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플갱어
나는
3일 전에는 어머니를 생각하며 눈물을 참았고,
2일 전에는 나에게 사랑을 준 모든 사람 때문에 눈물을 흘렸고,
하루 전에는 어제 처음 만난 이방인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가 너무 그와 닮았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는 그는 시인이자 배우, 그리고 극단을 운영하던 젊은 예술가였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항상 내 곁에 일정거리를 유지한 채, 어느 한 예술가의 알 깨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부산에서 극단을 운영했고, 나름 잘 나가는 연극배우였다. 지금은 약간은 말라있어 그때의 포스는 사라졌지만, 뭔가 여유 넘치는 모습이다.
그는 빚만 남은 극단을 청산하고,
바로 유학길에 올랐다.
처음은 쉽지 않았지만, 2년 정도 버티니 살만해졌다.
나의 조울증 증세를 경험한 지인 중 한 사람.
그리고 베이비 프로스트를 만났던
우울했던 마지막 프랑스시절 난 그의 집에서 지냈다.
그의 집에 도착해
히피들의 필수의식을 진행했다.
(술, 음식, 향, 음악)
그리고 나지막이 프랑스 아티스트
AIR의 유명 앨범을 틀었다.
순간 그 공간은 조금씩 일그러졌다.
아티스트의 이름처럼 공기는
순식간에 다른 차원을 이동했다.
뭔가 벌어지고 있었다.
나는 공항에 도착해서부터 불안한 모습이었다.
나는 원래 아주 능동적이고 효율적인 사람이다.
생각이 들면 즉시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인 내가 그때는 당장 5분 뒤의 상황도 불안해하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인지하고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미소로 날 반겼다.
그의 미소와 목소리를 들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우리는 온갖 이야기를 다 나누었다.
난 그가 예술가임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어느 하루
집 앞 공동묘지에 석양빛이 비칠 때쯤
그의 입에서 들려온 소식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어떤 친한 친구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친구는 더 이상 돌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
그 친구는 밤낮을 불태우며 자신을 뽐내다 산화했다.
낯선 환경에서 알바와 어학, 그리고 예술
남는 시간은 그림만 그렸다는 그.
그의 그림이 궁금해졌다.
그는 아마 조증상태였을 것이다. 조증은 우울과 불안을 견디지 못해 뇌가 죽음을 생각할 때쯤, 뇌는 마지막 생명활동을 펼친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조증이다.
그때는 그의 죽음의 이유가 무엇인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으나, 지금 조울증을 겪은 나는, 그가 무슨상태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지금의 나의 모습이고
3년 전 정신병원에 입원하기 직전의 모습이다.
난 나에게 일어난 일의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고민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현실과 꿈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의 능력만큼 우리는 꿈을 키울 수 있다.
꿈을 키우기 위해선 현실적인 기술과 자본, 리더십, 지식, 성실함 등 많은 요소들이 필요하지만, 결국 그것을 현실화시키지 못하면, 그 꿈은 망상이 된다.
조울증의 결말은 결국 망상으로 끝나며, 운이 안 좋으면 위의 사례와 같이 산화하게 된다.
그러나 거대한 시련 뒤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린 알고 있다.
시련 뒤에는 항상 평온함이 따른다.
이 메커니즘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다.
이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스스로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 또한 시련의 시간 안에 속하기 때문에, 시련 뒤에 평온함이 온다는 사실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사실 중 하나다.
우리의 이성이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러 동의어 중 또 한 커플이 탄생했다.
시련과 평온함은 동의어라기보다는
약간 커플 같은 느낌이다.
우주의 시간에서 저 사건은 동시에 일어나지만,
우리의 시간 안에서는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이 오더라도
시간을 컨트롤할 수 있다면 문제없다.
난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넸다.
일주일간의 힐링이 끝나고, 난 잠깐 불편한 상황에서 파리생활을 마무리했지만, 그와의 시간 덕분에 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
어제 만난 44세의 뮤지컬 배우는 그를 똑 닮았다.
분위기와 말투, 심지어 머리카락과 얼굴마저 닮았다.
난 그에게 프랑스에서 만난 똑 닮은 그의 사진을 보여주며 아는 사이냐고 물었고, 그는 그를 안다고 했다.
나는 그와의 썰을 풀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없는 형편에도 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는 가슴에 예수를 박았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그 상황에서도 타투는 잘한 거 같다.
어쨌든 난 이 대목에서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익숙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나는 조증시절 어머니 친구에게 찾아가 어머니 생각을 하다가 대성통곡을 하였다. 나의 조증증세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나의 또 다른 어머니는 그냥 가볍게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나는 그 상황이 잘못된지도 모른 채, 내 사업이야기를 하고, 그림을 전달했다.
얼굴을 자르고 싶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해야 하나
그리고 그때 나는 다이소에서 가짜 꽃을 사 즉석으로 디자인하여,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사실 그때도 나의 사업계획은 나쁘지 않았다.
그것을 현실로 만들어낼 능력이 없어서 문제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