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 수업 - 겨울 (12)
수학 수업 시간, 문제를 풀다 보면, 종종 계산값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각 반에 ‘인간 계산기’ 라 불리는 학생 한 명씩은 있어서,
계산값이 필요할 때 물어보면, 척척 답해 줘서 고맙습니다.
수학자라면 당연히 계산을 잘하겠지 생각하겠지만,
수학자들이 남긴 노트를 보면,
아이작 뉴튼(1643~1727)이나 알베르트 아인쉬타인(1879~1955)도 계산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들을 했고,
심지어 쿠르트 괴델(1906~1978)은 단순 계산에 아예 관심이 없었다고 하고,
앙리 푸엥카레(1854~1912)는 추상적인 개념과 직관적인 사고력에 매우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지만,
학창 시절 국제수학경시대회에서 계산 실수로 점수를 잃기도 하였다고 하고,
학창 시절 이후로도 복잡한 계산에서 잦은 실수를 했던 것으로 유명하기도 합니다.
계산을 잘했던 수학자로 가장 유명한 수학자를 들라고 하면,
단연코 이 수학자를 빼놓을 수 없지요.
바로 레온하르트 오일러(1707~1783) 입니다.
오일러는 나이 20세에 ‘파리 아카데미 주최 수학 문제 풀이 경연대회’에 참가해 2등을 했는데,
이후 매년 열리는 이 대회에서 1등을 무려 12번이나 더 했다고 합니다.
생전에 그가 보여준 경이로운 계산 능력과 기억력을 보여주는 일화는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오일러는 잠이 오지 않는 날에는
1부터 시작해서 100까지 각 수의 6 제곱수를 하나씩 암산해서 세어 나가다가
그것이 끝나면 각 수의 6 제곱수를 처음부터 모두 더하는 계산을 하다가
잠이 들었다네요.
오일러는 심지어 기억력도 뛰어나 세 권이나 되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BC.70~BC.19)의 서사시 <아예네이스(Aeneid)>를
몽땅 암송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의 나이 64세에 오일러가 살고 있던 러시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마을에서
대화재가 나서 그의 서재에 있는 자료들이 모두 불타 버렸는데,
그럼에도 그는 수학 연구를 끄떡없이 해 냈는데,
그의 자료가 모두 머릿속에 있었기 때문이었답니다.
오일러의 친구인 프랑스 물리학자 프랑수아 아라고(1786∼1853)가 오일러에 대해 한 말입니다.
“마치 사람이 숨을 쉬는 것처럼, 또 독수리가 공중에 떠 있는 것처럼
아무 힘을 들이지 않고 계산을 해냈다.” 라고요.
아르키메데스(BC.287~BC.212), 아이작 뉴턴(1643~1727),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를
‘역사상 3대 수학자’라고 하는데,
여기에 한 명을 추가한다면, 바로 오일러일 것입니다.
오일러는 처음부터 수학을 전공하지는 않았습니다.
오일러는 스위스 바젤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더랬습니다.
아버지가 목사님 이셔서 오일러도 신학과에 입학하였으나,
오일러의 수학적 천재성을 알아본, 바젤 대학교 수학과 교수였던 요한 베르누이(1667~1748)가
오일러의 아버지를 찾아가 간곡히 부탁하여 허락을 받은 후, 수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오일러는 러시아 여왕의 초청으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과학 아카데미'에 가서
거기에서 오랜 기간 지내면서 수학을 연구하였고,
다음으로 독일 프로이센의 '베를린 아카데미'로 가서 연구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그리고 말년에는 다시 러시아의 초청을 받아 거기에서 수학을 연구하며 여생을 보냈습니다.
1707년 태어난 오일러가 1783년 생을 마칠 때까지
스위스, 러시아, 독일의 세 나라를 오가며 수학 연구를 하였던 거지요.
그리하여 오늘날 오일러는 스위스, 러시아, 독일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1907년 오일러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독일에서 기념우표를 발행했고요,
1957년 오일러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러시아에서 기념우표를 발행했고요,
2007년 오일러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여 스위스에서 기념우표를 발행했습니다.
다가오는 2057년은 오일러 탄생 350주년이 되는 해일텐데,
오일러 탄생 350주년 기념우표가 당연히 나오겠지요.
덧붙여 오일러 탄생 200주년 기념하여 1907년에 독일에서
오일러 전집 'Leonhardi Euleri Opera Omnia' 발행을 기획하였습니다.
오일러는 생전에 850여 편이라는 엄청나게 많은 논문을 썼기에,
100여 년이 넘는 지금까지 전집 80권이 이미 발행되었지만,
여전히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학생들은 일 년 내내 수학 수업 시간에
오일러 이름을 정말 자주 듣습니다.
