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 수업 - 봄 (9)
같은 수를 여러 번 곱하는 것, '거듭제곱'
칠판에 거듭제곱을 가득 써 놓고
2^2=4 부터 5^4=625 까지 암기하라고 합니다.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지만,
앞으로 수학 공부 하면서 수천번 수만번은 만나게 될 것이기에,
미리 암기해 두면 편할 거라고,
2^5=32 는 대학 수학능력시험에서 정답으로 자주 나오는 수라고,
2^10=1024는 수학샘이 즐겨쓰는 비밀번호라고 알려주면서 암기를 북돋웁니다.
그러는 사이에 교실엔 암기왕 학생이 있기 마련이죠.
금새 다 외운 암기왕 친구 모습에 이제 여기저기 암기하는 소리들로 교실은 시끌벅적 합니다.
학생들이 거듭제곱을 암기하는 동안 눈치챘는지 모르겠지만,
거듭제곱은 처음엔 소리 없이 아주 조금씩 조금씩 커지다가 어느 순간 폭발적으로 커집니다.
2의 거듭제곱만 보더라도,
1, 2, 4, 8, 16, ... 으로 아주 조금씩 커지다가,
2^10 = 1024
2^20 = 1,048,576
2^100 = 1,267,650,600,228,229,401,496,703,205,376 으로,
2^100, 이 수는 아마도 지구의 모든 모래알의 개수보다 큰 수 이고,
우리 은하에 있는 별의 개수보다 큰 수일 것입니다.
10^100 은 ‘구골’이라고 불리는 수로, 1 뒤에 0이 100개 붙은 수지요.
구골, 이 수는 아마도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원자의 수보다 큰 수 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10^10^100,
이 수는 ‘구골 플렉스’라고 불리는데, 10의 구골 제곱으로,
1뒤에 0이 구골개 있는 수입니다.
거듭제곱을 이용하면
위과 같이 간단하게 표현되지만,
만약 이 수를 종이에 쓰려고 한다면,
우주의 모든 공간을 사용해도 부족할 정도의 어마어마하게 상상도 못 할만큼의 큰 수입니다.
우수개 소리로,
아주 큰 종이 한 장이 있다면, 지구에서 달까지 갈 수 있다고 하지요.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4,400,000,000mm 나 되는데, 무슨 소리냐고요,
아주 큰 종이를 반으로 접고, 그 반으로 접은 종이를 또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고, 또 반으로 접고 ...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 접다 보면,
접혀진 종이의 두께가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커진다는 것입니다. 정말입니다~!!
종이 한 장의 두께가 0.1mm 이라고 할 때,
1번 접으면, 0.1 × 2 = 0.2mm
2번 접으면, 0.1 × 2^2 = 0.4mm
3번 접으면, 0.1 × 2^3 = 0.8mm0
....
42번만 접으면, 0.1 × 2^42 ≒439,804,651,110mm
아까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384,400,000,000mm 이라고 했으니까,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보다 커지는 것, 맞지요~^^
어마어마하게 큰 수나 어마어마하게 작은 수를 아주 간단하게 나타낼 수 있는
거듭제곱의 표기법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였습니다.
거듭제곱의 훌륭한 표기법을 완성시킨 수학자는 르네 데카르트(1596~1650) 였지요.
거듭제곱의 표기법을 두 팔 들어 환영한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천문학자들 이었습니다.
계산을 하다가 수명이 단축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거대하게 큰 수를 다루면서 고생한 천문한자들은,
거듭제곱 표기법이 등장하면서, 이렇게 간단히 표현하게 되었답니다.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149,600,000,000 = 1.496×10^11 km
태양의 질량 2,000,000,000,000,000,000,000,000,000,000 = 2×10^30 kg
우주에 존재하는 양성자 수는 '에딩턴의 수'라고도 불리는데, 약 10^80 개
이 밖에도 별의 밝기, 별의 온도, 중력과 행성의 질량, 플랑크 시간, 우주의 나이, 우주의 직경,
블랙홀 질량, 초기 우주 온도, 우주의 밀도 등등...
거듭제곱의 표기법이 아니라면 우주의 이러한 거대하게 큰 수들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었겠습니까.
