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6

헌신

by Vittra

치앙마이에서 방콕으로 돌아올 때쯤엔


나는 더 이상 타인의 사랑이 필요 없었다.


난 이미 충분한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주변에는 사랑을 주고받을 사람들이 많다.


내가 외모가 뛰어나거나, 성격이 좋거나, 어떤 좋은 점이 있어서 사랑을 받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을 받는 것뿐이다.



사랑의 선순환.

사랑은 주면 줄수록 배로 돌아온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랑을 주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아니 배우지 못한다.


사랑을 주는 법은 스스로 터득해야 하는 마스터스킬이기 때문에, 주변의 좋은 스승이나 책, 노하우가 있다 하더라도, 배우기가 힘들다.


그저 사랑을 주는 사람 옆에 꼭 붙어서, 어떻게 사랑을 주는지 관찰하다 보면, 경험치가 점점 쌓이고, 레벨이 올라간다. 근데 그마저도 사랑하는 법을 모르면 말짱 꽝이다.


그리고 마스터 스킬이 되면, 자신만의 사랑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나는 최근 여러 여자들과 관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 적이 있다.


여러 여자들과의 관계라고 하면, 대게 부정적인 생각이나 이미지가 떠오를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인 사람이고, 3개월 전에는 사실 난 여자포함 아무하고도 연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말 최근의 일이다.


내가 여러 여자들과 관계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일단 나 포함 멍청한 남자새끼들은 사랑을 주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남자들은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이성적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논쟁하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구분하는데 에너지를 쏟는다. 그리고 그 습성은 오늘날 더 필요한 스킬이 되었다.


불쌍한 한국 남자들….


왜냐하면 사회가 점점 변하고, 사회적 동물인 남자에게 감정을 드러내거나, 잘못된 선택을 했을 때, 생기는 리스크가 점점 더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남자들은 어떤 느낌. 이때까지 살면서 자신이 느끼지 못했던 어떤 사랑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이끌어주는 여성에게 끌릴 수밖에 없으며, 가끔 이성을 파괴하는 팜므파탈이 나타나면, 정신을 못 차린다.


나도 처음에는 본능적인 관계에 지쳐

이성적으로 대할 수 있는 여성을 만나려고

시도해 봤으나………..

그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여자는 남자와 다르다…

여자는 감정적 동물이며,

이미 완성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여성과 남성의 고민과 불안은 결이 정말 다르다.


남녀에 관한 이야기에 대해서는 다음 책


LADY BOY


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예정이라,

여성이 어떤 불안을 가지는지에 대한 내용은

다음 기회에


사실 남자가 멍청하다기보단 남자는 동물의 세계에서, 자신을 증명하지 못하면,


바로 죽임 당하거나,

무리에서 왕따를 당하기 때문에


남자는 힘과 에너지

혹은 이성과 룰로써 사회와 가정을 지켜야 한다.


그나마 원시사회에서는 소외되거나 육체적인 결함이 있는 남자여도 여성과 함께 마을을 지키거나, 공동체에서의 역할을 부여받는다.


그러나 현대사회에는 지켜야 할 마을이 없다.


그리고 남자의 패시브 스킬인 복종과 헌신은 이제 사회에서 필요 없는 스킬이 되었다.


그나마 가정에서는 헌신의 스킬을 쓸 수 있지만,


복종의 스킬은 잘 쓸데가 없다.


복종은 신뢰가 기반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신용을 얻은 대신 신뢰를 잃었다.


물과 음식, 질병 등 육체적인 환경이 좋아지면 좋아질수록, 뭔가 점점 살기가 힘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헌신하고 싶은 여성의 수와 복종하고 싶은 리더 같은 인물들의 수가 점점 줄어든다.


지독한 경쟁사회


그러나 올라갈 수 있는 사다리가 다양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린 극심한 경쟁을 겪는다.


그리고 살아남은 몇몇의 리더들에게

자본과 에너지가 쏠린다.


