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수학 수업 - 겨울 (4)
처음엔 몰랐습니다. 이런 게 무슨 쓸모가 있는지...
내가 핸드폰 사용하는 시간, 내가 게임하는 시간, 내가 잠자는 수면 시간, 내가 즐겨 듣는 음악,
내가 구독하는 사이트의 개수, 내가 ‘좋아요’ 한 횟수,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내가 먹은 하루 칼로리, 나의 혈당 수치, 나의 지문, 나의 홍채 색깔,
내가 다니는 학원 개수, 나의 수학 성적 등등...
내가 뭐 대단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이제는 압니다. 이 모두가 다 돈과 연관된다는 것을.
'빅데이터 시대', 모든 정보가 돈이 되는 세상입니다.
오늘날을 설명하는 여러 용어들이 많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은 ‘빅데이터 시대’ 입니다.
빅데이터로 인해, 상상도 못 했던 것들이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석탄이 산업화의 연료가 되었듯,
빅데이터는, 현대 사회의 AI 머신 러닝의 연료가 되고 있습니다.
AI는 빅데이터를 꿀꺽 먹어 삼키고서는 인간보다 훨씬 더 똑똑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데이터를 어떻게 지키느냐' 입니다.
'데이터 보안'은 기업체의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습니다.
대규모 데이터 유출 사고는 대형 화재 사고만큼이나 기업에 치명적인 심각한 사고 입니다.
빅데이터 시대에는 데이터의 수집, 분석, 해석 뿐만 아니라,
'데이터의 보안' 또한 수학이 해야 할 핵심 분야가 되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자유 학기 수업을 맡게 되면, '암호' 수업을 꼭 합니다.
수학엔 별 관심이 없어도, 암호에는 흥미가 있는 학생들이 꽤 있습니다.
암호는, 그 역사 내내 수학과 긴밀한 연관을 가져왔습니다.
암호 수업에서 고대의 '시저 암호(Caesar Cipher)',
근대의 '비즈네르 암호(Vigenère Cipher)',
현대의 'RSA 암호'까지 맛보기라도 다룹니다.
'시저 암호'는 알파벳을 일정한 거리만큼 밀어서 암호화하는 것으로,
학생들이 금방 이해합니다.
그러면 학생들에게 도전할만한 '시저 암호' 해독 미션을 줍니다.
암호를 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인간의 DNA에 있는 것일까요?
학생들은 암호를 풀기 위해 전력을 다 합니다.
'시저 암호'를 배운 후, 친구나 가족에게 '시저 암호'로 핸드폰 문자를 보내게 하면 흥미가 더해집니다.
'시저 암호'를 받은 친구나 가족이 간혹 '시저 암호'를 풀어내기도 합니다.
'시저 암호'는 해독하는 학생이 꼭 있습니다.
그게 바로 '시저 암호'의 약점입니다.
영어 알파벳 출현 빈도를 참조하면,
가장 많이 쓰이는 알파벳이 E(12.7%), T(9.1%), O(7.5%), I(7.0%)... 순이라고 하지요,
그러면 '시저 암호'는 사실 금방 풀리고 말지요.
16세기 비즈네르(1523~1596)가 만든 암호는, 이러한 '시저 암호'를 보완한 암호로,
오랫동안 '난공불락(難攻不落)의 암호'로 여겨졌습니다.
암호 송신자와 암호 수신자가 미리 '키워드'를 공유한 후, 암호를 주고받습니다.
'비즈네르 암호'에서는 똑같은 'E'라도 어떤 때는 'X'로, 어떤 때는 'Q'로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키워드'를 발설하지 않는다면, 이 암호는 결코 풀릴 수 없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우리의 키워드가 'DOG' 일 때, 아래의 암호문을 해결해 보세요.
'비즈네르 암호'를 해독할 때는, '비즈네르 사각형'이 꼭 필요합니다.
위의 '비즈네르 사각형'을 이용하면, 암호문에서 'Z'는 알파벳 'W'로 해독됩니다.
이런 방식으로 하면 암호문은 결국 모두 풀립니다만,
수업 마치는 종이 울려도, 학생들은 수업을 끝낼 생각을 안 하기도 합니다.