우주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 사회에도 천문학적 수치를 갖는 것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경제 관련해서만 보더라도 국가 예산 총액, 세금 총액, 부채 총액, 주식 총액, 부동산 총액, 판매 총액 등등..
거듭제곱 표기법이 사라진다면, 당장이라도 금융 시장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나와는 상관 없다고요?
혹시 그렇게 생각하는 학생들에게 이러한 예시를 듭니다.
학생들이 늘상 사용하고 있는 핸드폰에서의 각종 데이터의 용량이 그것입니다.
짧은 문자 메시지 한 통의 데이터는 1킬로 바이트(10^3 B),
고화질의 사진 한 장의 데이터는 1메가 바이트(10^6 B) 이고요,
영화 1편의 데이터는 대략 1기가 바이트(10^9 B)입니다.
일반적인 노트북의 전체 데이터 용량은 1테라 바이트(10^12 B) 정도 이지요.
대형 데이터 센터의 데이터 용량는 무려 1페타 바이트(10^15 B),
전세계 하루 인터넷 트래픽 수준은, 거의 1엑사 바이트 (10^18 B),
그리고 전세계 글로벌 클라우드 데이터 총합은, 놀랍게도 1제타 바이트 (10^21 B) 입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 하지요, 라고 말하는 이 순간에
데이터 용량은, 이미 자신의 수치를 훨씬 능가하고 있을 겁니다.
더 더 큰 용량을 원한다면...
거듭제곱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초반에는 그 변화가 미미해 보이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통제 불능의 수준으로 폭발적으로 커지는,
거듭제곱의 위력은 정말로 무서울 정도입니다.
그것은 한편으로 마법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주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몇년 전 경험했던 '코로나19 펜데믹'이 그러했지요.
전염병이 거듭제곱의 형태로 퍼져나갈 때... 그 공포가 얼마나 무서운지 경험했습니다.
감염재생산 수가 2라면, 10일만 지나도 1,024명(배)이고,
감염재생산 수가 3이라면, 10일만 지나도 59,049명(배)인 것입니다.
...
이렇게 악성 바이러스가 거듭제곱으로 분열할 때... 그 결과란...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거듭제곱을 배우는 수학 수업 시간에는,
이 한 마디를 덧붙입니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 - <성경> '욥기' 8장 7절
거듭제곱의 위력이 학생들 삶에 마법같이 일어나길~!!
수학 수업이 끝나기 전, '아주 큰 수' 몇 가지를 상식 차원에서 알려줍니다.
동양에서 정말로 큰 수라고 알고 있는,
불가사의(不可思議)는 10^64 이고요,
무량대수(無量大數)는 10^68 입니다.
동서양을 합해서 역사상 가장 큰 수는,
수학적 증명을 위한 '필요'에 의해 만든, 1980년 기네스북에 가장 큰 수로 올라 있는,
거듭제곱으로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수,
바로 '그레이엄 수', 'G64' 입니다.
'그레이엄 수', 'G64'는 이 거대한 우주의 저 미세한 입자들의 수보다도 훨씬 큰 수로,
수학적으로 정확히 정의되어 있고, 심지어 이 수의 마지막 세 자리가 937로 끝난다는 것도 알지만,
너무 너무 커서 우주의 어떤 물리적 실체로도 절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수학은 우주까지도 넘어섭니다.
"선생님, 도대체 이렇게 거대하게 큰 수가 왜 필요해요?"
학생들로부터 거듭제곱에 관한 수업을 하다 보면, 항상 듣는 질문입니다.
"글세, 그렇지만 수학이기에 이러한 거대하게 큰 수도 생각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거대하게 큰 수가 앞으로 어떻게 활용될 것인지는, 우리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몫일 겁니다.
거듭제곱에 관한 수학 수업을 할 때면,
변방의 작은 교실을 넘어, 5대륙을 품고 있는 이 지구를 지나서 저 거대한 우주로 나아가는 듯한 느낌입니다.
수학이 큰 수들을 얼마나 맘 놓고 다루는지,
그야말로 이는 수학만이 할 수 있는 것으로, 왜 수학이 모든 학문의 기반이 되는지를 다시금 깨닫습니다.
수학 교사로서 약간 으쓱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