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철인 삼종 경기를 하는 한 중년 여성의 운동 강의를 듣고 운동 인증방을 하나 개설했다. 나를 위한 환경설정이기도 했다. 한때 운동을 좋아했기에 어느 정도 민첩했다고 생각한 나의 몸 상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예전 같지 않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운동을 좋아하는 마음과 이를 내 일상에 우선으로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내가 주로 걷는 장소는 아파트 정문을 나가면 바로 보이는 작은 운동장이나 5분 정도 차 타고 가야 있는 큰 운동장이다. 만보 인증을 매일 하는 몇몇 분들을 보며 나는 겨우 5천 보 인증을 했다. 아직 우선순위가 확고히 세워지지 않아서인지, 다른 여러 일정에 밀려 운동 시간을 확보하기 쉽지 않았다. 그리고 밋밋한 평지 걷기가 지루하니만큼 재미가 없었다. 그저 오늘의 목표를 완수해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작은 운동장에서는 한 바퀴 돌기가 금방 끝난다. 여러 바퀴를 걷고 뛰며 돌아야 5천 보를 그나마 채울 수 있다. 동네 운동장이기에 그나마 주변에서 뛰어다니는 초등학생과 느긋하게 걸으며 쉬시는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모습을 간간이 구경할 수 있었다. 이름도 모르지만, 이웃을 만나보는 재미는 있지만, 걷고 달리는 동기부여를 한껏 해 줄 수 있는 동료들은 없다는 것이 맹점이다. 반면 큰 운동장을 가면, 이른 아침에도 저녁에도 정말 운동하겠다고 온 분들이 빽빽하다. 그들로 인해 나의 느슨했던 마음은 조여 오고, 어느새 나도 열심히 운동해 보리라 다짐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은 동네 앞산을 한 번 올라가 볼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친정아버지는 매일 동네 앞산을 오르신다. 평상시에도 운동을 좋아하셔서 골프로 체력을 다져오시긴 했지만, 그에 못지않게 동네 앞산 오르기는 수십 년간 그의 오전 일과 중 하나이다. 이런 루틴은 여든이 훌쩍 넘으셨음에도 여전히 활력을 있으신 그의 건강 비결일 수도 있겠다.
나도 동네 앞산 오르기가 처음은 아니다. 그저 어떤 곳인가 궁금해서 몇 번 가보긴 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밋밋한 평지가 조금은 지루해서, 걷기에 조금은 다른 변화를 줄 방법은 없을까 하는 마음에 올라 보았다.
동산 앞산 입구에 들어서니 흙 위에 짚신과 비슷한 재료로 엮은 안전한 발판이 깔려 있었다. 거기에 발을 올리는 순간 내 안에 퍼지는 평안한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오랜만에 올라간 날이 비가 온 다음 날이어서였는지 단단하지도 무르지도 않은, 약간은 물컹한 촉감이 엄마 품과 같은 무한한 안전감을 가져다주었다.
매일 똑같은 풍경을 마주하며 걷다가, 동네 작은 산이 이렇게 다채로운 풍경을 가져다주는지를 처음 알았다. 고요한 새벽에만 들을 수 있는 새소리가 걷는 내내 외롭지 않게 말동무가 되어주었고, 부스스 나뭇잎 떨어지는 계절의 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쌓여 있는 낙엽 사이로 나 아직 건재하다는 듯이 피어있는 꽃망울들은 나를 미소 짓게 했다. 작은 숲은 내 안에 미처 살피지 못했던 감각을 조용히 일깨워 주었다.