다음 차시의 암호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은 지난 시간에 내준 '비즈네르 암호'를 이미 해독해서 의기양양 합니다.
암호학을 발달시킨 건 늘 전쟁이었지요.
제2차 세계대전에서 암호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 만큼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독일군에게는 전자식 암호 기계 ‘에니그마(Enigma)’가 있었으나,
앨런 튜링(1912~1954)이 '애니그마'를 해독함으로써 전쟁의 판도가 바뀌었다고 합니다.
현대 암호의 대표적인 것으로 'RSA 암호'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RSA 암호'를 처음 들어보겠지만, 사실은 늘상 사용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로그인 할 때, 편의점에서 신용카드로 결제할 때,
핸드폰에서 모바일 뱅킹을 사용할 때, 즐겨 찾는 앱을 업데이트 할 때 등등
모든 경우에 'RSA 암호'가 작동합니다.
'RSA 암호'는, 1977년
리베스트(Rivest)와 샤미르(Shamir)와 애들먼(Adleman) 세 명이 개발한 암호로,
공개키로 암호를 생성하고, 비밀키로 암호를 푸는 방식입니다.
이 때 사용되는 것이 '소수'와 '소인수분해' 입니다.
두 소수 p와 q를 곱해서 어떤 수 n을 만드는 것은 쉽습니다만,
어떤 수 n을 소인수분해해서, 두 소인수 p와 q를 찾아내는 것은,
그 어떤 수가 n이 상당히 큰 수일 경우에는 슈퍼컴퓨터로 찾는다 해도,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기에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해서 만들어진 암호입니다.
이번 암호 수업 시간에는 'RSA 암호'를 이용하여, 'PIZZA' 라는 단어의 암호문을 만듭니다.
우선 'PIZZA' 를 (15, 8, 25, 25, 0)라는 수로 변환한 후,
서로 다른 두 소수를 3과 11로 정하여,
'PIZZA'의 RSA 암호문, (9, 17, 16, 16, 0)인 'JBQQA'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학생들은 설명을 듣다가 어느 지점부터인가 이해를 포기하기도 하지만,
암호와 수학의 연관성은 확실히 느끼게 됩니다.
'RSA 암호'의 기반은, 큰 숫자의 '소인수분해'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었는데,
최근 '양자 중첩' 상태를 이용한 양자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수학자 피터 쇼어(1959~)가 1994년에 발표한, '쇼어 알고리즘'이라는 강력한 도구로 인해,
슈퍼컴퓨터로 수십억 년 걸릴 거대한 수의 소인수분해 계산을
양자컴퓨터를 이용하면 단 몇 시간 혹은 몇 분 만에 끝낼 수 있음을 수학적으로 밝혀낸 것입니다.
'RSA 암호'의 '시간의 방패'가 순식간에 녹아내릴 날이 머지않은 것입니다.
아직은 현실화되지 않았지만, 양자컴퓨터의 '쇼어 알고리즘'이 실현되는 날,
현재의 모든 데이터 보안 시스템은 멈춰버릴 수도 있습니다만,
이미 양자컴퓨터의 '쇼어 알고리즘'으로도 풀 수 없는 '양자 내성 암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2020년 4월 대한민국 국가수리과학연구소(NIMS) 암호기술연구팀이 양자컴퓨터에도 안전한
'다변수 이차식' 기반의 공개키 암호 알고리즘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바로 '수학'이 있습니다.
수학이야말로 AI와 빅데이터를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이끌어 가는 핵심 동력입니다.
2019년 일본은 '수리 자본주의 시대: 수학의 힘이 세상을 바꾼다'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여기에서 "4차 산업혁명의 승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첫째도 수학, 둘째도 수학, 셋째도 수학”이라며,
"수학은 혁신을 일으킬 보편적이고 강력한 도구로, 국부(國富)의 원천이 될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독자적인 언어인 '한글'을 가지고 있고,
한글에 기반한 전용 플랫폼을 수십 년간 보유하고 있다는 건,
어쩌면 AI와 빅데이터 시대의 '데이터 전쟁'에서 '천연 요새'를 가지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학생 여러분~ 수학으로 무장^^하여 '슬기로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생활'을 만들어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