 여는 기차 안은 화장실을 오가는 움직임들로 분주했다. 안전지대 인지 후 시간에 맞춰 나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간단하게 씻고 나와 걸음마 뗀 아이처럼 한껏 의기양양하게 객실로 돌아오니 러시아 아저씨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어색한 미소로 “Good morning” 인사를 건넸다. 우리 부부가 사용하는 2층 침대 건너편에는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체격이 큰 러시아 부부가 타고 있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거나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니었으나, 하룻밤 같은 공간에서 자고 나니 왠지 모를 심리적 친밀감이 생겼다. 러시아 부부 중 남편의 이름을 편의상 ‘니콜라이’라고 하겠다. 니콜라이는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땅, 낯선 열차로 여행하는 우리가 안쓰러웠나 보다. 어제부터 통하지 않는 언어로 이것저것 알려주려고 했다. 모든 것이 서툰 동양인 부부가 번잡스럽고 신경 쓰일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불편한 기색도 없었다. 남편만큼 덩치가 큰 부인은 아무 말이 없었다. 조용히 책을 읽거나 남편과 몇 마디 주고받을 뿐이었다. 어떤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러나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무심한 듯, 우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고 있다는 것을. 그 또한 고마웠다. 니콜라이가 객차 끝의 온수통에서 뜨거운 물을 받아 커피를 타서 나에게 주었다. 낯선 기차여행으로 휘청이는 내게 당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나 보다. 찰랑찰랑 넘칠 정도로 가득 채운 커피 유리잔을 받아 드니 고마운 나의 마음도 찰랑거렸다.





아침 9시가 넘어서 하바롭스크역에 도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 출발 후 처음으로 대도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는 40분 정차한다. 서둘러 기차역으로 달려 나가 광장 옆에 있는 마트를 찾아갔다. 서둘러 물과 맥주, 과일을 사고 나오니 기차 출발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었다. 천천히 광장을 둘러보았다. 대륙의 탐험가 하바로프 동상과 작은 분수들이 여행자의 포토 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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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누구일까?

그곳에 니콜라이가 젊은 여성과 함께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은 활짝 웃으며 동상과 분수 앞을 오가며 함께 셀카를 찍고 있었다. 누굴까 궁금했다. 우리가 기차로 돌아와 있자니 누군가 차창을 두들겼다. 창밖을 보니 사진을 찍고 있던 둘이 어느새 승강장에 서 있었다. 책을 읽던 부인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더니 손을 흔들었다. 무표정하던 부인의 얼굴이 환한 미소로 바뀌었다. 러시아 부부를 미소 짓게 한 그녀는 하바롭스크에서 학교에 다니는 부부의 딸이었다. 그들은 짧은 시간이나마 딸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해했다. 40분의 정차 시간이 흘러 기차가 떠날 준비를 하자 니콜라이는 딸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객실로 올라왔다. 기차가 천천히 움직여 하바롭스크역을 떠나자, 니콜라이가 휴대전화에서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내에게 무언가를 물어보자, 그녀는 “daughter”라고 말했다. 그는 아내에게 들은 대로 전했다. 이어서 “school”이라고 말하고, 다시 물어보고 “college”라고 말해 준다. 니콜라이와 우리는 몇 마디의 영어 단어로 서로의 딸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공감의 울타리를 만들었다. 짧은 대화를 끝내고 니콜라이가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도시락통에는 으깬 감자와 치킨, 토마토와 납작 복숭아가 담겨 있었다. 그가 납작 복숭아 한 개를 우리에게 건넸다. 유럽 여행 중에 일부러 사서 먹던 것을 얻으니 반가웠다. 니콜라이 부부가 아침을 먹고 난 후 우리도 가지고 온 누룽지로 아침을 먹었다. 객실 안 작은 테이블을 같이 공유하다 보니 적당한 시간을 두고 번갈아 식사했다. 그러라고, 그러자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은 우리끼리의 암묵적 규칙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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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워요.

오후 4시가 다 되어 오비루치역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니콜라이는 짐을 정리하며 곧 내린다는 신호를 보냈다. 오비루치역은 강원도 기차여행에서 만났던 작은 시골 역 같았다. 니콜라이 부부가 내릴 때 우리 부부도 따라 내렸다. 고마운 마음을 말로 전하는 대신 승강장에서 함께 사진을 찍고 가벼운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철길을 건너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보며 “스바시바”를 무한히 외쳤다. 처음 보는 낯선 이와 진심으로 주고받는 마음은 말로 하지 않아도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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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 이상의 말을 한 후 후회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진심의 알맹이가 빠져나가고 위선의 껍데기만 남은 것 같은 허탈함이, 오해의 뿌연 안개에 갇혀 불안했던 일도 많았다. 이국땅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이들과 극히 제한된 말로 소통했다. 덕분에 위선과 오해의 안개는 걷어지고, 진심의 마음은 더 또렷이 마주할 수 있었다. 언어가 달라서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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