우리가 걸어야 할 길
걸어야 할 길도 획일적이지 않았다. 수많은 갈래 길이 내 앞에 수시로 놓였다. 오르막길과 내리막길, 오른쪽 길과 왼쪽 길, 계단 길과 흙길이 수시로 선택을 요구했다. 너무 오래 고민하면 걸음을 멈춰야 하기에 나는 이쪽으로 갈지 저쪽으로 갈지 빠르게 결정해야 했다. 조금 쉬운 내리막길을 선택하면 곧 오르막길도 다시 나타났고, 오르막길을 선택하면 바로 내리막길도 나타났다. 어떤 길이 펼쳐질지 모른 채,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오른쪽이든 왼쪽을 선택하는 재미도 있었다. 말끔한 계단이든 물컹한 흙길이든 저마다 나름의 장단점이 있었다. 사실 어떤 길을 선택하나 결국 원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 작은 길을 선택할 때도 작은 두려움이 느껴졌다. 길을 선택할 때 누구나 두려움을 느낀다. 한 번에 제대로 된 길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하게 박여 있다. 숲에서의 수많은 갈림길은 미지의 길에 대한 내 안의 두려움을 직면하게 했고, 매일의 새로운 선택은 미세한 희열의 파동으로 전해져 왔다.
선택도 훈련인가 보다. 선택할 때 느껴지는 미지의 두려움은 어느새 새로운 길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으로 바뀌어 있었고, 내가 선택한 이 길이 나에게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줄지 궁금함으로 바뀌어 있었다. 비록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더라도 다시 주어질 수많은 길이 주어져 있기에 어떤 선택도 괜찮다고 말해 주는 듯했다.
작은 숲은 하나의 인생과도 같다. 인생도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오늘 무엇을 먹을지와 같은 작은 선택에서부터 직장과 배우자를 결정하는 큰 선택까지 우리는 늘 고민하며 살아간다. 이 작은 숲 안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갈림길을 마주하며 마음에서 피식 웃음이 났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너무 심각하게 고민하며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매일의 획일적인 생각과 선택은 그 경험을 제한해 버린다.
익숙함을 넘어 미지의 세계로
비비안 디트마는 『느낌은 어떻게 삶의 힘이 되는가』라는 책에서 두려움이 어떻게 미지의 것을 향한 인간의 타고난 욕망을 가로막는지, 한편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나아가려는 한 줌의 의지와 용기만 있다면 두려움이 어떻게 세계를 넓히는 창조의 힘을 발휘하는지를 설명한다.
“두려움은 내가 알고 있는 영역에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으로 보아 두려움은 흥분과 모험의 최고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두려움을 위험과 동의어로 보는 데 익숙하다. 우리는 미지의 것을 깊이 알아보는 능력을 잃었다. 새로운 것 미지의 것을 향한 우리의 타고난 욕망은 안전 지향의 사고방식으로 대체되었다.
두려움이 가진 힘을 경험하려면 먼저 미지의 세계로 기꺼이 나가려는 의지와 용기가 필요하다. 그럴 때 두려움이 나의 경계를 변화시키는 폭발적인 힘으로 작용한다.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턱을 느낄 뿐 아니라 그 문턱을 넘어 우리를 새로운 영역으로 데려가는 것을 경험한다. 이로써 우리가 편안하게 여기는 행동반경이 넓어진다. 이런 식으로 전에 없던 수많은 가능성이 자연스레 드러난다. 이 가능성을 통해 우리는 자신을 넘는다.”
숲에는 정형화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갈 때마다 똑같은 풍경이 하나도 없었다. 오전과 오후에 따라 달랐고, 그날 날씨에 따라 햇빛의 농도, 색감, 분위기가 달랐다.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단장하고 나를 기다리는 듯했다. “내일은 다른 모습을 보여줄 테니 또 와!”라고 속삭였다. 숲을 걸으며 마주하는 다채로운 풍경과 선택들은 내 안의 익숙함과 획일성을 끊임없이 깨트렸다. 같은 걷기라도 밋밋한 평지와 숲을 걷는 경험은 매우 달랐다.
작은 숲길에서 오늘도 인생을 또 한 번 배운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이곳을 찾아보려 한다. 숲은 두려움을 깨고 새로운 길을 탐험하며 경계를 넘어서 보는 나만의 작은 실험실이다. 오늘도 내일도 햇빛과 계절의 옷으로 새롭게 단장하고 나를 반겨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