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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마음 Jan 22. 2024

무모하지만 필요한 일

초보 산행인의 등산 일기 2



     

지역 산악회에 가입해서 두 번째 산행에 참여했다. 이곳은 한 달에 한 번은 백두대간, 한 달에 한 번은 명산 100코스, 그 외에도 수요산행, 해파랑길 코스도 진행한다. 마음은 매주 참여하고 싶었지만, 지난번 백두대간 19km를 완주하고 부족한 체력을 여실히 경험했다. 하루를 다 써야 하는 시간 비용도 있어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참여로 목표를 조정했다. 백두대간과 명산 100코스를 우선 하나씩 참여해 보고 나에게 맞는 길을 결정하려 한다. 이번엔 명산 100코스 중 한 곳인 월출산 산행에 동참해 보았다.      


내가 경험해 본 산이라곤 지역에 있는 치악산뿐이다. 그것도 10여 년도 훨씬 전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 산행은 지난번 백두대간에 이어 두 번째다. 월출산이라는 이름도, 그 산이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역 독서 모임 한 분이 원주에서 가까운 제천이라고 하길래 그런 줄만 알았다. 그런데 산악회 밴드에 출발이 새벽 3시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2~3일을 남겨둔 후에는 새벽 2시로 조정이 되었다. 비가 올 예정이라 좀 더 여유롭게 시간을 조정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검색해 보았더니 월출산은 강원도에서 한참 먼 전라남도에 있었다. 경상도에는 살아보았어도 전라도 방문은 사실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런데 산행을 위해 새벽에 출발한다니 놀라웠다.      


초보이기도 하고 비가 온다고 하니 솔직히 겁도 조금 났다. 지난 산행이 쉽지는 않았기에 더더욱 그랬다. 그래서 취소를 고민했지만 한번 결정한 것을 무르고 쉽지도 않았다. 그렇게 취소를 미루고 미루다가 결국 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확정되었다.     


준비하는 자에게 여유가 주어진다     


새벽 2시 일정이라 차에서 잔다고 할지라도 조금 일찍 잠자리에 들 필요가 있었다. 원래 속한 커뮤니티에서 전날 저녁 강의할 계획이었지만 컨디션 조절이 필요했기에 이 또한 강의 일정을 미뤘다. 초저녁에 잠자리에 들고, 밤 12시에 일어나서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겼다.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여유가 없었다. 메일 하나를 꼭 보내야 할 것도 있었기에 그것까지 하다 보니 나가야 할 시간이 금방 되었다. 


허겁지겁 주차장으로 갔다. 그런데 핸드폰을 놔두고 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4층으로 다시 올라갔다 내려왔다. 다시 운전대를 잡고 출발 집합지까지 거의 다다를 무렵, 중요한 물건을 놔두고 왔다. 집에서 10분도 되지 않는 거리라 멀지는 않았지만, 갔다가 돌아오기에는 시간이 빠듯했다. 왜 하필이면 이 물건을 빠트렸을까? 난감했다. 이번 산행에 꼭 필요한 물건이었다. 이것이 없으면 이번 산행은 지난번처럼 고생에 고생을 더할 것이 뻔했다. 빠르게 운전대를 돌려서 그 물건을 가지고 나왔다. 


모여할 시간 2시가 다다를 즈음, 산악회 회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오고 계시나요?”, “네, 주차장이에요.” 휴, 다행이다. 출발 시간 1~2분 전에 도착했다. 44석이 꽉 차 있었고, 내 자리만 비어 있었다. 새벽 2시에 등산 가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는 버스 풍경은 나에게 신세계였고, 뭔가 모를 비장함마저 안겨다 주었다. 


준비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낀다. 난 원래 철저한 계획형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너무 빡빡한 계획도 나를 옭아매는 감옥과 같이 여겨져서 퇴직 후에는 조금은 여유롭고 느슨하게 산다. 그러나 그러다 보면 가끔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될 길을 돌아갈 때가 생긴다. 이런 경우도 그렇다. 안 그래도 여유가 없는데 두 번이나 집으로 다시 갔다 와야만 했다. 다행히 모여야 할 곳이 멀지 않은 곳이라 빠트린 준비물을 모두 챙길 수는 있었고, 그사이 나는 빠른 판단력, 조급함, 안도감 등 다양한 감정을 경험했지만, 이를 해결하느라 불필요한 시간을 소모해야 했다. 준비가 시간을 단축해 주고, 여유도 가져다 줆을 다시 경험한다. 준비란 다름 아닌 작은 메모다. 메모할 시간을 벌고자 내 감만 믿을 때 실수뿐 아니라 시간을 오히려 버릴 위험에 처한다. 운동 시간 아낀다고 운동하지 않으면 집중력 상실 등으로 수많은 시간이 날아갈 수 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를 믿지 말고 메모를 믿어야 한다.      




