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 수업, 봄(12) 수학자 '폴 에어디쉬'

중학교 수학 수업 - 봄 (13)

by Galaxy샘

올해는 2026년!


연도를 나타내는 4개의 숫자 2, 0, 2, 6 를 모두 한 번씩 모두 사용하고,

(숫자 2와 6를 붙여서 26으로도 만들 수 있음.)

사칙연산 +, −, ×, ÷ 와 괄호 ( ), 거듭제곱 ^, 팩토리얼 !, 루트 √ 를 사용하여,

1부터 100까지의 자연수 만들기.


이 게임의 이름은 ‘YEAR GAME’ 입니다.


예를 들어, 2026년이라고 하면,

1 = 2 ÷ 2 + 6 × 0

4 = 6− (2 ÷ 2) − 0!

50 = 2×(26−0!)

64 = (2 + 0 + 6)^2

80 = 6! ÷ (2 + 0!)^2


미국수학교사 협회[NCTM]의 ‘YEAR GAME’ 온라인 사이트에 가 보면,

미국, 인도, 프랑스, 일본, 독일 등 전 세계의 학생들이 'YEAR GAME' 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2014년에는, 0, 1, 2가 모두 있어서,

1부터 100가지의 자연수를 만드는 방법이 정말 많습니다.

전 세계 학생들이 함께 수학 공부하는 큰 마당인 것이지요.


교실에서 학생들과 ‘YEAR GAME’을 할 때,

일부러 ‘1996년’으로 합니다.

1, 9, 9, 6 의 네 가지 숫자들로 1부터 100까지 자연수를 만들어 보는 것이죠.

학생들의 아이디어는 다양하고 참신합니다.


예를 들어

1 = (9÷9)^61

2 = (9 + 9)÷6−1

3 = (9 + 9)÷(6×1)

4 = 6−9÷9−1

5 = (9−1)−(9−6)

6 = 6×(9−9 + 1)

7 = (9 + 6)−(9−1)

8 = 9÷9 + 6 + 1

9 = (√9×6) −(9×1)

10 = 9÷√9 + 6 + 1

...


학생들이 갑자기 묻습니다. "왜 굳이 1996년이예요?"

1996년은,

"학생들이 기억했으면 하는, 수학계에서 아주 존경받는 수학자가 돌아가신 해 란다."

그 수학자는, 바로 '수학계의 순례자'라 불리는,

폴 에어디쉬(Paul Erdős, 1913–1996) 입니다.


요즘 수학자들은 서로 만나면 이렇게 묻는다고 하네요.

“당신은 에어디쉬 몇 번입니까?"

폴 에어디쉬는 생전에 발표한 논문이 무려 1500편 이상이라고 합니다.

환산해 보면 매달 30쪽 이상의 논문을 1편 이상 발표한 것이네요.

논문의 공동 저자수는 무려 511명이라고 합니다.

즉 500명 이상의 수학자와 공동 연구를 진행하였던 것입니다.


이로 인해 생긴 것이 바로 ‘에어디쉬 수’ 입니다.

에어디쉬 수 0번 : 본인

에어디쉬 수 1번 : 에어디쉬와 직접 공동 논문을 쓴 수학자

에어디쉬 수 2번 : 에르디쉬 수 1번인 사람과 공동 논문을 쓴 수학자

에어디쉬 수 3번 : 에어디쉬 수 2번인 사람과 공동 논문을 쓴 수학자

...

론 그레이엄, 벨라 볼로버시, 러슬러 러버스, 엔드레 세메레디, 앤드푸 오들리츠코... 등등의

저명한 수학자들이 에어디쉬 1번입니다.

에어디쉬 2번에는 필즈상 수상자들도 많은데요.

테렌스 타오, 도널드 커누스, 리처드 파인만, 존 내시.. 등등이 에어디쉬 2번이고,

아인쉬타인도 에어디쉬 2번입니다.

'페르마의 정리'를 증명한 앤드류 와일즈는 에어디쉬 수 3,

'푸엥카레 추측'을 해결한 그리고리 페렐만도 에어디쉬 수 3,

한국인 최초 필즈상 수상자인 허준이 교수도 에어디쉬 수 3 이라고 합니다.