원주율을 π로 처음으로 표시한 수학자가 오일러이고요,
함수의 개념을 도입하여 f(x)로 표기한 것도,
삼각함수 기호인 sin, cos, tan을 사용하기 시작하여 대중화시킨 것도 오일러에 의해서입니다.
중학교 수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수많은 수학 기호들이 바로 오일러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에서 만나게 될,
자연상수 e , 허수 i 도 오일러가 처음으로 표기했으며,
수열의 합을 나타내기 위해 그리스 문자 Σ 를 처음 사용한 수학자도 오일러였습니다.
수학자가 수학의 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기도 쉽지 않은데,
오일러는 수학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즉 기하학, 미적분학, 삼각법, 대수학, 정수론 등등에서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습니다.
수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단 기호, 공식, 정리가 수학의 전 분야에서 걸쳐 나타납니다.
‘삼각형의 외접원과 내접원에 관한 오일러 공식’
‘4차 방정식에 관한 오일러 해법'
'오일러 정리'
‘오일러 함수’
'연결 그래프와 오일러 경로'
'오일러 다면체 정리'
'오일러-라그랑주 방정식' 등등.
학생들을 더욱 놀라게 할 또 하나는,
누구나 한 번쯤 해 봤을, '스도쿠(Sudoku)'의 원조가 오일러의 '라틴 방진(Latin Square)'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스도쿠'는 미국의 하워드 가안스(Howard Garns)가 1979년 미국의 퍼즐 잡지에 처음으로 소개했고,
이 퍼즐이 일본에 소개되면서 '수독(數獨)'이라는 뜻을 가진 '스도쿠'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지요.
라틴 방진은, 각 행과 열에 숫자가 중복되지 않게 배치하는 원리로 만들어진 것인데,
하워드 가안스가 바로 여기에서 직접적인 영감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2007년, 오일러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여
고려대학교에서 '오일러 탄생 기념 스도쿠 대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답니다.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까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스도쿠를 하며,
전 세계 어디에서든지 스도쿠를 하는 걸 보면,
천상에서 오일러가 흐뭇해하실 것 같습니다.
그래서 2학기말 기말고사도 끝나고 여유 시간이 생기면,
오일러 이름을 걸고, 소박하게나마 '오일러 탄생 ###주년 기념 스도쿠 대회'를 열곤 합니다.
어마어마한 오일러의 수학 관련 공적들 중에서 가장 백미는,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선정된, '오일러 공식'일 것입니다.
우선 이 공식이 언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으로 선정되었냐고요?
1988년 미국 수학 잡지 <Mathematical Intelligencer>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수학 공식을 뽑는 설문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후보로 뽑힌 총 24개 공식들 중에서 2년에 걸친 치열한 접전 끝에
마침내 최종 선정된 공식이 바로 ‘오일러 공식' 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002년에도 영국 물리학회지 <Physics World>가 주관하여
과학계의 가장 아름다운 방정식을 뽑았는데,
거기에도 '오일러의 공식'이 재차 선정되었습니다.
자연상수 e, 원주율 π, 허수 기호 i, 거기에 0과 1
서로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수학의 뼈대를 이루는 이 다섯 가지의 핵심적인 수가 이렇게 연결되다니!!
리처드 파인만(1918~1988)은, 오일러 공식을 '수학에서 가장 놀라운 공식'이라고 얘기했고요,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는 이 공식을 '수학의 보석'이라고 불렀습니다.
오일러의 공식은, 가장 아름다운 공식일 뿐만 아니라,
'수학과 과학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가장 필수적인 공식'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랍습니다.
음악계에 베토벤이 있다면, 수학계에 오일러가 있습니다.
베토벤이 결국 청력을 잃어도 작곡을 멈추지 않았듯이,
오일러도 결국 시력을 잃어도 수학 연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이 초상화는 오일러가 46세 때 그려진 것인데,
이때에 이미 완전히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은 모습이 보입니다.
오일러는 20대에 오른쪽 눈에, 50대에 왼쪽 눈에 백내장이 발병하여 60대에 수술을 했지만 실패해서
결국 생애 마지막 17년은 거의 실명을 한 상태였는데, 그래도 수학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오일러는 1783년 9월 18일에 돌아가셨습니다.
생애의 마지막 날에도 오전에는 팽창하는 풍선의 팽창 속도를 계산했으며,
오후에는 새로 발견된 행성인 천왕성의 궤도를 계산하는 데 몰두했다고 합니다.
저녁 식사 후 손자를 보며 잠시 쉬다가 갑자기 심장마비가 오자
석판에 “나는 죽는다”라고 쓰고 생을 마감했다고 전해집니다.
오일러에 대한 추도사, "그는 계산하는 것과 사는 것을 멈췄다."
그에게 '삶 = 수학' 이었지요.
간혹 학생들이 "수학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라고 볼멘소리를 하면,
"있어, 오일러" 라고 충분히 얘기해 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