왜 힘든 고생을 사서 할까?     


초보 산행자인 나에게 산행하는 초반 1~2시간이 고비다. 그 순간에는 “왜 다시 산행한다고 했을까?”, “산행은 오직 올라가는 길만 있는데 뒤로 무를 수도 없는데”, “왜 힘든 고생을 사서 할까?” 등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오고 간다.      


첫 번째는 건강을 위해서였다. 코로나 이후 2~3년간 집순이로 살았다. 집에서 거의 모든 것을 해결했다. 온라인 시대의 장점을 한껏 누렸다. 그러나 몸은 쇠약해 감을, 그런 몸과 함께 정신력도 약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너무 정적인 운동보다 동적인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것저것을 찾아보다가 걷기 모임에서 만난 한 분의 소개로 산악회를 알게 되었다. 산행은 혼자는 위험했기에 얼른 가입했다. 그러나 지난 첫 산행을 마치고는 준비되지 않은 체력을 마주하며 계속해야 할지 고민했다. 산행에 참여하는 몇 분과 대화해 보았지만 오랜 시간 등산하고 심지어 구조대에서 활동했던 전문 산악인도 많으셨다. 평상시 5000 천 보도 겨우 걷는 나이다. 그저 운동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산행하기에는 너무 무모했다.      


그런데도 왜 힘든 고생을 사서 해야 했을까? 계속 질문이 생겼다. ‘건강’ 하나만으로는 설명이 잘되지 않았다. 얼마 전 읽은 공지영 작가님의 책 《나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를 읽었다. 유명한 분이시라 이름으로는 익히 들어 알았지만, 그분 책을 거의 읽지 못한 독자다. 그런데 이 책이 이상하게 눈에 들어왔다. 3년 만에 출간된 책이라고 한다. 글 초반에는 “다시 글을 쓰지 않을 거야.”라는 마음으로 서울 집을 떠나 시골에 집을 짓고 혼자 은둔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새벽 기도와 은둔을 반복하며 어느 날 예순의 나이에 갑자기 이스라엘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비행기표를 끊으셨다. 젊을 때와는 다르게 여행은 쉽지 않다. 더군다나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더더욱 말이다. 그러나 마음의 이끌림에 그녀는 순종한다. 그녀는 이스라엘을 여행하고서야, 그리고 예정에는 없었지만, 선물로 주어진 수많은 만남과 장소를 통해서야 왜 그곳에 이끌렸는지 이유를 발견한다. 어쩌면 나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이유를 알아서가 아니라, 이유를 알기 위한 산행 말이다. 나 또한 그저 해야만 할 것 같은 충동에 따랐다.      


하산 후, 버스 내 옆 좌석에 앉은 중년의 여성과 함께 휴게실에서 우동을 먹었다. 비 맞으며 한 산행이라 따끈한 국물이 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싶었다. 함께 식사한 여성은 구조대 활동도 했었다고 한다. 구조대는 남성만 하는 줄 알았는데 여성도 할 수 있음을 처음 알았다. 매주 산행을 가는 분들은 보통 분들이 아니구나, 세상에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는구나를 새롭게 깨닫는다.    

 

그녀에게 물었다. “오늘 산이 상, 중, 하로 치자면 어느 정도에 해당되나요?”, “상에 해당한다고 봐요.”, “그리고 오늘처럼 비 오는 날은 더욱 그렇지 않을까요?” 나는 초보 산행인이다. 월출산은 바위산이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인 것도 조금은 찜찜했지만, 첫 출발선부터 바위들이 계속 등장했다. 산에 대한 정보를 전혀 모르고 참여한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그나마 안갯속에 흐린 시야에도 중간중간 바위로 가득 에워 쌓인 풍경을 보며 연간 감탄사를 보내며, 만족감을 챙겼을 뿐이다.    

  

“저 초보 산행인인데요. 비바람이 조금 몰아친 것 빼고는 재밌었거든요.”, “이 산이 ‘상’에 해당한다고 하시니, 조금 체력만 보충한다면 다음 산행 도전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희망이 보이네요.”라며 뿌듯한 마음을 내 비추었다. 초보 산행인이 경험한 비바람 속 바위산 산행, 이 산을 기준으로 다음부터는 모든 산행을 감사함으로 오를 수 있을 것 같다.      


매일 운동도 중요하지만, 가끔은 자신의 체력을 넘어서는, 또는 자신을 시험해 보는 운동에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그 순간과 과정은 힘들고 버거울 수 있지만, 그것을 끝내고 나면 성취감뿐 아니라 일상 속 크게 변화를 보이지 않던 운동 강도를 조금은 업그레이드해 준다.      


