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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지박약사 Aug 29. 2024

초보 아빠 에피소드

임신과 출산을 생각하면 꼭 생각나는 에피소드가 세 가지 있다.


  (1) 자두 에피소드


   2012년 아직 자두가 비쌀 때였다. 어느 주일날 오후 우리 부부는 무엇인가를 사기 위해 하나로마트에 들어갔다가 우리가 찾던 그 물건이 없어서 그냥 나온 적이 있었다. 그 때 아내는 따식이를 임신 중이었는데 매대에 진열된 자두를 보고 먹고 싶어했다.


  "자두 먹고 싶다."

  "얼만데?"

  "2개 5000원이야."

  "너무 비싸."


  나는 2개 5000원짜리 자두를 사달라고 하는 아내에게 짜증을 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우릴 둘 다 가난한 신학생인데, 아버지 병원비도 내야 하고, 헌금도 해야 하고, 학생부 사역도 해야 하고, 책도 사야 하고, 학비도 내야 하고 돈 쓸 데가 얼마나 많은데 자두 2개를 5000원 주고 사 먹는 게 말이 돼?'


  어휴......내가 만약 타임머신을 타고 그 때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제일 맛있는 자두를 한 박스 사들고 가서 나 자신에게 꿀밤을 한 대 먹여주고 싶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뭣이 중한디?"


  따식아 미안하다. 그래서 니가 지금도 자두에 환장하는구나.


  (2) 분유 에피소드


  첫째 아들 따식이는 태어나 처음 사흘을 산부인과에서 지냈다. 엄마의 모유도 먹었지만, 새벽에는 병원에서 주는 분유도 먹었다. 거기까지는 아무 문제 없었다. 그런데 퇴원할 때 병원비를 정산하는 과정에서 1800원이라는 금액이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분유 비용이 1800원 나왔는데, 도대체 내가 왜 이 돈을 내야하는지 납득할 수 없었다. 옆에서 기다리던 아내가 참다못해 한 마디 했다.


  "여보, 계산 안 하고 뭐해?"

  "어......계산해야지......근데 1800원 이건 뭐지?"

  "당신 아들이 먹은 분유 값이잖아!"

  "아......맞다. 이제 이것도 내가 내야하는 거지?" 

  "당연한 걸 왜 그래?"


  그전까지는 나는 스스로를 아내의 보호자라고만 생각해왔었다. 남편의 정체성은 있었지만, 부모의 정체성은 없었던 상태였다. 나는 무엇이든지 마음의 준비가 꼭 필요한 사람이다. 그리고 마음의 준비에 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자녀가 막 태어난 이 순간까지도 나는 아빠가 되는 마음의 준비를 끝내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시작하지도 못했던 것 같다.


  내게는 이 1800원이 아빠로서의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아빠가 된다는 것은 내가 지금 성취하길 원하는 여러가지 것들을 내려놓는 것을 의미했다. 아빠로서의 삶의 선택하는 대신, 무엇인가는 포기해야만 했던 것이다. 고맙게도 아내는 남편의 이런 미성숙한 부분까지도 이해하여주었다.


  그 날 이후 분유는 나에게 일종의 트라우마가 되었다. 나는 분유를 쳐다볼 때마다 산부인과에서 있었던 1800원 사건이 생각났고, 부끄러웠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의 분유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워 피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아이들 분유를 타 준 적이 없다. 아내에게 고개 숙여 고맙고 또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3) "아들아 미안해" 에피소드


  아내는 산후조리를 위해 집이 있는 원주를 떠나 시흥까지 갔다. 시흥에 있는 한 산후조리원의 비용이 가장 저렴했기 때문이다. 아내는 가난한 형편을 탓하지 않았다. 그녀는 기쁨으로 갓난 아기와 함께 허름한 여관 같은 곳에서 2주 가량 머물렀다. 그것마저도 부담되었던 아내는 산후조리원을 나와 처형네에서 잠시 신세를 졌다. 


  철없는 남편은 한달동안 원주에서 자유를 만끽했다. 처음에는 조금 경건하게 성경책을 읽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부터는 읽고 싶었던 인문학 서적을 마음껏 읽었다. 삼국지, 수호지, 토지, 태백산맥, 로마인 이야기를 다 읽었다. 그리고 심심할 때마다 일본 애니메이션 원피스를 보았다.

 

  시간이 갈수록 아내의 빈자리가 그리웠다. 아들의 얼굴이 그리웠고, 내 팔뚝 하나 크기밖에 되지 않는 그 녀석을 내 어깨 위에 올려놓고 재우고 싶었다. 마음 약한 남편이 우울증에 걸릴까봐 아내는 집안 곳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겨놓았다. 침실, 거실, 식탁, 책상, 심지어 화장실에까지 아내의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포스트잇을 붙여놓았던 것이다. 나는 일부러 그 포스트잇을 떼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온 집안에 아내의 온기가 느껴지도록. 아내와 아기가 보고 싶을 때마다 아내의 편지를 읽고 힘을 낼 수 있도록.

  

  13년 1월 내 생일에 맞추어 아내와 아기를 보러 처형네에 놀러갔다. 첫째 아들 따식이는 그새 또 큰 것 같았다. 작은 방에서 작은 이불을 덮고 있을 뿐인데 아기가 너무 작아 마치 킹사이즈 침대처럼 크게 보였다. 나와 아기 단 둘이 있을 때, 나는 아기 앞에 엎드려 많이 울었다. 부족한 내가 아빠인 게 아기에게 너무너무 미안했다.


  "아들아, 아빠가 미안해."


  내가 좋은 아빠가 될 수 있을지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앞날이 두렵고 막막했다. 부모가 된다는 것은 자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일까? 왜 미안함을 느꼈던 것일까? 아마도 내 인생의 우선순위가 뒤바뀌는 고통과 혼란스러움이었던 것 같다. 아빠가 된 나는 나 자신보다 내 아들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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