빌 게이츠, 일론 머스크도 에어디쉬 수 4 라고 하니,

현대의 수학자, 과학자, 기술자는 거의 대부분 폴 에어디쉬와 관련이 있는 것이지요.


1913년 헝가리에서 태어난 폴 에어디쉬는 수학 교사인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

3살 때 이미 큰 숫자 덧셈을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4살 때는 암산으로 세자리 곱셈을 할 수 있을 정도였고,

1934년 21세의 이른 나이로 헝가리 부다페스트 대학교에서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 학위를 받은 직후 폴 에어디쉬는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미국의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AS)로부터 연구원 자격을 제안 받았던 것이지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는, 아인쉬타인, 괴델, 폰 노이만 등등의 전설적인 학자들이 있는 곳으로,

당대 최고의 연구소 였습니다.


그렇지만 폴 에어디쉬는,

당대 최고의 연구소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자유로운 방랑벽을 가진 수학자로,

어디든지 수학 연구를 할 수 있는 곳이라면 즉시 그 곳에 방문하여 함께 수학 연구를 할 수 있기를 바랬기에,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를 나왔고, 이후 그는 60여년 동안 '길 위의 수학자' 였습니다.


그는 평생 특정한 대학이나 어떤 기관에 소속되지 않았고,

자신의 집도 소유하지 않았으며, 달랑 가방 두 개만을 들고 전세계를 돌아다녔습니다.

고향인 헝가리를 떠나 영국으로, 미국으로, 캐나다로, 독일로, 이스라엘로, 호주로, 일본으로...

수학 연구를 같이 할 수만 있다면,

"My brain is open.(내 머리는 열려 있습니다)"라고 외치면서 동료의 집 문을 두들겼다고 합니다.


평생 결혼하지도 않았고,

돈, 음식, 옷, 개인적 안락함 등 세속적인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으며,

수학 연구를 통해 돈이 생기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수학 학술지에 기부했다고 합니다.


폴 에어디쉬는 종종 "수학자는 커피를 변화해서 정리(theorem)바꾸는 기계"라고 말했습니다.

수학에서 '정리'란, 그 내용이 참임이 증명된 명제들 중에서 수학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명제로,

수학을 떠 받히는 기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피타고라스의 정리', '유클리드의 소수 무한성 증명', '오일러의 등식', '가우스의 대수학의 기본 정리',

'오일러의 다면체 정리',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 등등


이미 증명되었던 수학적 정리들 혹은 증명을 기다리고 있을, 아직 발표되지 않은 수학적 정리들,

그리고 그 정리들을 참이라고 밝혀주는, 우아하고 아름다운 증명들을 모두 모은,

전지전능의 '그 책(The Book)'이 있으리라고 폴 에어디쉬는 말하곤 하였답니다.

수학자의 임무는, '그 책(The Book)'의 한 페이지를 훔쳐 보는 것이라요.


1996년 9월 20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수학 학회가 열렸습니다.

83세의 노(老) 수학자, 폴 에어디쉬도 참석 중이었지요.

폴 에어디쉬는, 사람이 죽는 건, 죽는 것이 아니라 단지 떠남(left) 이다,

진짜 죽음(died)이란, 수학자가 더 이상 수학 연구를 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바르샤바의 수학 학회에서 폴 에어디쉬는 수학 토론을 들으며 세상을 '떠났습니다(left)'.

아마도 저 세상 있다면, 그 곳에서도 수학 연구를 결코 멈추지 않을테니까, 죽은 것이 아니라 떠난 것입니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수학 연구에 몰두한 폴 에어디쉬.

아마도 그가 가장 원했던 방식으로 삶을 마감했을 것입니다.


수학과 결혼한 천재, 수학계의 순례자, 폴 에어디쉬

학생들에게, "부럽습니까?"

고개를 절로 저으며, "노~!! ^^"

학생들에게, "수학자들은 약간 미친 것 같지요?"

이구동성으로 "예~!! ^^"


폴 에어디쉬의 일대기를 다룬 이 책을 꼭 소개하고 마무리를 합니다.

그 책의 제목은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원제: The Boy Who Loved Math)> (폴 호프만, 승산출판사)

이 말은, 세속적인 가치를 완전히 뒤로 하고, 오직 수학적 진리에 평생을 바친,

폴 에어디쉬에게 존경과 경의를 가득 담아 표현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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