역사와 사랑, 그리고 감사

그리고 다양성이 부족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이 많으면, 경쟁을 하더라도 그 강도가 약하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아이러니한 상황.


한국에는 현재 세계 최고의 유전자를 가지고 극심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다수의 인터내셔널 인플루언서들이 다수 존재한다.


그러나 그런 위상과는 다르게

우린 많은 사람들이 한국을 탈출할 계획을 하고 있다.


친한 지인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 탈출은 지능순이라는 이야기.


이미 자산 수준이 높거나 사업이 잘되어 해외를 갈 수 있는 상황이 되는 사람들은 싱가포르이나 일본, 태국 등 여러 나라로 이동한다.


그리고 치앙마이에는 생각보다 수많은 서양 사람들이 이미 그곳에서 터를 만들고 있었고, 도시나 사람들에 지친 사람들이 단순히 여행으로 시작하여, 이곳에 정착하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나도 현재 내 인생의 마지막 종착지는 치앙마이이다.


아직은 자본의 유통이나, 내 작품을 상업화하는 기술을 배우고 공부하는 중이어서, 대략 5-8년 이후에 완전 치앙마이에 넘어올 생각을 하고 있다.


전에 잠깐 언급했지만, 난 명상센터를 만드는 것이 목표이고, 그 마지막 센터는 치앙마이로 정했다.


5-8년 동안 나는 무엇을 하게 될까?


물론 이 과정을 난 다 기록해 놓겠지만,

나중에 이루어질 어떤 미래보다는


지금 내가 이런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한다.

그리고 내 생각을 이렇게 공유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해서도 감사함을 느낀다.


다음 주제는 감사

사랑 챕터가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으나


원래 순서인 ‘감사’에 대해 다음에 이야기해보자.


뭔가 잡소리가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와서


사랑이라는 스킬은 여성의 패시브 스킬이고, 남자의 패시브는 복종과 헌신이다.


남자들은 사랑을 주는 법을 터득하기보다는 자연과 사회 안에서 살아남을 스킬과 힘, 혹은 가정을 지키기 위한 헌신의 스킬을 연마해야 했다.


매일이 생존을 위한 투쟁.


과거에는 핸드폰도 비행기도 세븐일레븐도 없다.

그래서 사랑 따위 그게 뭔지 개념 짓지 않아도


사랑이 가득했다.


아주 단순한 이치지만, 우린 사랑을 이해하기 어렵다.

인간에게 사랑을 이해할만한 충분한 시간이 부여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사랑을 이해하는 대신, 그냥 사랑을 했다.

사랑을 이해할 시간조차 허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수렵시대가 끝날 때쯤엔


사람의 급이 나뉘고,

잉여자본을 획득한 높은 계급의 인간들은

생존이 아닌 존재를 탐구하는 단계에 이른다.


존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신을 탄생시켰고,

수많은 이들이 수행자의 길로 들어섰으며,

어떤 시기에는 수행의 정점에 이른 자들도 나타났다.


싯다르타


그 뒤는 사랑의 정점에 오른 자도 나타났으니


그는 예수


그리고 마지막

망상과 자본주의의 정점으로는


일론머스크가 있겠다.


인류는 잉여 자본을 항상 불균형으로 맞추어 놓았다.


그 결과로 우리는 미켈란젤로, 다빈치, 아인슈타인, 니체, 뉴턴, 오펜하이머 등 나열하면 밤을 새워야 할 정도로 많은 전설적인 인물들을 배출해 냈다.


전쟁은 그들의 성과를 시험하는데 안성맞춤이었고, 전쟁과 식민지, 세계대전과 이데올로기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는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고, 세계를 여행 다닐 수 있는 기술을 얻었다.


치열한 전쟁의 결과다.

인간의 이성과 남자의 헌신에 의해 만들어진 현재.


난 온라인에 글을 쓰고, 지구반대편에 있는 독자들에게

빛의 속도로 전달되는 시대다.


그리고 이제 막 시작한 인공지능의 시대는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