“오늘은 비가 오니 하루 정도 운동은 쉬어도 괜찮겠지.”, “오늘은 살짝 피곤하니 내일로 미루자.” 등 온갖 핑곗거리가 오늘의 산행 한 번으로 이제는 이유가 되지 않는다. “난 그 비바람 속에서도 산을 올라탄 여자야.”, “오랜 시간 산행을 즐긴 전문 산악인들과 난 산행을 함께한 사람이야.”, “이 정도 비는 이 정도 컨디션은 운동하지 않을 이유가 되지 못해.”      


몸에 남은 산행 경험은 일상의 운동을 더욱 강화시켜 준다. 지금 이 글을 쓰기 전 잠깐 걷고 왔다. 옷도 젖지 않을 듯한 비가 가볍게 내리고 있다. “이 정도는 비도 아니야.”라며 내 마음이 받아치며 신나게 발걸음을 내딛는다.      




야성을 회복하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명언을 모아놓은 《고독의 발견》에 이런 문장이 있다.       


따분하다는 것은 

내면에 

야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 문장을 읽다가 내가 집 앞의 길을 놔두고 등산하려는 이유는 혹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잠시 생각해 본다. 이제 겨우 몇 개의 산만 올랐을 뿐인데도 산마다 똑같은 풍경은 하나도 없었다. 하나의 산에도 걸을 때마다 다른 광경이 펼쳐졌다. 아직 1월임에도 월출산은 전라남도에 속해서인지 봄처럼 푸르른 잎들이 많이 보였다. 순간순간 감탄사를 홀로 연발했다. 동네 산에서도 이런 느낌을 살짝 받긴 했지만, 그 깊이와 넓이가 헤아릴 수 없다. 


사람들이 여행하는 이유, 산에 오르는 이유가 이 때문은 아닐까. 나 또 이 대열에 참여한 이유를 딱히 찾을 수 없었지만, 평지 걷기의 따분함,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미를 느끼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안전하지 않고 불편하고 심지어 고통스러운 순간을 수없이 마주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소로는 위 문장과 함께 다음의 이야기를 덧붙인다.      


문학에서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은 야성뿐이다. 따분함이란 길들여졌다는 말의 또 다른 표현이다. 《햄릿》이나 《일리아스》 등 모든 고전과 신화에서 우리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은 세련되지 않은 자유분방한 사고다. 학교에서는 절대 배울 수 없는 것이다. 길들여진 집오리보다는 야성을 지닌 야생오리가 민첩하고 아름다운 것처럼 온 세상이 눈으로 하얗게 뒤덮인 가운데 늪지 위를 날아가는 물오리와 같은 야성적 사고는 재빠르고 아름답다. 서부의 대초원이나 동부의 원시림에서 문득 눈에 띈 야생화가 그러하듯이, 진정한 야성에는 자연스럽고 상상 밖의 아름다움과 완벽함이 담겨 있다. 

    

내 일상이 따분했다고 생각은 해 보지 않았는데, 요 며칠 답답함을 살짝 느끼고 있었던 것도 같다. 나는 주로 독서로 따분함을 해소하고 경계를 수없이 넘어 들며 이 욕구를 해결해 가지만, 의자에 오랜 시간 앉아 있는 정도의 피로만 있을 뿐, 내 몸은 매우 안전하다. 졸리면 조금 눈을 붙일 수도 있고, 안 읽히면 언제든 독서를 잠시 미룰 수도 있다.      


그러나 산에 오르는 경험은 이 모든 불편을 뒤로 미룰 수 없다. 어떻게든 정상에 오르고 하산하기까지 수시로 부딪혀 오는 난관을 그것도 몸으로 경험하며 헤쳐 나가야 한다. 그동안 길들여져 있는 내 몸의 한계를 뚫고 말이다. 정형화되지 않는 풍경을 수시로 마주하고, 모든 근육이 일렁이며, 거친 호흡에서 혈액의 흐름은 가팔라지고 온몸의 세포가 수시로 깨어나면서 도저히 업그레이드되지 않던 현재에 길들여진 몸의 경계를 벗어나서 내 안에 억눌린 야생성이 회복된다.      


우리는 자연에서 

활력을 되찾아야 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을 보면서!      


깊이를 알 수 없는 자연의 활력, 거인의 나라 같은 광활한 지형, 파괴의 흔적이 그대로 남겨진 해안, 살아 있는 나무와 말라 버린 나무가 뒤섞인 벌판, 소나기구름, 3주 동안이나 쉬지 않고 퍼부어 홍수를 일으키는 비를 보고 인간은 기운을 차려야 한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순간이나 인간이 결코 발을 디딘 적 없는 미지의 장소에서 다른 생물이 자유롭게 풀을 뜯는 모습을 봐야 한다. _ 헨리 데이비드 소로     





_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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